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이래서 행복하다][여행] 톨레도 대성당 #2

톨레도, 이래서 행복하다 #4



톨레도 대성당의 참사관 회의실은 추기경이 스페인 전역의 사제를 불러 모아 회의를 하고 교육도 하는 공간으로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입구의 석회석 문양은 무데하르 양식으로 원래 이곳이 이슬람 사원이었다는 흔적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다 보면 ‘문화는 문화, 이념은 이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추기경의 자리 뒤로 역대 카스티야와 레온의 추기경 그림이 보인다. 왼쪽에 아직 그려지지 않은 자리가 있는데 현재 추기경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상단부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삶, 죽음을 나타낸 것이다. 뒤를 돌아 회의실을 나가려 하면 문 위에 단테의 『신곡』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천국에서의 행복한 삶, 연옥에서의 방황, 지옥에서의 공포와 고통이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지옥의 가장자리인 림보에 있어야 할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7가지 죄악(오만, 탐욕, 질투, 분노, 색욕, 식탐, 나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아마 부모의 행동이 아이에게 그대로 보여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처럼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는” 것이다.




참사관 회의실을 나오면 톨레도 대성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을 만나게 된다. 성당 천정에 낸 ‘트란스파렌테El Transparente’라 불리는 채광창이 만들어낸 조화다. 개인적으로는 가우디가 빛을 다루는 기술이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 ‘추리게라 형제’의 기법이 적용된 트란스파렌테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한다.




추리게라 형제는 누구인가.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스페인은 재력이 풍부했지만 특별히 이름을 낸 건축가가 없었다. 하지만 펠리페 5세 부르봉 왕조 시절, 스페인은 위대한 건축가 형제를 얻게 된다. 추리게라 형제가 바로크 건축의 화려함을 스페인식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이들이 만든 살라망카의 마요르 광장의 건축물은 석양이 비쳐오면 황금색으로 변한다. 빛의 기울기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표현법이 바로 여기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이다.


톨레도 대성당의 트란스파렌테는 대주교 디에고 데 아스트로가가 1732년 추리게라 형제의 제자였던 ‘나르시소 토메’에게 부탁해 완성한 것이다. 제단이 어두워 빛을 들이고 싶었으나 창을 낼 방법이 없었다. 더욱이 지붕의 구조는 십자가 구조라 그것을 훼손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민하던 나르시소 토메는 천장의 십자가 구조를 받친 측면 벽에 원형으로 창을 내었다. 톨레도 대성당의 소개 영상에는 나르시소 토메가 트란스파렌테를 구상해 내는 과정이 꽤나 극적으로 그려진다.



트란스파렌테를 통해 아침 10시부터 정오까지 화려하게 조각된 구조틀에 빛이 내린다. 특히 가브리엘, 미가엘, 라파엘, 우리엘의 네 천사에 집중된다. 12시 가브리엘, 9시 미가엘, 6시 라파엘, 3시에 우리엘이 있고 가운데 황금빛 태양은 하나님을 상징한다. 빛이 이곳으로 들어가면 성체현시대 뒷면으로 빛이 나오게 된다. 아침에 말씀을 전하는 추기경의 머리 위로 빛이 쏟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트란스파렌테는 종교적 이미지 메이킹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트란스파렌테를 뒤로하고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종교화실로 놀라운 프레스코화와 다양한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입구에는 예수와 같은 모습으로 십자가를 질 수 없다고 하여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와 X자 모양으로 십자가를 진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그려져 있다.


천장엔 16세기에 양손화가로 이름을 떨친 ‘루카 조르다노’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정중앙에 히브리어로 ‘야훼(하나님)’이라 새겨진 돌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그 끝에 푸른색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가 있다. 성모 마리아에 사용된 저 푸른색은 ‘라피스 라줄리’라는 준보석에서 나온다.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이 돌을 갈아 그 안에 숨겨진 파란색을 얻어내야 하는데 양이 눈곱만큼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1㎤ 정도의 크기가 금괴 1개의 가격과 맞먹었다니, 이 귀한 색을 성모 마리아에게만 사용한 것이다. 여담으로 영국의 헨리 8세가 자신의 힘과 권력을 자랑하고 싶어 자기 초상화 배경에 라피스 라줄리를 사용했다. 한스 홀바인이 그린 헨리 8세의 이 첫 번째 초상화는 티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도 이 귀한 돌을 어쩔 순 없었는지 실제 사이즈는 A4보다 약간 작다.



다시 프레스코화로 돌아오면, 성모 마리아가 한 남자에게 하얀 천을 건네주고 있다. 두 팔을 벌리고 무릎을 꿇은 남자가 바로 일 데폰소 주교이다. 그는 톨레도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가족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톨레도 근교 아글리에서 수도자가 되어 사제 서품을 받는다. 그리고 657년 톨레도의 대주교로 승품이 되어 돌아온다. 일 데폰소 주교는 성모에 특별한 신심을 보였고, 많은 논문을 써 왔다. 앞서 용서의 문 부조에도 볼 수 있었지만 그런 일 데폰소 주교에게 성모께서 발현한 장면을 프레스코화로 그린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화실의 하이라이트는 ‘엘 에스폴리오’라 불리는 ‘성의 박탈’이다.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와서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다. 엘 그레코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로 그는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이었다.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그레코’에 스페인어의 관사 ‘엘’이 붙어 그의 별명이 된 것이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에서 이콘화를 그리다가 베네치아로 넘어가 색채의 마술사 티치아노를 만나고 매너리즘을 열어준 틴토레토를 만나며 색채의 화려함을 꽃피운다.


엘 그레코, '엘 에스폴리오'


34살의 엘 그레코는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로마에 머물던 엘 그레코가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던진 말은 의외였다.


“뭐야? 역시 조각을 하던 선배님이라 다르네. 다 벌거벗은 그림이네? 뭐야, 목욕탕 그림이잖아. 이거 다 지워 내가 다시 채워줄게!”


그 누가 이탈리아에서 신처럼 추앙받던 미켈란젤로를 무시할 수 있었을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만큼 엘 그레코의 실력이 유럽을 흔들던 시기였다. 이런 태도 때문에 로마에서 빈축을 사 엘 그레코가 이탈리아를 떠나야 했고 그래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도입해 꽃 피우려던 펠리페 2세의 스페인으로 넘어 왔다는 해석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플랑드르 흐름의 르네상스 미술은 섬세하고 사실주의적이라 고난의 예수를 그릴 때 희망보다 인내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엘 그레코의 신은 매우 이상적이고 자비로운 신이었다. 수많은 화가와 연구가들이 지금까지 줄기차게 말하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세상에서 예수의 눈을 가장 선하게 그리는 사람이 바로 엘 그레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화풍은 물론 엘 그레코의 반종교개혁적이고 현실성을 중요시하는 면모가 처음 스페인에서 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이 되기도 했다.


옆방으로 가면 티치아노, 벨라스케스가 그린 추기경들의 그림이 있고 다시 그 옆방에는 카라바지오가 그린 ‘목동 세례 요한’이 등장한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어두운 색으로 변했는데,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칠하는 니스 때문이라 어쩔 수 없다. 나뭇잎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바람에 흔들리는 듯 그려낸 카라바지오의 실력은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놀랍다. 바로크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그의 삶이 서른일곱의 짧은 나이로 끝나지 않았다면 미술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만큼 제일 좋아하는 화가라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카라바지오가 그린 다윗과 골리앗, 티센 미술관에는 성녀 카타리나가 있다.


카라바지오, '성 세례 요한'



톨레도 대성당에는 또 하나 주목할 게 있으니 바로 그림 성경책이다. 프랑스의 생 루이 9세가 10년에 걸쳐 만들었으며 구약 2권, 신약 1권으로 구성돼 있다. 프랑스에 한 질이 있고 스페인에 다른 한 질을 선물했다고 한다. 1234년 완성된 이 성경은 양피지로 만들어 졌는데, 지금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따로 관리되고 있고 우리가 보는 건 그 카피본이다.




이제 톨레도 대성당의 백미, 성체현시대를 봐야 한다. 성체현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오감을 통해 느낀다”라는 의미이다. 성체는 예수의 몸을 상징한다. 현시는 무형을 유형으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톨레도의 성체현시대는 엔리케 아르페라는 독일 조각가가 제작했다. 이후 엔리케 아르페의 영향을 받아 후안 데 아르페가 코르도바의 성체현시대를 완성하는데, 솔직히 더 사실적이고 깊이가 있는 것은 메스키타에 있는 후자 쪽이다. 톨레도의 성체현시대보다 부조가 더 세밀해 마치 도나텔로의 ‘책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운데 둥근 원형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성체이다. 그 주변은 진주로 장식되어 있는데,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진주가 나는 곳으로 알려진 마요르카산이다.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된 이 성체현시대는 높이가 2.5m를 넘고 총 무게는 180kg이다. 중앙 성체와 꼭대기의 십자가는 순금이다. 1500년대에 제작되었으며 하단 천사상은 1700년대에 추가로 만들어졌다. 놀라운 건 성체현시대가 하나하나 분해되는 ‘미니어처’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5,000개의 미니어처와 12,000개의 순금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금을 입힌 부분이 벗겨지면 설계도에 따라 분해하여 도금을 한 후 재조립한다고 한다.



상단부분을 보면 작은 왕관 모양 속에 아기 예수가 보이고, 그 아래 큰 왕관 모양 속에는 비둘기, 그 아래에는 성부께서 앉아 계신다. 삼위일체를 표현한 것이며, 주변의 조각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제 톨레도 여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톨레도 대성당을 나올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들려볼 곳은 세계 3대 성화가 있는 산토 토메 성당이다.




글/사진 하이로

스페인에서 12년째 거주 중이며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 전문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다. 투어라이브(Tourlive) 오디오가이드: 스페인을 제작했고, 마이리얼트립에서 "프라도에서 웃어요" 투어를 진행한다. SNS에서 1분 산책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https://www.instagram.com/art.traveler.ja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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