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칼비노를 찾아서 - 이탈리아 산레모 여행기


산레모는 이탈리아 반도 북서쪽 리구리아 주의 작은 도시로 프랑스 니스와 인접해 있다. 뒤쪽으로는 알프스 산맥 끝자락이, 앞으로는 리구리아해(지중해)가 펼쳐진 뛰어난 경관으로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도시이다. 그리고 1951년부터 개최되어 우리 귀에도 익숙한 칸초네들이 소개되었던 ‘산레모 가요제’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내게 산레모라는 이름은 언제나 이탈로 칼비노와 함께한다. 이탈로 칼비노는 1923년 쿠바에서 태어나 세살 때 아버지의 고향인 산레모로 왔고, 토리노 대학에 입학하던 스무 살 때까지 이곳에 살았다. 산레모를 떠난 뒤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고향을 찾았다고 한다. 


산레모 시립도서관 입구에 있는 고등학교 시절의 칼비노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밀라노에서 하루에 몇 번 없는 직통 기차를 타고서도 산레모에 닿기까지는 네 시간이 더 걸렸다. 직통 기차를 타지 못할 경우 대부분 제노바에서 기차를 갈아타게 된다. 동양인에게 잘 알려진 도시가 아니어서인지 기차에 동양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기차가 속도를 낼수록 산레모라는 도시가 더 이국적이고 신비롭게 다가왔다. 제노바를 지나 기차는 리구리아 해안을 따라 달렸지만, 비가 내리는 바람에 흐릿한 풍경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 곧 닿을 칼비노의 도시에 대한 기대가 모든 걸 상쇄하고도 남았다.


주택들 밑에 있는 산레모 역


칼비노는 한 인터뷰에서 “산레모는 내 작품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나의 상상과 심리와 언어가 산레모라는 핵심에서 시작되어 펼쳐진다.”고 말한다. 배경으로 직접 등장하는 『거미집을 가는 오솔길』과 『나무위의 남작』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도시들』 같은 작품에도 산레모의 모습이 녹아 있다. 칼비노의 어린 시절, 산레모는 영국인과 러시아인을 비롯한 다양한 세계인들이 넘치는 이국적인 도시였다고 한다. 러시아 황후였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1874년 겨울을 산레모에서 보낸 뒤 해변에 야자수를 심어주었을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러시아 정교회 교회가 있기도 하다.

 

러시아 황후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가 선물한 야자수 너머로 러시아정교회 교회 지붕이 보인다.


산레모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칼비노의 집 ‘빌라 메리디아나’였다. 칼비노의 아버지 마리오 칼비노는 농학자로 이 저택 정원을 화훼연구에 이용했다. 그래서 칼비노는 희귀하고 이국적인 나무와 식물들 속에서 성장했다. 『나무 위의 남작』의 주무대인 옴브로사 지방은 산레모를, 여주인공의 집인 온다리바 가문의 정원은 이 ‘빌라 메리디아나’를 모델로 한 것이어서 옴브로사나 온다리바의 정원을 묘사하는 부분을 번역할 때면 칼비노 가족이 거닐던 정원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는 했다. 


빌라 메리디아나


정원은 볼 수가 없었다. “매매” 표지와 함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이다. 산레모시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전문 해설사와 함께 이탈로 칼비노의 흔적을 따라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때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이 집이다. 매매 대신 칼비노의 집을 보존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아쉬움을 안고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의 배경이 된 피냐 지역으로 향했다. 칼비노의 집은 중심가와 피냐 지역의 경계에 있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칼비노가 23세에 쓴 첫 소설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전쟁 이야기다. 피냐는 주인공 핀이 사는 빈민가인데, 원래는 솔방울이라는 뜻으로 집들이 솔방울 모양으로 모여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햇살이 골목 밑바닥에 닿으려면, 새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아치 덕에 따로 떨어진, 차가운 양쪽 벽에 바짝 붙어서 똑바로 내려와야만 한다. 햇살은 벽 여기저기 나 있는 창문으로, 냄비에 심어 올려놓은 바질과 오레가노 위로, 빨랫줄에 널어놓은 속옷 위로 곧장 쏟아져 내렸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피냐의 골목들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길은 정말 좁고, 골목마다 아치며 계단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 위로는 지중해의 하늘이 파란 띠처럼 떠있다. 물론 골목과 아치는 피냐가 아니라도, 구시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피냐의 골목을 배경으로 내가 번역한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의 사진을 꼭 찍고 싶었다. 그리고선 이 책과 다른 몇 권의 칼비노 소설 번역본을 산레모 시립 도서관에 기증했다. 골목을 걷다보니 어디선가 애어른인 핀이 튀어나와 쉰 목소리로 짓궂은 농담을 할 것만 같았다. 


산레모 시내


산레모는 작은 도시여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도 피냐에서 중심가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중심가인 자코모 마티오티 가에는 산레모 가요제가 열리는 ‘아리스톤’ 극장과 칼비노가 고등학교 시절 수업을 마치면(혹은 빼먹기도 하면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영화관 ‘치네마 첸트랄레’가 자리 잡고 있다. 


아리스톤 극장


치네마 첸트랄레


칼비노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어쩌면 그가 걸었을지 모를 바닷가며 좁은 골목길을 되는 대로 걸어 다녀도 좋았다. 칼비노는 해변 산책을 즐겼다고 하는데 청년 칼비노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어떤 꿈을 꾸고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이곳 어느 작은 서점에라도 들어가 칼비노의 책을 펼쳐 봐야겠다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글/사진 이현경

이탈로 칼비노 소설에 빠져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며 칼비노를 비롯 프리모 레비, 움베르토 에코, 안토니오 타부키 등 이탈리아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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