[단편][여행] 경계를 넘는 발칸의 색

먼 곳에 왔다. 옅은 회색과 베이지색의 석회암, 붉은 흙,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들어졌다는 산자락, 그 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키가 작은 나무들의 질긴 구조, 약간 성긴 조직의 윤슬. 다른 땅에 가면 사람이 만들어낸 문화와는 별개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흙과 돌과 나무의 색, 하늘의 질감, 바람의 속도가 확실히 다르다. 땅이 갖고 있던 시간의 주름이 펼쳐지며 그 안에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내 앞에 쏟아진다.


여행의 목적지가 세르비아는 아니었지만,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이었던 지역을 여행하면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자주 떠올렸다. 아브라모비치는 세계적인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지금의 세르비아 지역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그의 삶이 시작된 고향인 동시에 그를 얽매는 곳, 또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책 『마리나의 눈』을 쓰며 아브라모비치를 만든 발칸의 모습을 막연하게 상상했는데, 그가 말했던 발칸의 에너지, 동서양을 잇는 다리 위에 부는 거친 바람이 무엇인지 이제야 제대로 알 것만 같았다.


보스니아, 모스타르


크로아티아에서 국경을 넘어 도착한 곳은 보스니아의 유일한 해안가 도시 네움이었다. 이곳은 양쪽으로 크로아티아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길쭉하게 자리 잡은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마주한 보스니아는 완전한 내륙 국가가 될 뻔했는데, 딱 네움만이 크로아티아를 뚫고 바다를 향해 자리 잡으며 해안선을 확보했다. 항구를 만들기 너무나 작은 21km의 해안이지만 보스니아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지역이라고 했다. 나는 몇 가지 이유로 이곳에서 이틀 밤을 머물렀고, 그러는 사이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국경을 몇 번이나 넘나들었다.


보스니아, 네움


편의상 몇 개국을 넘나들었지만, 아무래도 띄엄띄엄 끊기는 동선이라 한 나라의 문화를 선형적으로 경험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국가와 도시의 경계가 희미해지자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 죽 이어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옅은 회색의 석회암 지형과 어두운 초록색의 뾰족한 나무들, 자주 보이는 보라색과 노란색 꽃, 거대하고 아름다운 능선들. 국경이나 문화로는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말로 글로 정한 경계는 때때로 얼마나 쓸모없는지.


국경을 넘나들며 틈틈이 읽은 리베카 솔닛의 책 『길 잃기 안내서』에서는, 길을 잃는다는 것은 지금의 상태에 온전히 몰입하며 멀리 있는 것들을 희미하게 만드는 관능적인 투항이라고 했다. 또한 현재의 불확실성과 미스터리 속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라, 이곳이 쏟아놓는 것들, 아직 무언지 알 수 없는 오랜 시간의 덩어리 속에 머물며 길을 잃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내가 탄 차는 또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국경을 넘었고, 경계는 더욱 희미해졌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두고 온 것들과 이토록 강력하게 연결될 수 있는 오늘날, 무언가를 제대로 두고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사용 가능한 내 유심 카드가 몬테네그로와 보스니아 국경을 몇 번 넘나드는 사이 왜인지 먹통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국내 데이터센터 화재라는 드문 사건으로 카카오톡까지 멈추었다. 나는 어쩐지 더 멀리 와버린 기분이 되었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지금 있는 공간, 내 눈앞에 보이는 장면뿐이었다.


몬테네그로


한편 솔닛은 같은 책에서 ‘먼 곳의 푸름’에 관해 이야기했다. 옛 화가들은 눈앞의 풍경에는 매우 사실적인 색을 썼지만, 먼 곳의 풍경은 푸른색으로 표현했다. 이 푸른색은 실재하는 색이라기보다는 그 먼 곳을 향한 고독과 욕망, 감정을 담은 색깔이다. 먼 곳은 언제나 푸른색이다. 바꾸어 말하면 멀리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색이다.


보스니아, 모르타르


하지만 내게 먼 곳의 푸름이었던 발칸 반도는 이제 회색과 베이지색, 붉은색과 짙은 초록색이 뒤섞인 강렬한 빛깔이 되었다. 먼 곳이 가까운 곳이 되고 가까운 곳이 먼 곳이 된다. 하지만 이미 발견한 것들은 멀리 떨어져서도 이제 푸른색이 아니다. 누군가 정한 경계에서 벗어나 강렬한 색 그대로 몰려온 발칸 반도를 지금 눈앞에 두고, 원래 가진 것들과 거리를 둔 채 솔닛이 말했던 ‘현재의 불확실성과 미스터리’ 속에 머물며, 현재의 나를 온전히 느껴본다. 이제  내가 찾는 먼 곳의 푸름은 무엇일까, 근경과 원경의 경계는 대체 어디쯤일까 생각했다.


보스니아




글/사진 김지연

현대미술과 도시문화를 비평한다. 예술과 사람의 관계에 주목하며,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글쓰기를 지향한다. 쓴 책으로 『반짝이는 어떤 것』, 『마리나의 눈』, 『보통의 감상』이 있으며, 국악방송 라디오 《글과 음악의 온도》에서 전시를 소개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외 다수 매체에 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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