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으로 가는 길목 #10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인구 50만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2개의 국경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도시이다.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 그리고 남쪽으로는 헝가리와 맞닿아 있으며 다뉴브 강을 따라 유람선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와 분리 독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프라하와는 달리 재미없는 도시 그 자체였다. 이후 브라티슬라바시는 젊고 낭만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운타운에 동화적 콘셉트를 잡고 이에 맞는 동상을 제작해 배치해 두었다. 콘셉트라고는 하지만, 모두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어 곳곳에 숨어 있는 동상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 *
:: 연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나폴레옹 동상 ::
정확히는 나폴레옹이 아니라 나폴레옹 군대 소속의 한 장교다.
나폴레옹 군대는 1809년 브라티슬라바를 점령했으며, 그것을 기념해 동상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 다음과 같은 동화적인 요소를 곁들였다. 나폴레옹 군대의 한 장교가 브라티슬라바 여성과 사랑에 빠져 탈영을 했으며, 그 군인은 틈틈이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동료 장교와 마지막 인사를 위해 벤치 옆에 숨어서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동상이 바라보는 정면 일본대사관 앞에 서 있는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후 이 장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샴페인 제조기술을 접목하여 Hubert라는 스파클링 와인을 1825년 제조하였으며 이는 슬로바키아 최초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가 되었다.

특히 여름철 시원하게 식전 음료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광장은 크리스마스 광장으로 변하기에 동상은 다음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한다.

* * *
:: 100년 전 실존인물, 미치광이 신랑 숀나치 ::

브라티슬라바 메인 스퀘어
숀나치(Schöner Náci) 동상은 메인 광장에서 다뉴브 강쪽 방향 모퉁이에 위치해 있다.
숀나치는 친절하고 멋쟁이 신사라는 뜻이며, 100년 전 실존인물 이그나츠 라마르(Ignác Lamár)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도시를 방문하는 이들을 친절하게 환대하는 브라티슬라바의 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결혼 전날 갑자기 사라진 신부를 찾다가 미쳐 버린 아저씨가 그 후로 지나가는 여성에게 꽃을 주며 방황하고 있다는 인물로 설정되었다.

현재 이 동상이 위치한 곳은 건물 모퉁이 인데, 원래는 사진 속 먼 쪽 방향으로 10m 거리에 있었다
금요일이 되면 물가가 저렴한 브라티슬라바를 찾아 비엔나, 런던, 아일랜드에서 젊은 남성들이 모여든다. 한 취객이 그만 숀나치의 모자를 돌로 깨뜨려 경찰에 체포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시에서는 동상을 잘 보이게 끔 모퉁이로 옮기고 모자 부분을 다시 제작해 지금의 숀나치 동상이 되었다.

새로 만든 숀나치의 모자

숀니치 동상과 사진을 찍으려면 꽤 긴 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참고로 동상 뒤의 카페 마이어(Café Mayer)는 1873년부터 시작된 오리지널 슬로바키아 케이크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스타일의 디저트로 유명하다.

숀나치 동상 뒤로 보이는 카페 마이어
숀나치(Schöner Náci) 동상
Rybárska brána 217/1, 811 01 Staré Mesto, 슬로바키아
https://travel.naver.com/overseas/SKBTS4300279/poi/summary
* * *
:: 하수구 아저씨로 불리는 츄밀 (Čumil) 동상 ::

사람들이 모여 있어 금방 찾을 수 있는 츄밀. 밟지 않도록 주의를 끄는 표지판도 보인다.
브라티슬라바 여행자에게 가장 유명한 하수구 아저씨 츄밀(Čumil)은 숀나치 동상에서 30미터 거리에 있어 금방 찾을 수 있다. 행인이 동상을 밟을 수 있어 안내 표지판까지 만들어 놓았다.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상, 츄밀
츄밀은 관찰자, 엿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1997년 도시 정비를 하면서 만든 동상이다. 아무 의미 없이 재미삼아 만든 듯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공산주의 시절의 게으른 표정과 발전된 도시를 씩씩하게 걸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동상이 낮아서 그런지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모자 부분이 유난히 빛나는 것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손으로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이에 츄멜 아저씨 동상은 조용히 읊조린다.
"누구든지 내 머리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어라. 그 어떤 소원도 이루어질 것이다. 단,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만."

츄밀(Čumil) 동상
Panská 251/1, 811 01 Bratislava, 슬로바키아
https://travel.naver.com/overseas/SKBTS290373/poi/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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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데르센과 함께하는 브라티슬라바 산책 ::

안데르센 동상을 향하여
츄멜 동상을 지나쳐 오페라 하우스를 등지고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가 보자. 머지않아 브라티슬라바의 동화적인 동상 하나를 더 만나게 된다.
왜 난데없이 안데르센 동상이 이곳에 있느냐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1841년 브라티슬라바를 방문해서 와인과 아름다운 여인들에 대해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나이 36살이었는데, 이후 그는 덴마크로 돌아가 브라티슬라바에서 본 가난한 어린이를 모티브로 한 성냥팔이 소녀를 출판한다. 이 작품을 당시 유럽, 특히 동유럽에서 만연했던 아동노동력 착취에 대한 고발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동상 뒤로 보이는 ANDERSEN 아이스크림
브라티슬라바 시는 2006년,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동상을 세웠는데, 청동 재료와 디자인 비용으로 60만 달러가 들었다.
어린이들과 친근한 동상이며 뒤로 보이는 ANDERSEN 아이스크림이 특히 맛있다. 코로나 이후로 가격이 올라 1컵에 2유로.
안데르센의 동화 주인공들이 동상 몸을 감싸고 있다. 행복한 달팽이, 벌거벗은 임금님, 꿋꿋한 놋쇠 병정 등 캐릭터가 조각되어 있다. 또한 작품을 쓴 그의 오른손가락이 유난이 빛난다. 역시 사람들의 그의 글 솜씨 기운을 받고 싶기 때문일까?

안데르센의 동화 주인공들과 그 주인공들을 만들어 낸 그의 손가락
Pamätník Hansa Christiana Andersena
https://travel.naver.com/overseas/SKBTS7196216/poi/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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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병 종식을 기념하는 삼위일체탑 ::

삼위일체탑
이제 마지막 동상을 보러 가자. 안데르센 동상을 지나치면 바로 보이는 동상이다. 사실 이것은 동상이라기 보다는 위령탑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름은 ‘삼위일체탑(Morový stĺp)’이며 흑사병 종식을 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세워졌다.
1300년대 중반부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잠복기와 재발을 거쳐 1700년대에 종식이 되었고, 삼위일체 위령탑은 1723년 브라티슬라바 광장에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사이즈를 보면 알겠지만 파리, 비엔나, 프라하 등과 비교해 보면 작고 소박한 느낌이다. 그만큼 다른 도시에 비해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 했다는 증빙이기도 하다.

기동 꼭대기 성 삼위일체 조각의 앞/뒷면. 뒤로 보이는 성마틴성당은 우리의 명동성당 같이 슬로바키아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기둥 꼭대기의 성 삼위일체를 묘사한 조각이 있는데 이는 성부(하느님), 성자(예수님), 성령(비둘기 형상)을 보여준다.
아래에는 흑사병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줬다고 여겨지는 성인들의 석상이 있다. 이중 성 로쿠스는 그의 다리 상처를 가리키며 전염병과의 관련성을 나타내고, 성 세바스티안은 화살에 맞은 모습으로 전염병의 수호자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성모 마리아는 브라티슬라바 시민의 보호자이자 중보자로 조각되어 있으며, 기둥 주위에는 섬세한 조각 장식과 보호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기념물의 신성함을 강조한다.
삼위일체 위령탑 사이로 보이는 UFO 모양의 건축물은 레스토랑이다. 높이 95미터 위치에 있으며 식당과 전망대 역할을 하는데, 특히 남자 화장실 안에서 통유리를 통해 보는 야경은 일품이다.

삼위일체탑(Morový stĺp)
Rybné námestie, 811 02 Staré Mesto, 슬로바키아
글·사진 | 최동섭

서울출생. 브라티슬라바 거주 21년차. TV/자동차 관련 임가공, 물류 및 원자재 수출입 비즈니스를 운영 중이다. 틈틈이 프리랜서로 원고를 기고하고 브라티슬라바에서 잡지를 제작하고 있다. 『그 남자는 왜 동유럽에 살고 있을까』를 출간했으며, 한국, 일본, 유럽에 나만의 놀이터 만들고 있다.
동으로 가는 길목 #10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인구 50만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2개의 국경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도시이다.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 그리고 남쪽으로는 헝가리와 맞닿아 있으며 다뉴브 강을 따라 유람선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와 분리 독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프라하와는 달리 재미없는 도시 그 자체였다. 이후 브라티슬라바시는 젊고 낭만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운타운에 동화적 콘셉트를 잡고 이에 맞는 동상을 제작해 배치해 두었다. 콘셉트라고는 하지만, 모두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어 곳곳에 숨어 있는 동상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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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나폴레옹 동상 ::
나폴레옹 군대는 1809년 브라티슬라바를 점령했으며, 그것을 기념해 동상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 다음과 같은 동화적인 요소를 곁들였다. 나폴레옹 군대의 한 장교가 브라티슬라바 여성과 사랑에 빠져 탈영을 했으며, 그 군인은 틈틈이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동료 장교와 마지막 인사를 위해 벤치 옆에 숨어서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동상이 바라보는 정면 일본대사관 앞에 서 있는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후 이 장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샴페인 제조기술을 접목하여 Hubert라는 스파클링 와인을 1825년 제조하였으며 이는 슬로바키아 최초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가 되었다.
특히 여름철 시원하게 식전 음료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광장은 크리스마스 광장으로 변하기에 동상은 다음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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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실존인물, 미치광이 신랑 숀나치 ::
브라티슬라바 메인 스퀘어
숀나치(Schöner Náci) 동상은 메인 광장에서 다뉴브 강쪽 방향 모퉁이에 위치해 있다.
숀나치는 친절하고 멋쟁이 신사라는 뜻이며, 100년 전 실존인물 이그나츠 라마르(Ignác Lamár)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도시를 방문하는 이들을 친절하게 환대하는 브라티슬라바의 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결혼 전날 갑자기 사라진 신부를 찾다가 미쳐 버린 아저씨가 그 후로 지나가는 여성에게 꽃을 주며 방황하고 있다는 인물로 설정되었다.
현재 이 동상이 위치한 곳은 건물 모퉁이 인데, 원래는 사진 속 먼 쪽 방향으로 10m 거리에 있었다
금요일이 되면 물가가 저렴한 브라티슬라바를 찾아 비엔나, 런던, 아일랜드에서 젊은 남성들이 모여든다. 한 취객이 그만 숀나치의 모자를 돌로 깨뜨려 경찰에 체포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시에서는 동상을 잘 보이게 끔 모퉁이로 옮기고 모자 부분을 다시 제작해 지금의 숀나치 동상이 되었다.
새로 만든 숀나치의 모자
숀니치 동상과 사진을 찍으려면 꽤 긴 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참고로 동상 뒤의 카페 마이어(Café Mayer)는 1873년부터 시작된 오리지널 슬로바키아 케이크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스타일의 디저트로 유명하다.
숀나치 동상 뒤로 보이는 카페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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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수구 아저씨로 불리는 츄밀 (Čumil) 동상 ::
사람들이 모여 있어 금방 찾을 수 있는 츄밀. 밟지 않도록 주의를 끄는 표지판도 보인다.
브라티슬라바 여행자에게 가장 유명한 하수구 아저씨 츄밀(Čumil)은 숀나치 동상에서 30미터 거리에 있어 금방 찾을 수 있다. 행인이 동상을 밟을 수 있어 안내 표지판까지 만들어 놓았다.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상, 츄밀
츄밀은 관찰자, 엿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1997년 도시 정비를 하면서 만든 동상이다. 아무 의미 없이 재미삼아 만든 듯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공산주의 시절의 게으른 표정과 발전된 도시를 씩씩하게 걸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동상이 낮아서 그런지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모자 부분이 유난히 빛나는 것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손으로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이에 츄멜 아저씨 동상은 조용히 읊조린다.
"누구든지 내 머리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어라. 그 어떤 소원도 이루어질 것이다. 단,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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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데르센과 함께하는 브라티슬라바 산책 ::
안데르센 동상을 향하여
츄멜 동상을 지나쳐 오페라 하우스를 등지고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가 보자. 머지않아 브라티슬라바의 동화적인 동상 하나를 더 만나게 된다.
왜 난데없이 안데르센 동상이 이곳에 있느냐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1841년 브라티슬라바를 방문해서 와인과 아름다운 여인들에 대해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나이 36살이었는데, 이후 그는 덴마크로 돌아가 브라티슬라바에서 본 가난한 어린이를 모티브로 한 성냥팔이 소녀를 출판한다. 이 작품을 당시 유럽, 특히 동유럽에서 만연했던 아동노동력 착취에 대한 고발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동상 뒤로 보이는 ANDERSEN 아이스크림
브라티슬라바 시는 2006년,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동상을 세웠는데, 청동 재료와 디자인 비용으로 60만 달러가 들었다.
어린이들과 친근한 동상이며 뒤로 보이는 ANDERSEN 아이스크림이 특히 맛있다. 코로나 이후로 가격이 올라 1컵에 2유로.
안데르센의 동화 주인공들이 동상 몸을 감싸고 있다. 행복한 달팽이, 벌거벗은 임금님, 꿋꿋한 놋쇠 병정 등 캐릭터가 조각되어 있다. 또한 작품을 쓴 그의 오른손가락이 유난이 빛난다. 역시 사람들의 그의 글 솜씨 기운을 받고 싶기 때문일까?
안데르센의 동화 주인공들과 그 주인공들을 만들어 낸 그의 손가락
* * *
:: 흑사병 종식을 기념하는 삼위일체탑 ::
삼위일체탑
이제 마지막 동상을 보러 가자. 안데르센 동상을 지나치면 바로 보이는 동상이다. 사실 이것은 동상이라기 보다는 위령탑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름은 ‘삼위일체탑(Morový stĺp)’이며 흑사병 종식을 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세워졌다.
1300년대 중반부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잠복기와 재발을 거쳐 1700년대에 종식이 되었고, 삼위일체 위령탑은 1723년 브라티슬라바 광장에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사이즈를 보면 알겠지만 파리, 비엔나, 프라하 등과 비교해 보면 작고 소박한 느낌이다. 그만큼 다른 도시에 비해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 했다는 증빙이기도 하다.
기동 꼭대기 성 삼위일체 조각의 앞/뒷면. 뒤로 보이는 성마틴성당은 우리의 명동성당 같이 슬로바키아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기둥 꼭대기의 성 삼위일체를 묘사한 조각이 있는데 이는 성부(하느님), 성자(예수님), 성령(비둘기 형상)을 보여준다.
아래에는 흑사병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줬다고 여겨지는 성인들의 석상이 있다. 이중 성 로쿠스는 그의 다리 상처를 가리키며 전염병과의 관련성을 나타내고, 성 세바스티안은 화살에 맞은 모습으로 전염병의 수호자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성모 마리아는 브라티슬라바 시민의 보호자이자 중보자로 조각되어 있으며, 기둥 주위에는 섬세한 조각 장식과 보호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기념물의 신성함을 강조한다.
삼위일체 위령탑 사이로 보이는 UFO 모양의 건축물은 레스토랑이다. 높이 95미터 위치에 있으며 식당과 전망대 역할을 하는데, 특히 남자 화장실 안에서 통유리를 통해 보는 야경은 일품이다.
글·사진 | 최동섭
서울출생. 브라티슬라바 거주 21년차. TV/자동차 관련 임가공, 물류 및 원자재 수출입 비즈니스를 운영 중이다. 틈틈이 프리랜서로 원고를 기고하고 브라티슬라바에서 잡지를 제작하고 있다. 『그 남자는 왜 동유럽에 살고 있을까』를 출간했으며, 한국, 일본, 유럽에 나만의 놀이터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