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걷는 건축가 #1



런던은, 곧잘 잊고 지내게 되는 처음의 생각들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좋아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건축가 영감님들이 당신들의 일생을 거쳐 지금의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온 도시이다. 앞으로도 누군가 이 선을 계속 덧그리겠지 생각하면서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이 설렜다. 런던에 오기 전엔 막연하던 계획들을 오래 두고 구체화해 나가며 내 의지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사건사고들을 하나씩 무찔러야 했다. 결국 나는 런던 어느 구석의 작은 방 가로세로 일 미터쯤 되는 창문의 풍경과 그 지난한 시간들을 맞바꾸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 살든 그곳은 늘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도시였는지도 모르겠다. 연고 없는 뜨내기로 도시 구석구석을 탐닉하는 즐거움이 있었던가 하면, 여기저기 해쳐 모여 지내는 찌질 코드 맞는 도반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좋았고, 즐겨 찾는 동네 길바닥 자판기 부근에 동전 몇 개 숨겨 놓고 주머니가 텅텅 비어도 커피 한 잔쯤 마실 수 있을 그 비상금에 괜히 정을 붙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생인 나에게는 끊임없이 매일을 버텨야 하는 거친 텃밭이라는 변함없는 사실이 지워지지 않았다.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도시, 런던에서 좋아하는 건축 일을 하며 동시에 학업을 연장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것은 내세울 것 없는 내가 누린 최대의 행운이었다. 야근과 철야가 빈번하던 한국 건축쟁이 일상에 단련된 몸뚱이가 그나마 이런 주경야독의 무리한 나날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제는 일부터 챙기느라 주변을 충분히 살피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마저도 늘 바쁜 사람처럼 비춰지는 모습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 - “마음만 급해서 자꾸 이동수단에 몸과 마음을 실어 놓고 의존하고만 싶어. 어떻게든 나를 목적지까지는 데리고 가주겠지? 그 책임만큼은 나 몰라라 전가하고 나는 그동안 뒤죽박죽인 머릿속이라도 정리해 봐야지.”


나는 종일 책상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자 - “필력과 악력은 사라지고, 경쾌하거나 또는 간사해 보일 정도로 재잘재잘거리는 타이핑에만 최적화된 상태로 진화 혹은 퇴화한 손가락 관절을 움직이다가 머리는 과열되고 몸은 의자의 굴곡 그대로 굳어 버린 채 이 세상을 떠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그렇게 의자와 일체화되기 직전, 무작정 걷기로 한다.



사는 곳 피츠로비아Fitzrovia에서부터 일하는 곳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까지, 템스를 중간에 두고 강북 서편에서 강남 동편까지는 약 6킬로미터. 내 걸음으로는 만보에 가깝고,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보도블록, 금이 간 시멘트 바닥, 정갈한 듯 울퉁불퉁한 돌 포장, 갖가지 문양을 가진 반질반질한 맨홀 뚜껑.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곱씹고 복기하고 앞으로 할 일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 하면서 나는 땅을 마주하고 걷는다. 더러 별 생각 없는 듯 두 다리를 번갈아 가며 내딛는 반복 행위가 신통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뻑적지근하던 몸이 어느 정도 적응되자 출근길에도 걷기 시작했다. 눈이 다 뜨이기도 전에 집을 나서느라 바쁘지만, 강을 건널 때쯤엔 더러 이른 아침의 템스가 선사하는 남다른 풍경에 사로잡힌다. 어렸을 때 셜록 홈즈를 읽으며 늘 상상했던 런던의 안개 자욱한 풍경, 강 안개에 부서지는 눈부신 햇살, 서쪽으로 길게 누운 브리지 구조물들의 그림자, 멀리 보이는 동런던의 고층 스카이라인, 이른 아침을 여는 경비정들이 지나가고 난 뒤의 물살 갈라진 흔적들.



논현동 구석 자취방과 혜화동의 일터를 오가던 시절, 140번 버스에 앉아 졸다 문득 마주하곤 했던 한강의 해돋이와 해넘이. 어쩌면 나는 템스에서 비슷한 위안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밀물과 썰물이 있는 템스의 수면 레벨은 하루에도 몇 미터씩 오르내린다. 수면이 낮아지는 날이면 옛 부두의 흔적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강바닥의 거친 상처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조차도 매일 걸으며 살피기 전에는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매일 같은 장소에서 템스를 담는다. 매일 재발견하게 되는 런던의 일상 풍경에서 나는 지난 7년여 간 이 도시를 살아남고 버텨야 하는 곳으로만 여겨왔다는 생각에 왠지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모네와 건축’이라는 전시를 본 적이 있다. 그저 건축이라는 말만 들으면 한눈을 팔게 되는 한 결 같이 미련한 본능 때문인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모네의 「수련」을 보았을 땐 작품의 픽셀 하나하나에 감동하는 것보다 작품과 일체화된 작지만 작지 않은 공간으로부터 받는 감동이 더 컸었다. 나는 그 정도로 무지한 한눈팔이였다. ‘모네와 건축’은 모네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캔버스 한 편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어떤 구조체가 존재하는 작품이라면 모두 소환해 낸, 나에겐 취향저격인 큐레이팅이었다. 내가 매일 출퇴근길에 건너다니는 워털루 브리지와 잠이 덜 깬 희미한 시선 안에 펼쳐지는 안개 자욱한, 먹구름에 어두운, 산란광에 눈부신 템스 강 풍경을 모두 모네의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시 끝부분 모네가 1903년 사보이 호텔에 머물며 그렸다는 『워털루 브리지』시리즈 앞에선 놀라고 또 좋아서 한참을 웃고 말았다.


Waterloo Bridge, Sunlight Effect with Smoke by Claude Monet. 1903.


런던을 걷는 게 매일 더 좋아진다.




글/사진(1-4) 현소영

도시와 건축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크고 작은 해프닝을 탐닉하는 삼인칭 관찰자. 한껏 게으른 몸뚱이를 간발의 차이로 이긴 호기심으로 매일 아침 겨우 눈을 뜰 기력을 유지하고 있는 최소주의. 좀머 씨처럼 등속도를 유지하며 런던을 골똘히 누비고 다니는 뚜벅이 외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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