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 #12
올겨울은 유난히 눈 구경을 많이 한 해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면 벌써 10년도 더 된 예전에는 겨울에 눈이 참 자주 왔는데, 한동안 눈 소식이 없던 비엔나였다.
눈이 많이 오던 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어느 해 3월, 쇤브룬 궁전의 파릇파릇한 잔디밭을 기대하고 허니문 스냅을 찍으러 온 커플이 있었다. 하지만 뿌옇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과 전날 자박하게 쌓인 흰 눈 덕분에 배경은 오직 화이트뿐. 알록달록 겨울 재킷과 털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던 두 사람이 아직도 새록새록 하다.

그다음 해, 작년 항공 사진과 비교하는 뉴스가 나왔다. 눈으로 하얗게 덮였던 곳이 1년 후 같은 시즌에는 차가운 공기가 비집고 들어올 틈 없는 ‘컬러풀’한 모습이라는, 이상 기온을 알리는 기사였다. 실제로 그 뉴스가 나온 후부터 눈 구경을 하는 날이 줄어든 듯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벨베데레 궁정 정원을 걷다가 발목까지 눈밭에 푹 빠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막 군 복무를 마치고 비엔나에 놀러 왔던 동생이 신나게 눈 뭉치를 집어 던졌던 기억도. 따뜻한 남쪽 동네에서 살았던 우리 남매에게 눈 내리는 유럽은 정말 새로운 모습, 새로운 날씨였다. 물론 유럽살이를 시작하고 나서는 푹 빠질 정도로 쌓이는 눈에 통부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만큼 눈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상 기온이 시작되었다는 뉴스 이후 눈은 살포시 내렸다가 금방 녹아버렸다. 얇게나마 쌓이는가 싶었던 눈도 하루이틀 지나면 언제 내렸냐는 듯 삭 사라지곤 했다. 나 또한 이것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가 체감할 정도였다.
그런데 올겨울에는 눈 소식이 잦았다. 오랜만에 눈이 펑펑 쏟아져서일까. 눈길을 걷다가 비틀비틀, 미끄러지는 사람들도 꽤 보았다. 푹푹 쌓이는 눈밭이 얼마 만인지. 부랴부랴 치워도 그새 녹았다가 얼어붙은 길은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따뜻한 실내에서 따끈하게 데운 핫초코와 커피를 불어 마시며 창밖으로 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호사일 것이다. 한창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떴던 겨울, 펑펑 내리는 눈 사이로 환한 조명이 드리워진 크리스마스 마켓은 너무너무 예뻤다. 손이 꽁꽁 어는 추위를 뚫고서라도 볼만한 광경이었다.

이제 겨울이 끝나간다. 천천히 풀이 돋고, 꽃이 피는 화사한 비엔나를 보게 되리라. 그러면서도 한편 올 연말, 또다시 하얗게 물들 비엔나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https://instagram.com/photo_by_miri_vienna
https://blog.naver.com/miri_in_vienna
https://mirivienna.com
하루 한 잔 비엔나 #12
올겨울은 유난히 눈 구경을 많이 한 해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면 벌써 10년도 더 된 예전에는 겨울에 눈이 참 자주 왔는데, 한동안 눈 소식이 없던 비엔나였다.
눈이 많이 오던 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어느 해 3월, 쇤브룬 궁전의 파릇파릇한 잔디밭을 기대하고 허니문 스냅을 찍으러 온 커플이 있었다. 하지만 뿌옇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과 전날 자박하게 쌓인 흰 눈 덕분에 배경은 오직 화이트뿐. 알록달록 겨울 재킷과 털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던 두 사람이 아직도 새록새록 하다.
그다음 해, 작년 항공 사진과 비교하는 뉴스가 나왔다. 눈으로 하얗게 덮였던 곳이 1년 후 같은 시즌에는 차가운 공기가 비집고 들어올 틈 없는 ‘컬러풀’한 모습이라는, 이상 기온을 알리는 기사였다. 실제로 그 뉴스가 나온 후부터 눈 구경을 하는 날이 줄어든 듯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벨베데레 궁정 정원을 걷다가 발목까지 눈밭에 푹 빠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막 군 복무를 마치고 비엔나에 놀러 왔던 동생이 신나게 눈 뭉치를 집어 던졌던 기억도. 따뜻한 남쪽 동네에서 살았던 우리 남매에게 눈 내리는 유럽은 정말 새로운 모습, 새로운 날씨였다. 물론 유럽살이를 시작하고 나서는 푹 빠질 정도로 쌓이는 눈에 통부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만큼 눈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상 기온이 시작되었다는 뉴스 이후 눈은 살포시 내렸다가 금방 녹아버렸다. 얇게나마 쌓이는가 싶었던 눈도 하루이틀 지나면 언제 내렸냐는 듯 삭 사라지곤 했다. 나 또한 이것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가 체감할 정도였다.
그런데 올겨울에는 눈 소식이 잦았다. 오랜만에 눈이 펑펑 쏟아져서일까. 눈길을 걷다가 비틀비틀, 미끄러지는 사람들도 꽤 보았다. 푹푹 쌓이는 눈밭이 얼마 만인지. 부랴부랴 치워도 그새 녹았다가 얼어붙은 길은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따뜻한 실내에서 따끈하게 데운 핫초코와 커피를 불어 마시며 창밖으로 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호사일 것이다. 한창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떴던 겨울, 펑펑 내리는 눈 사이로 환한 조명이 드리워진 크리스마스 마켓은 너무너무 예뻤다. 손이 꽁꽁 어는 추위를 뚫고서라도 볼만한 광경이었다.
이제 겨울이 끝나간다. 천천히 풀이 돋고, 꽃이 피는 화사한 비엔나를 보게 되리라. 그러면서도 한편 올 연말, 또다시 하얗게 물들 비엔나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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