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 #13
디지털카메라의 성능이 점점 뛰어나지고 있는 지금. 나 역시 디지털 바디로 많은 작업을 하지만, 내게 있어 여전히 놓을 수 없는 작업 중 하나가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찍는 데 제약이 되는 요소도 많고, 폴라로이드가 아니면 찍자마자 바로 볼 수 없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필름카메라로 찍는 그 ‘손맛’을 포기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왜, 어째서, 아직도, 필름카메라앓이를 하고 있나.
필름카메라로 찍은 비엔나
비엔나에서 스냅 촬영을 하며, 스페셜 옵션으로 필름카메라 촬영 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필름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데다가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디지털카메라로도 함께 작업하는 투 바디 스냅 촬영이다.
예전에는 현상소에 필름 스캔도 맡겼지만, 요즘은 아예 스캐너와 DSLR로 직접 필름을 스캔하며 색감 작업까지 하고 있다. 안 그래도 비싼 필름, 스캔까지 하면 더더욱 작업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인건비, 특히 수작업이 비싼 유럽이니만큼 “이럴 바엔 내가 직접 한다!”는 마인드랄까. 만약 암실을 만들 여건만 됐다면 현상까지 직접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미 현상 작업을 위한 약품을 알아봤지만, 약품 처리 문제 때문에 자가 현상은 포기했다.)
한국에서는 당일 스캔에 당일 전송, 거기에 유럽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현상‧스캔을 맡길 수 있다. 예전에 한국에서 필름을 맡기고 반나절 뒤에 바로 스캔 파일을 이메일로 받아 그야말로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만삭 사진과 육아 사진
유럽에서는 우편으로 필름을 맡겨야 하다 보니 배송에만 하루 이틀이 걸리고, 작업하는 데 또 하루 이틀이 걸린다. 이곳에서도 스캔 이미지는 메일로 보내주는데, 덕분에 오늘은 메일이 왔나 계속 새로 고침을 하게 되는 부작용도 생겼다. 아니, 그 이전에 내 필름이 제대로 가고 있나 우편 배송 현황부터 여러 번 찾아보게 된다.
그렇다면 비엔나에서 필름 작업에 드는 비용은 얼마 정도일까. 필름 가격은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보통 10유로 중후반대 필름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시네스틸 800’은 36컷 필름 1롤이 대략 18~19유로(약 27,000원)이다. 이걸 현상소에 등기 우편으로 보내는 데 대략 6유로, 현상과 스캔에 15유로 정도 든다. 현상소로부터 필름을 다시 받는 데도 7유로, 스캔한 파일을 이메일 링크로 받는 데도 2유로 서비스 비용이 추가된다. 필름 값을 제외하고 현상하고 스캔하는 데만 30유로(약 44,000원)를 써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직접 가져다주고 받아 오면 왕복 우편 비용이 빠지겠지만, 현상소 영업시간과 내 출퇴근 시간이 맞물려 있어 직접 갈 수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우편을 이용하는 중이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비엔나
필름 값도 비싸고 현상 값도 너무 나간다고 툴툴대지만, 완성되어 나온 필름 사진을 보면 그런 불만이 싹 사라진다. 그야말로 필름 감성! 노출계를 쓰지 않고 대략 뇌출계*를 써서 찍어본 사진들이 예상보다 잘 나왔을 때 절로 나오는 감탄이란! 게다가 필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글자글한 노이즈(필름 그레인)와 색감 때문인지 초점이 나가거나 흔들린 사진도 괜히 ‘감성샷’으로 느껴진다.
셔터를 누를 때의 그 손맛도 빼놓을 수 없다. 디지털카메라들은 일부러 셔터 소리를 끄는 전자 셔터로 많이 찍곤 한다. 셔터 소리를 없애 모델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다가가려는 의도도 있고, 거리에서 찰칵찰칵 소리를 낼 때 어전찌 위축되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중형 카메라로 본 세상
반면 필름카메라의 기계식 셔터는 아주 우렁찬 소리를 들려준다. 찰-칵! 그럼에도 필름카메라의 셔터 소리는 한 번 더 듣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이다. 찰칵, 철컥, 철커덕, 카메라마다 소리도 다 다르다. 셔터의 움직임도 더 강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주어진 셔터가 12번(중형 필름) 아니면 36번(35mm 필름)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다. 필름 한 컷에 절반씩 사진이 찍히는 하프 카메라는 더 마음껏 찍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셔터를 누를 때마다 한 번 더 망설이게 된다. 이거 찍었다가 저기 가서 더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오면 어쩌지?
필름카메라는 디자인도 참 예쁘다. 디지털 바디들과는 다른 무게감이 있다. 물론 작고 귀엽고 가벼운 필름카메라도 많지만, 1kg이 넘는 육중한 카메라는 차원이 다른 묵직한 느낌을 선사한다. 오래 들고 다니면 무거워서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다음 날 또 들고 나갈까? 절로 손이 간다.
볼수록 더 예쁜 롤라이플렉스
무엇보다 찍는 순간 밀려오는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이 좋다. 셀프 스캔까지 하는 지금은 현상된 필름을 받으면 어떻게 작업해야 할지 고민하는 재미가 덧붙었다. 한 장의 사진을 받을 때까지 설렘의 연속. 어쩌면 내게 스냅 작업을 맡기는 고객들보다 내가 더 큰 기대에 부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필름 가격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필름카메라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비엔나
● 편집자 주) 뇌출계: 노출계가 없거나 고장난 필름카메라의 경우 촬영자가 직접 노출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腦출계’라고 부르는 밈이 있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https://instagram.com/photo_by_miri_vienna
https://blog.naver.com/miri_in_vienna
https://mirivienna.com
하루 한 잔 비엔나 #13
디지털카메라의 성능이 점점 뛰어나지고 있는 지금. 나 역시 디지털 바디로 많은 작업을 하지만, 내게 있어 여전히 놓을 수 없는 작업 중 하나가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찍는 데 제약이 되는 요소도 많고, 폴라로이드가 아니면 찍자마자 바로 볼 수 없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필름카메라로 찍는 그 ‘손맛’을 포기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왜, 어째서, 아직도, 필름카메라앓이를 하고 있나.
비엔나에서 스냅 촬영을 하며, 스페셜 옵션으로 필름카메라 촬영 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필름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데다가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디지털카메라로도 함께 작업하는 투 바디 스냅 촬영이다.
예전에는 현상소에 필름 스캔도 맡겼지만, 요즘은 아예 스캐너와 DSLR로 직접 필름을 스캔하며 색감 작업까지 하고 있다. 안 그래도 비싼 필름, 스캔까지 하면 더더욱 작업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인건비, 특히 수작업이 비싼 유럽이니만큼 “이럴 바엔 내가 직접 한다!”는 마인드랄까. 만약 암실을 만들 여건만 됐다면 현상까지 직접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미 현상 작업을 위한 약품을 알아봤지만, 약품 처리 문제 때문에 자가 현상은 포기했다.)
한국에서는 당일 스캔에 당일 전송, 거기에 유럽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현상‧스캔을 맡길 수 있다. 예전에 한국에서 필름을 맡기고 반나절 뒤에 바로 스캔 파일을 이메일로 받아 그야말로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유럽에서는 우편으로 필름을 맡겨야 하다 보니 배송에만 하루 이틀이 걸리고, 작업하는 데 또 하루 이틀이 걸린다. 이곳에서도 스캔 이미지는 메일로 보내주는데, 덕분에 오늘은 메일이 왔나 계속 새로 고침을 하게 되는 부작용도 생겼다. 아니, 그 이전에 내 필름이 제대로 가고 있나 우편 배송 현황부터 여러 번 찾아보게 된다.
그렇다면 비엔나에서 필름 작업에 드는 비용은 얼마 정도일까. 필름 가격은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보통 10유로 중후반대 필름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시네스틸 800’은 36컷 필름 1롤이 대략 18~19유로(약 27,000원)이다. 이걸 현상소에 등기 우편으로 보내는 데 대략 6유로, 현상과 스캔에 15유로 정도 든다. 현상소로부터 필름을 다시 받는 데도 7유로, 스캔한 파일을 이메일 링크로 받는 데도 2유로 서비스 비용이 추가된다. 필름 값을 제외하고 현상하고 스캔하는 데만 30유로(약 44,000원)를 써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직접 가져다주고 받아 오면 왕복 우편 비용이 빠지겠지만, 현상소 영업시간과 내 출퇴근 시간이 맞물려 있어 직접 갈 수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우편을 이용하는 중이다.
필름 값도 비싸고 현상 값도 너무 나간다고 툴툴대지만, 완성되어 나온 필름 사진을 보면 그런 불만이 싹 사라진다. 그야말로 필름 감성! 노출계를 쓰지 않고 대략 뇌출계*를 써서 찍어본 사진들이 예상보다 잘 나왔을 때 절로 나오는 감탄이란! 게다가 필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글자글한 노이즈(필름 그레인)와 색감 때문인지 초점이 나가거나 흔들린 사진도 괜히 ‘감성샷’으로 느껴진다.
셔터를 누를 때의 그 손맛도 빼놓을 수 없다. 디지털카메라들은 일부러 셔터 소리를 끄는 전자 셔터로 많이 찍곤 한다. 셔터 소리를 없애 모델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다가가려는 의도도 있고, 거리에서 찰칵찰칵 소리를 낼 때 어전찌 위축되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반면 필름카메라의 기계식 셔터는 아주 우렁찬 소리를 들려준다. 찰-칵! 그럼에도 필름카메라의 셔터 소리는 한 번 더 듣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이다. 찰칵, 철컥, 철커덕, 카메라마다 소리도 다 다르다. 셔터의 움직임도 더 강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주어진 셔터가 12번(중형 필름) 아니면 36번(35mm 필름)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다. 필름 한 컷에 절반씩 사진이 찍히는 하프 카메라는 더 마음껏 찍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셔터를 누를 때마다 한 번 더 망설이게 된다. 이거 찍었다가 저기 가서 더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오면 어쩌지?
필름카메라는 디자인도 참 예쁘다. 디지털 바디들과는 다른 무게감이 있다. 물론 작고 귀엽고 가벼운 필름카메라도 많지만, 1kg이 넘는 육중한 카메라는 차원이 다른 묵직한 느낌을 선사한다. 오래 들고 다니면 무거워서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다음 날 또 들고 나갈까? 절로 손이 간다.
무엇보다 찍는 순간 밀려오는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이 좋다. 셀프 스캔까지 하는 지금은 현상된 필름을 받으면 어떻게 작업해야 할지 고민하는 재미가 덧붙었다. 한 장의 사진을 받을 때까지 설렘의 연속. 어쩌면 내게 스냅 작업을 맡기는 고객들보다 내가 더 큰 기대에 부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필름 가격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필름카메라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 편집자 주) 뇌출계: 노출계가 없거나 고장난 필름카메라의 경우 촬영자가 직접 노출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腦출계’라고 부르는 밈이 있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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