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삶으로]서툴러도 괜찮아

여행에서 삶으로 #7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국에서의 난 ‘온실 속의 화초’였다. 일찍 결혼한 언니들 덕분에 서른이 되도록 막내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가족들 곁에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았다. 


그러던 내가 홀린 듯이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짐을 싸서 떠나왔다, 이곳 스페인으로. 2015년, 서른한 살 겨울이었다. 12월 6일 바르셀로나에 도착했고, 처음 짐을 푼 곳은 8인실 호스텔이었다. 내가 스페인에서 일하게 된 회사의 방침이 첫 한 달은 호스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 지리를 익히기 위해.


커다란 캐리어를, 아니 말이 캐리어지 내 덩치만한 이민가방을 낑낑대며 끌고 도착한 호스텔 룸 상황은 내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현실이었다. 8인실, 남녀혼숙. 한국의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주무시다가 벌떡 일어날 그런 이야기들. 



처음 보는 남녀혼숙 호스텔 풍경 속으로 발을 디디며 14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비행에 지친 몸을 뜨거운 물로 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공용 샤워실 샤워기 버튼을 눌렀을 때 내 머리를 강타하던 찬물의 충격. 그 차가운 물줄기를 4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집에 가야겠다.” 

“내가 잠깐 뭐에 홀렸었어!”


바르셀로나로 떠나던 날, 인천공항 출국 게이트 직전까지 나를 따라와 울먹이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찬물을 참아 내며 한참을 울었다. 그러나 후회고 뭐고 바로 다음 날부터 생각할 겨를이 없는 강행군이 시작됐다. 낯설고도 낯선 바르셀로나의 분위기를 익혀야 했고,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업무를 익혀야 했다. 이후 한 달 간 무려 7개의 호스텔을 전전했다.


31살의 홀로서기는 혹독했다. 아침저녁으로 가족들과 함께하던 따뜻한 식사. 벗어놓기만 하면 깨끗하게 세탁되어 돌아오던 옷가지. 이젠 나의 끼니를 걱정해 주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퇴근 후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 순서를 기다려 공용 세탁기를 돌리고, 세탁이 끝나는 동안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빨래를 널어야 했다. 제대로 마르지 않은 빨래여서 내 몸에선 항상 꿉꿉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호스텔 생활 한 달 동안 단 하루도 잠을 편하게 잔 적이 없었다. 새벽에 들어와 취중에 내 머리 바로 위에 구토를 하던 사람, 차도르를 두른 채 시간마다 알라를 향해 기도를 드리던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룸메이트로 인해 잠 못 이루던 그 밤들.


사연 많던 한 달간의 호스텔 생활이 끝나고 회사에서 구해준 숙소에 입주했다. 아직 보일러 공사 중이니 일주일만 더 호스텔에서 지내라는 팀장님의 만류에도 그저 8인실이 아닌 ‘내 방’에서 하루라도 편히 자고 싶다는 일념으로 짐을 쌌다. 그리고 그게 그리도 설렜다.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내 방, 오롯이 나만을 위한 작은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  


그러나 1월의 바르셀로나는 참 추웠더랬다.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아 말 그대로 냉동 창고 같은 방에서 가져온 옷 중에 가장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잠을 잤다. 당연히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아 동기와 서로 부엌에서 물을 데워 날라다 주며 샤워를 했다.



서럽던 1년차 시절 매일 밤낮으로 서울에, 따뜻한 우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4년이 흐른 지금까지 내가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춥던 냉골에서 잠을 청했어도, 소매치기가 뿌린 케첩 세례에 온통 옷이 더럽혀져 서러움에 눈물이 터졌어도, 물리고 물린 크루아상이 아니라 고추장에 비빈 따뜻한 밥 한공기가 간절했어도, 왜 나는 아직까지 이곳에 있는 걸까?



사실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홀로 좌충우돌하는 내가 싫지 않았다는 것. 한국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스페인에서, 31살에야 처음으로 모든 것을 내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좋았다. 비록 밤마다 축축한 눈으로 잠들지언정.


뜬금없지만 스페인이 낳은 최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95세가 넘은 나이에도 매일 6시간씩 연습을 계속하던 첼로 명장이 했던 그 말.


“나는 아직도 연습을 통해 매일 조금씩 내 실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느낀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홀로섰다. 그리고 서툰 그 홀로서기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조금씩 성장함을 느낀다. 마냥 따뜻한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일련의 시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아주 조금씩,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고 있다. 


스페인은 내게 그런 곳이다.





글/사진 이진희

2014년 강렬했던 스페인 여행의 마력에 빠져 무대뽀로 스페인에 터를 잡아버린 그녀. 현재는 스페인 현지 가이드로 활동중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lee.jinny_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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