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삶으로]봄과 함께 시작한 마드리드 라이프!

여행에서 삶으로 #3



마드리드로의 이사가 결정됐다. 3년간의 바르셀로나 생활을 정리하는 동안 내가 참 많이도 바르셀로나를 좋아했구나 싶어 어느 것 하나 애틋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매일 보던 가우디의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 날씨가 후텁지근해질 때면 맥주 한 캔 사들고 찾아가던 바르셀로네타Barceloneta 바다, 출퇴근길 이용하던 빨간 시내버스.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 바르셀로나


2015년 12월의,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던 날 밤도 생각났다. 8인실 호스텔에서 내 선택에 대한 후회와 눈물로 밤을 꼬박 새웠던 그날이. 지금이라도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끊고 돌아갈까? 직전에 근무했던 회사로 돌아가 사직서를 냈던 건 잠시 내가 판단이 흐려졌던 거라고,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다시 열심히 잘해보겠다고 매달려 볼까 수없이 생각했다. 그렇게도 낯설고 춥던 바르셀로나가 어느새 떠나기 아쉬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도시가 되어 있었다.


3년간 장만한 살림살이가 제법이었다. 큰 캐리어가 무려 8개나 필요했던 걸 보면. 바르셀로나의 정취가 가득 묻은 짐을 이끌고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인근에 새 보금자리를 잡았다. 3월 초의 마드리드는 나를 환영한다는 듯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물론 아침저녁으로는 얇은 재킷이 필요했지만, 한낮의 마드리드는 말 그대로 봄기운 완연. 내 마드리드 라이프가 성공적일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


짐을 채 풀기도 전에 마드리드 시내 산책부터 나섰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봄기운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마드리드의 마스코트인 곰이 반기는 걸 보니 ‘아, 내가 마드리드에 오긴 왔구나.’ 그제야 실감이 났다. 마드리드의 중심 솔 광장Puerta del Sol에는 산딸기를 따먹고 있는 커다란 곰 동상이 하나 서 있다. 곰의 엉덩이나 발꿈치를 만지면 부자가 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마드리드에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어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관광도시 어디에서나 들을 법한 신빙성 0.0001%의 이야기지만 못이기는 척 반질반질해진 곰의 발뒤꿈치를 쓰다듬어 보았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솔 광장에 서서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이 곰의 발뒤꿈치를 얼마나 만졌는지 몰라’ 이야기를 건네고픈 마음에.



약간 출출한 듯. 발길은 솔 광장 인근에 문을 연지 120년이 넘은 추로스 가게로 향했다. 마드리드 이사 첫날, 첫 간식이었다. 따끈하고 찐득한 초콜릿 딥에 갓 튀긴 바삭한 추로스를 찍어 한입에 넣으니 이사 때문에 맘 졸이고 고민했던 지난 보름간의 피로가 달콤하게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어느 것 하나 시간의 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구나, 마드리드에는. 길 가다 마주친 이발소는 1900년에 문을 열었고, 그 바로 옆 헤밍웨이의 단골집이었다는 레스토랑은 1725년 문을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고 한다. 옛날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잠시 말을 매어두고 볼일을 보던 말 고리마저 마드리드 역사의 산증인으로 오래오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드리드에 살면서 만나야 할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거리 곳곳 스페인 회화사 전체를 대표하는 화가 벨라스케스의 이름과 그의 대표작, <시녀들>의 패러디 광고가 눈에 띄었다. <풀밭 위의 점심>을 그린 마네가 ‘화가 중의 화가’라고 극찬한 그의 작품 세계를 공부해 봐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어디 벨라스케스뿐인가? 예쁜 카페의 벽면에 소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얼굴이 보인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 이름도 세르반테스이다. 몇 번이고 읽으려 시도했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던 돈키호테도 이참에 꼭 읽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풀어야 할 짐이 한 가득이라는 생각에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이제 곧 나의 일터가 될 프라도 미술관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수없이 왔던 마드리드인데, 프라도 미술관인데, 오늘따라 감회가 새로웠다. 앞으로 잘해보자는 인사는 너무 식상했지만, 이보다 더 내 마음을 잘 전달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앞으로 잘 해봐요!


마드리드에서 나는 어떤 추억들을 쌓아가게 될까? 어떤 이를 만나 웃음을 터뜨리고, 또 어떤 일 때문에 눈물짓게 될까? 설렘 반, 긴장 반의 기분 좋은 두근거림. 이제 정말 집으로 향한다. Mi dulce hogar!*




* 즐거운 나의 집!




글/사진 이진희

2014년 강렬했던 스페인 여행의 마력에 빠져 무대뽀로 스페인에 터를 잡아버린 그녀. 현재는 스페인 현지 가이드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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