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 #21
‘안아키’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안아서 아이 키우기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약 안 쓰고 아기 키우기. 정말 다양한 안아키 케이스가 있지만, 약을 안 쓰고 어떻게 살아? 싶었다. 그런데 내가 오스트리아에서는 안아키가 될 줄이야. 독일에서도 살아보고 현재는 오스트리아에서 쭉 살고 있지만, 정말 병원 한 번 가기 쉽지 않은 시스템이다. 쓰러져서 앰뷸런스라도 불러야 바로 응급실로 실려 갈 수 있겠다 싶지만, 그 앰뷸런스 비용은 어쩔 것인가.
2019년 결혼식을 한창 앞두고 있을 때 갑자기 눈 밑이 부어오른 적이 있었다. 다래끼 같아서 연고를 사서 발라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부어오르는 느낌이라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한국이었다면 집 앞을 나서자마자 수많은 병원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여기는 아주 냉정하다. 무조건 전화 예약은 필수. 예약 없이 찾아가면 아주 오랜 대기 시간을 거쳐야 하거나 오늘은 진료를 더 볼 수 없으니 다른 날로 잡아주겠다며 돌려보내기 일쑤다.
어딜 가도 쉽게 병원을 찾을 수 있는 한국
일단 방문해서 대기를 하면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는데 의사는 슥 보더니 역시 다래끼 약을 처방해 주었다. 걱정할 것 없다고 사람 좋게 웃으며.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가라앉기는커녕 얼굴 절반이 부어가는 게 아닌가. 이건 다래끼가 아니다 싶어 이번에는 아침 일찍 오픈 시간에 맞춰 피부과를 찾아갔다. 그런데 오후 2시에 다시 와서 대기하란다. 귀가했다가 돌아간 병원 진료실에 앉아 있던 할머니 의사선생님이 호통을 쳤다. 대상포진이라며, 대체 병원 안 오고 뭘 했느냔다. 병원… 갔었다고요!
비엔나 거리에서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랬다. 다래끼인 줄 알았던 증상은 얼굴 절반을 마치 권투선수에게 두들겨 맞은 몰골로 바꿔버린 대상포진이었다. 남편이 진짜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줄 알 거라며 나가지 말라고 할 정도로 오해의 소지가 가득한 얼굴이었고, 사진을 찍어 한국에 보내자 엄마는 난리가 났다. 그 사진을 본 한국 의사가 얘 지금 어디 있냐고, 빨리 입원시키라고 했단다.
그래서 비엔나에서는 약국을 더 자주 찾게 된다.
다행히 통증은 없어서 약만 열심히 바르고 나은,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해프닝. 여담이지만, 피부과 선생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느냐고 물어봤는데 “결혼 준비 해…….” 하고 답하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급 수긍해 주셨다. 얼굴이 부은 와중에도 빵 웃어 버렸다.
대상포진 휴유증으로 생긴 눈 밑 상처는 지금도 낫지 않았다.
최근에는 위경련과 장염 증세가 너무 심하게 와서 회사에 병가를 내기도 했다. 역시나 당일 예약은 불가능했기에, 이번에는 예약 절차가 필요 없고 대신 대기만 해야 하는 병원을 찾아 일찍 방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의사를 만났다. 사실 2시간 조금 넘은 거면 그나마 일찍 진료를 받은 셈이다.
위경련 증세 때문인지 링겔을 처방해 줬는데, 유럽살이를 시작한 후 출산 때를 제외하면 링겔을 맞아 본적이 없다. 그리고 사진을 올리자 인스타그램에 불이 났다. 오스트리아의 지인들이 내가 아주 어마어마하게 큰 병으로 입원한 줄 알았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링겔 처방해 달라고 하면 그냥 다 해 준다고요….
문제의 링겔 사진
“의사에게 가면 고농축의 비타민을 처방 받는다”는 말이 80%는 사실인 나라. 푹 쉬고, 비타민을 많이 먹어라는 말을 실제로 들은 나로서도 어느새 자가 치료가 당연해지는 듯하다. 그래서 한국에 잠깐 다니러 갈 때 약국에서 비상약을 잔뜩 챙기고, 비슷한 맥락에서 미용실과 병원은 필수로 다녀오게 된다. 이제 주변에도 한국 다니러 간다 하면 “꼭 병원 가서 검진 받고 오라”가 인사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어디서든 안 아픈 게 최고겠지만!

아플 때 챙겨 먹는 약과 비타민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https://instagram.com/photo_by_miri_vienna
https://blog.naver.com/miri_in_vienna
https://mirivienna.com
하루 한 잔 비엔나 #21
‘안아키’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안아서 아이 키우기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약 안 쓰고 아기 키우기. 정말 다양한 안아키 케이스가 있지만, 약을 안 쓰고 어떻게 살아? 싶었다. 그런데 내가 오스트리아에서는 안아키가 될 줄이야. 독일에서도 살아보고 현재는 오스트리아에서 쭉 살고 있지만, 정말 병원 한 번 가기 쉽지 않은 시스템이다. 쓰러져서 앰뷸런스라도 불러야 바로 응급실로 실려 갈 수 있겠다 싶지만, 그 앰뷸런스 비용은 어쩔 것인가.
2019년 결혼식을 한창 앞두고 있을 때 갑자기 눈 밑이 부어오른 적이 있었다. 다래끼 같아서 연고를 사서 발라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부어오르는 느낌이라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한국이었다면 집 앞을 나서자마자 수많은 병원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여기는 아주 냉정하다. 무조건 전화 예약은 필수. 예약 없이 찾아가면 아주 오랜 대기 시간을 거쳐야 하거나 오늘은 진료를 더 볼 수 없으니 다른 날로 잡아주겠다며 돌려보내기 일쑤다.
일단 방문해서 대기를 하면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는데 의사는 슥 보더니 역시 다래끼 약을 처방해 주었다. 걱정할 것 없다고 사람 좋게 웃으며.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가라앉기는커녕 얼굴 절반이 부어가는 게 아닌가. 이건 다래끼가 아니다 싶어 이번에는 아침 일찍 오픈 시간에 맞춰 피부과를 찾아갔다. 그런데 오후 2시에 다시 와서 대기하란다. 귀가했다가 돌아간 병원 진료실에 앉아 있던 할머니 의사선생님이 호통을 쳤다. 대상포진이라며, 대체 병원 안 오고 뭘 했느냔다. 병원… 갔었다고요!
그랬다. 다래끼인 줄 알았던 증상은 얼굴 절반을 마치 권투선수에게 두들겨 맞은 몰골로 바꿔버린 대상포진이었다. 남편이 진짜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줄 알 거라며 나가지 말라고 할 정도로 오해의 소지가 가득한 얼굴이었고, 사진을 찍어 한국에 보내자 엄마는 난리가 났다. 그 사진을 본 한국 의사가 얘 지금 어디 있냐고, 빨리 입원시키라고 했단다.
다행히 통증은 없어서 약만 열심히 바르고 나은,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해프닝. 여담이지만, 피부과 선생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느냐고 물어봤는데 “결혼 준비 해…….” 하고 답하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급 수긍해 주셨다. 얼굴이 부은 와중에도 빵 웃어 버렸다.
최근에는 위경련과 장염 증세가 너무 심하게 와서 회사에 병가를 내기도 했다. 역시나 당일 예약은 불가능했기에, 이번에는 예약 절차가 필요 없고 대신 대기만 해야 하는 병원을 찾아 일찍 방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의사를 만났다. 사실 2시간 조금 넘은 거면 그나마 일찍 진료를 받은 셈이다.
위경련 증세 때문인지 링겔을 처방해 줬는데, 유럽살이를 시작한 후 출산 때를 제외하면 링겔을 맞아 본적이 없다. 그리고 사진을 올리자 인스타그램에 불이 났다. 오스트리아의 지인들이 내가 아주 어마어마하게 큰 병으로 입원한 줄 알았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링겔 처방해 달라고 하면 그냥 다 해 준다고요….
“의사에게 가면 고농축의 비타민을 처방 받는다”는 말이 80%는 사실인 나라. 푹 쉬고, 비타민을 많이 먹어라는 말을 실제로 들은 나로서도 어느새 자가 치료가 당연해지는 듯하다. 그래서 한국에 잠깐 다니러 갈 때 약국에서 비상약을 잔뜩 챙기고, 비슷한 맥락에서 미용실과 병원은 필수로 다녀오게 된다. 이제 주변에도 한국 다니러 간다 하면 “꼭 병원 가서 검진 받고 오라”가 인사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어디서든 안 아픈 게 최고겠지만!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https://instagram.com/photo_by_miri_vienna
https://blog.naver.com/miri_in_vienna
https://mirivien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