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추럴하게]스페인에서 보낸 나흘 #2

본, 내추럴하게 #15 


2. 시체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체스로 들어오는 방법은 기차와 버스 두 가지인데요, 몇 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버스로 와봤습니다. 부리나케 체크인을 한 후, 식순에 의해 국민의례…를 하려다 태극기가 없는 관계로 생략하고 해변으로 바로 달려갑니다.



그냥 엎어졌어요. 해변엔 이미 많은 인간들이 신이 무상으로 주시는 태양을 만끽들하고 계시네요. 저 앞에는 모여서 뭐하나 눈여겨봤더니… 아, 진실게임이네요. (진짜 믿으시는 분들은 없으시죠?)


햇빛은 따갑지만 아직 본격적 여름 더위는 아닌 탓에 바람은 선선하여 이곳 스페인을 비롯한 지중해 일대는 5~6월, 9~10월이 한여름보다 선탠을 하기는 더 좋습니다. 파라솔이 필요 없는 거죠.


이곳 시체스의 모래사장은 모래가 유독 곱고 입자가 작아 촉감도 좋습니다. 위에선 태양이 아래에선 모래 열기가 전자레인지 안의 통통 만두처럼 훅훅 가열해 줍니다.



짧았지만 감동적이었던 올 해의 첫 광합성을 마치고 저녁 즈음의 바다 마을을 즐기러 바로 출동! 저녁 파도 소리도 시원하고요, 곳곳에 주황색의 불들이 어둠을 밝혀주니 점점 운치가 무르익어갑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해변 바로 앞의 호텔을 예약해주신 여행천재 와이프님의 덕에 야자수 그늘 아래 파도소리를 들으며 조식을 즐깁니다. 이 무슨 호사란 말입니까!



스페인 하면 이 "하몽"이죠. 독일식보다 조금 두꺼운 식감이지만 부드럽고 살짝 당도도 느껴지는 게 빵과 케미가 끝내줍니다. 이 하몽을 보니 문득 중고딩 시절 "예술인가 외설인가" 이런 홍보문구로 안 그래도 호르몬 과다분비에 허덕이던 청소년들을 혹세무민하던 성인비디오 〈하몽하몽〉이란 영화가 생각나네요. 아름다운 영화는 역시 이렇게 아름다운 환경이 모티브가 되어 탄생하나 봅니다.



호텔 조식을 폭식했으니 해변 산책을 하며 소화시키기 작업에 들어갑니다. 앗, 해변으로 들어가려니 스페인어와 그림으로 된 표지판이 딱! 스페인어를 모르지만 저는 못 들어간다는 뜻인가 봐요.



원래 금지된 것을 깰 때 그 희열은 큰 법! 이렇게 인생 샷 한방 남겨봅니다.


저 넓고 푸른 광대한 바다를 접하니 한갓 미물인 우리 인간들의 욕심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따위의 감동적 생각이 솟구칩니다. 이곳, 이 상황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런 철학적 생각들!!


뭐, 이런 건설적인 생각이 5초를 못 넘기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게 어디냐는.



아무리 개방적이라고 하는 유럽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아직은 공공장소에서 가벼운 스킨쉽 나누기조차 어려운데 이곳 시체스는 일명 "무지개 마을"로 불리며 비교적 거리에서도 자유롭게 드러내며 다닐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곳곳에 게이 페스티발, 파티 등의 홍보물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머무르던 호텔에서도 흔히 남남 커플을 볼 수 있기도 했고요. 낯설지만 다름의 차이이니 제 취향은 아니더라도 도와는 못 줘도 손가락질이나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는 개인적 소견입니다. 또, 그 낯선 장면들조차 하나의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요.


feat) 무지개 깃발 꽂혀있는 상점 레스토랑 등등 이곳을 제외하더라도 유럽에선 그분들 우대(?)한다는 하나의 징표이기도 합니다.



아, 시간이 너무 짧아요. 노는 건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요. 어리바리 감동의 눈물이 마르기전에 갈 날이 옵니다. 그.러.나. 한 달 후 여름 휴가가 있다는 사실에 마냥 슬퍼만은 하지 않으렵니다.



마지막 일분일초를 즐기려 계속 돌아봅니다. 파도소리와 짠 내를 계속 음미하며 노래 가사 외우듯 새겨 보는 거지요.

(아 오그라들어라)



에스프레소 더블샷 들어가 봅니다. 이 낭만!! 분위기!! 다 좋은데 커피 든 인간이 니보(Niveau, 수준)를 떨어뜨립니다.


여담이지만 희한한 게 이태리와 스페인은 같은 라틴권이고 인접 국가인데 커피, 와인, 아이스크림 이 대표 3대 먹거리에서 확실히 이태리한테 밀려요. 뭐, 제 개취니 일반화는 아닙니다.



샴페인 한 잔으로 시체스의 마지막 밤을 달래봅니다.


자, 다음 달 여름 휴가 여행은 어디로 갈까?


어디가 되었건 무조건 바다로 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아직은 젊은가 봅니다. 산보다 바다가 더 좋은 것을 보면요.





글/사진 프리드리히 융

2003년 독일유학 중 우연히 독일 회사에 취직하여 현재까지 구 서독의 수도(현재 독일의 행정수도)인 본에 거주중인 해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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