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조각들]몽마르트르에서 만나는 달리, 그리고 달리다

파리의 조각들 #2



살바도르 달리. 그 요상한 수염을 한 화가가 아닌가? 그의 수염이 바로크시대 화가 벨라스케스에게서 빼앗아 온 거라는 건 우리만 알아 두기로 하자. 1920년대 후반, 스페인에서 한 귀족, 달리 후작이 파리에 도착한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한 그가 아니라 평범한 젊은 화가의 모습이었겠지. 피카소를 만나 매료되었으나 곧 거리를 두게 되고, 초현실주의 운동으로 이끌린다. 후에 초현실주의 그룹의 주요 거장이 되는 달리는 이 모임에서 평생의 뮤즈이고 부인이 되는 갈라Gala와 만난다.


거의 일세기가 지난 지금, 불사조 같은 달리의 꿈의 조각들이 여전히 파리 어딘가에 남아있을까? 모든 건 1960년 이탈리아의 유명 컬렉터인 베니아미노 레비Beniamino Levi와 달리가 만나면서 시작된다. 레비는 이탈리아에 처음으로 세계적인 현대 작가들을 소개했고 밀라노에서 초현실파 그림 전시회를 기획한 컬렉터이다. 달리의 작품에 반한 그는 파리로 달려가 달리의 작품을 구입하고, 이를 계기로 그들의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레비는 특히 달리의 초기 조각 작품들에 큰 관심을 보이며 그의 예술적 감각이 조각을 통해 표현되도록 격려한다. 달리의 조각 프로젝트에 자주 관여했던 레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달리 조각 작품의 전문 감정사이다. 재능을 일찍 알아본 컬렉터의 열정이 300점의 달리 작품이 소장된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 달리 박물관ESPACE DALI을 탄생하게 했다.



달리 박물관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모험을 할 것인가? 절대 쉬운 길은 아니지만 파리의 수려한 파노라마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달리가 성취한 예술의 경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몽마르트르를 싸고 도는 서민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르픽가를 언덕 위 끝까지 오르면 거의 달리 박물관에 도달한다. 아니면 전철 12호선 아베스역에서 내려 몽마르트의 별천지 같은 좁은 길들을 따라 올라가도 좋다. 중간에 험하게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한라산이나 지리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멀리 파리 전망을 훔쳐보며 숨 막히게 계단을 등반하다 보면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지며 박물관 입구가 나타난다.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면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예술가 달리와 그의 작품에 관한 설명, 몇몇 흑백사진이 걸린 중간층을 지난다. 마침내 그림, 조각, 판화, 오브제, 초현실파 가구 등 300여 점의 컬렉션이 있는 성역의 공간이 드러난다. 달리의 작품들은 담백한 분위기의 흰색 벽과 대조되어 눈에 바로 파고든다. 대형 조각들은 살아 움직일 것 같다.



우리의 존재가 이 분위기에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전시장 안을 조심스럽게 걷는다. 차츰차츰 분위기에 휩쓸리며 그의 작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림을 보다가, 특이한 조각에 이끌리다가, 신기한 오브제로 시선을 돌리다 보면 어떤 정해진 관람의 경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각자의 경험과 영감에 따른 자유로운 리듬으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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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들롱의 감미롭고 애달픈 목소리로 사랑의 속삭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Des paroles, des paroles, des mots encore des mots…”, “빠롤레, 빠롤레, 말과 단어들, 당신의 속삭임은 바람에 뿌려지는 그저 말들일 뿐”이라던 달리다의 샹송이 생각나는지. 섹시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약간의 이국적인 억양이 있던 젊은 여인. 그녀는 1954년 프랑스에 온다. 그리고 갓 외인부대를 제대하고 파리에 도착해 성공을 꿈꾸던 알랭 들롱을 만난다. 이들의 우정은 계속 이어져 각각 정상에 올라선 후 전 세계적으로 히트송이 된 이 곡 〈Paroles… paroles…〉를 만들었다.


이탈리아 원곡을 프랑스어로 번안하며 달리다와 알랭 드롱이 함께 공연한 〈Paroles… paroles…〉


이집트의 카이로에 사는 이탈리아 부모 밑에서 자란 이올란다 지글리오티Iolanda Gigliotti는 미스 이집트 출신으로 영화배우로 성공하려는 대망의 꿈을 지닌 채 프랑스에 왔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들은 이집트에서의 인기만으로는 프랑스에서 배우가 되기는 힘들다며 배우의 꿈을 포기하게 한다. 그녀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다 마침내 올랭피아 뮤직홀의 신인 발굴 콘테스트에서 수상하며 가수로 데뷔한다. 그녀는 첫 노래였던 〈Bambino〉로 큰 성공을 거두고 이름도 ‘달리다Dalida’로 바꾸며 화려한 커리어를 시작한다. 1962년, 몽마르트르 언덕 위 오르샹프가Rue d’Orchampt에 조그만 성 같은 저택을 구입하고 정착한 달리다는 거기서 25년 동안 살며 몽마르트르의 아이콘이 된다. 달리다는 이곳을 유난히 사랑하고 아껴 70년대에 몽마르트르 지구 보존 및 복원에 많은 공헌을 한다.


달리다의 집


천 곡의 샹송을 녹음하고, 전 세계에 1억 7천만 장의 음반을 팔았던 달리다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후 하루하루 우울증과 싸워야 했다. 20년 간 이어진 가수 생활, 실패한 결혼, 여러 유명인과의 로맨스, 자살 미수 등을 거치며 그녀의 인기도 그녀의 삶처럼 점점 시들해진다. 그리고 1987년 5월 2일 자신의 저택에서 위스키와 함께 한줄기 비와 같은 약들을 마시고 생을 마감한다. 달리다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힌다. 10년 후, 몽마르트르는 그녀의 집 옆 이름 없는 광장에 그녀의 이름을 붙이고(Place DALIDA) 그녀의 공적을 기린다. 또, 근처 포도밭에서 만들어진 몽마르트르 와인Clos Montmartre 1996년산에도 그녀의 이름이 붙는다.


달리다의 흉상


프랑스 샹송을 사랑하고 특히 달리다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몽마르트르 산책길에 그녀의 집과 그녀의 이름을 가진 달리다 광장Place Dalida으로 걸음을 옮겨 보자. 조각가 알산Arsan이 제작한 달리다의 흉부 조각이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몽마르트르 묘지까지 갈 열정이 있으신 분들은 아직도 팬들의 꽃다발이 끊이지 않는 그녀의 묘에서 실제 크기의 달리다 전신상을 만날 수도 있다.

 

달리다의 묘지




글/사진 기욤 / 번역 정미혜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파리 시내 중심부에서 쭉 자라온 파리지앵. 대학에서 언론을 공부하고 패션 포토그래퍼로 2년간 일하다가 현재는 파리 카톨릭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다.  철학 교수이자 소설가를 꿈꾸며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또 다른 취미이자 특기는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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