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삶으로]안녕? 아스투리아스! 그 강렬한 첫만남의 기억

여행에서 삶으로 #6



가수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노래의 영향 때문인지 늘 내 머릿속 한 편에는 이곳 스페인에서의 생활이 긴 여행의 일부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틀이라도 붙여 쉬게 되는 날이면 늘 짐을 꾸려 스페인 구석구석을 여행한다. 언젠가 스페인을 떠나게 되는 날 조금이나마 덜 아쉬울 수 있도록. 아무튼 이번에도 떠났다. 1박 2일 왕복 1,200km의 대장정을.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스페인의 최북부 코바동가Covadonga. 스페인은 17개 자치 지방으로 구성된 나라다. 각각의 특색을 가진 17개 지방이 모여 하나의 스페인을 이루고 있는데, 이 17개 지방의 색깔이 어찌나 다른지 마치 17개의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런 표현도 있다. “스페인에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


코바동가는 이 아스투리아스Asturias에 자리 잡은 산악지대이다. 휴양지가 아닌 산악지대! 그런데 왜 내가 왕복 1,200km를 감수하고 코바동가를 선택했느냐. 8세기 초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들 즉,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까지 세력을 넓혀 왔지만, 스페인의 기독교 세력은 속수무책이었다. 7년 만에 대부분의 스페인 땅이 이슬람 세력의 지배 아래 들어갔는데, 스페인이 첫 승리를 거둔 곳이 코바동가였다. 스페인의 영웅 펠라요Pelayo가 이끌던 군대가 코바동가의 산에서 이슬람 군대로부터 첫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승리를 기점으로 780년간의 인고의 시간 끝에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스페인 사람들이니, 이 코바동가는 스페인 역사에서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두말할 필요 없는 성지다. 



마드리드에서 차로 4시간여를 달려 아스투리아스 지방에 진입했다. 장시간의 운전에 지친 친구를 위해 잠시 길가의 바르Bar에 차를 세웠다. 바르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의 흥겨운 담소가 한창이었는데, 역시 이런 흥겨운 자리에는 술이 빠질 수 없다. 아스투리아스 지방답게 어르신들은 시드라Sidra에 취해 계셨다. 시드라는 사과로 만든 발효주다. 스페인 북부 지방 전통술로, 와인 대체품으로 처음 주조되었다고 한다. 아스투리아스와 바스크 지방을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시드라는 한잔이 아닌 한 병으로만 판매하고, 1m 높이에서 따르는 게 특징이다. 1m 높이에서 아슬아슬 잔에 떨어지는 동안 시드라가 공기와 접촉해서 향과 맛이 더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시드라를 따르는 할아버지를 내가 흥미롭게 지켜보자, 내게도 한번 따라 보라하신다. 난 겁도 없이 시드라 병을 잡고 어깨너머로 배운 할아버지의 폼을 따라 과감하게 시도해 보았다. 결과는 시드라 거의 반병을 바닥에 쏟는 대실패! 아스투리아스 어르신들께 큰 웃음을 선물했다. 어찌나 크게들 웃으시던지. 나도 잊지 못할 추억이 만들어졌다. 



커피와 시드라 한잔으로 기운을 차린 우리는 서둘러 다시 차를 몰았고, 드디어 약한 빗발이 흩날리는 코바동가와 마주했다. 비와 운무 덕분인지 그 신비로운 첫인상이 지금껏 남아 있다. 펠라요 장군이 지키고 선 코바동가 성당은 춥고 빗발이 날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성당 내부에서는 스페인의 그 어떤 성당보다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미사가 진행 중이었고, 그 장엄함에 우리는 숨죽여 잠시나마 그 분위기에 동참했다.



이튿날 산속에 자리 잡은 아담한 숙소에서 아스투리아스의 우유와 치즈, 그리고 계란 등으로 차린 소박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코바동가 호수로 향했다. 사실 코바동가 여행의 필수 코스라고 불리는 이 호수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아침 알람 소리에 번쩍 몸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호수로 가는 버스 티켓을 판매하는 직원이 우리를 말리는 바람에 맥이 빠져버렸다.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라고. 솔직한 그녀의 고백에 잠시 고민했지만, 그 안개라도 보러가자며 우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40분쯤 달렸을까? 4년간 사진으로만 보던 그 코바동가 호수에 도착했고, 우리가 도착한 때에 맞춰 기적처럼 조금씩 운무가 걷히기 시작했다. 걷히는 운무 사이로 보이던 순박한 눈망울의 소떼, 그리고 호수를 감싸고 있는 산세. 좋았다, 짙푸른 코바동가 호수를 보지 못했더라도. 운무에 감싸인 코바동가가 내겐 최고의 풍경이었다. 다시 운무가 모든 풍경을 덮어버리기 전에 친구와 난 시간도 잊은 채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우리의 눈과 가슴에 코바동가의 안개를 채웠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서서히 운무가 돌아왔고, 우리의 시야에서 호수를 거두어 갔다. 아쉽지만 마지막 커피 한잔을 끝으로 시내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그 마지막 커피마저 참 인상적이었다. 4년간 스페인에서 마셨던 수백 잔의 커피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던 순박한 눈망울의 소에게서 바로 짜온 우유 덕분이었을까? 눈앞에 펼쳐진 신비로운 호수 덕분이었을까? 코바동가 산속에서 마신 2유로 커피는 어쨌거나 내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스투리아스로의 첫 여행을 마친 후, 난 한참을 취해 있었다. 그래서 우유도, 치즈도, 와인도 한동안 아스투리아스에서 생산한 것만 먹었더랬다. 지금도 가만히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곳, 강렬한 첫 만남의 기억, 아스투리아스, 코바동가의 안개.





글/사진 이진희

2014년 강렬했던 스페인 여행의 마력에 빠져 무대뽀로 스페인에 터를 잡아버린 그녀. 현재는 스페인 현지 가이드로 활동중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lee.jinny_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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