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추럴하게]복지 국가에서 나이 들기

본, 내추럴하게 #2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계절 개념이 희박해져서 봄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여름 겨울로 넘어가는 추세이지만 그래도 한국의 봄은 정말 세계정상급이라 생각될 만큼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제 마지막 한국에서의 봄은 2003년이었는데요, 안 그래도 제 직업이 속칭 “밥 굶기 똑 알맞은” 직종이었는데 그나마 힘들게 들어간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독일로 다 늦은 유학을 가겠다고 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던 그 봄이 생각납니다. 다들 만류했지만 그 와중에 단 한사람이 찬성했고, 그게 우리 어머니이셨습니다.


당시 여권조차 없었던 저는 마음 결정 후 한 달 만에 독일에 입성합니다. 그렇게 쿨 가이 코스프레 하며 몇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아, 역시 오길 잘 했구나…!” 이러면서 지낼 저를 상상했건만 현실은 학교 입학도, 취직도 못 한 채 독일 맥주에 몸과 마음을 바치고 살다가 알량했던 재정이 파탄 나며 드디어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유학생이 되고 맙니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파독 광부 간호사 이야기가 좀 더 심층적으로 알려졌는데요, 병원에서 일을 하시기도 했지만 양로원Altenheim에서도 많은 분들이 일하셨습니다. 저도 학생시절 인연 있던 간호사 분 덕에 양로원에서 일하게 되며 한시름을 놓을 수 있게 됩니다.


동네의 양로원 시설. 이곳은 아직 본격적으로 입소하긴 좀 건강하신 분들이 각자 생활하시되 전문가들이 틈틈이 돌보는 시설입니다. 공동 또는 개인 식사를 선택 가능합니다.


한국도 요양원이라 불리는 노인 복지 기관이 많이 생겼지만 아시다시피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의 양로원 시스템은 그 체계가 매우 단단합니다. 속칭 ‘삥 뜯듯’ 뜯어가는 엄청난 세금과 사회보험(우리나라 4대보험에 비교되겠습니다.)을 통해 이런 복지정책이 이루어집니다. 어찌 보면 그냥 빼앗기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본인에게 돌아온다고 이곳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참고로 당시 저는 결혼 전이었고, 처음 취직했을 때 월급의 반 정도가 떼인 금액을 실수령했습니다. 추후 부양가족의 수에 따라 수령액은 차차 높아집니다.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이런 것들도 참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오늘은 양로원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니 패스하겠습니다.


양로원 시설에서 건강이나 여건이 더 나빠지면 24시간 요양시설로 이주합니다.


위에서 말한 ‘삥’을 뜯겼던 사람은 소속된 보험사의 검증을 통해 때가 되면 양로원에 입소하게 됩니다. (안 가고 생을 마감하는 게 그래도 낫겠죠.) 여기서 문제! 그럼 직장이 없던 사람들(조세의 의무를 제대로 못한 사람들)은 양로원에 들어갈까요, 못 들어갈까요? 그분들은 다른 사회 보장제도를 통해 들어가게 됩니다. 어떤 양로원은 진짜 오성 호텔만큼 좋아 보이는 곳도 있는데요, 젊어서 노후대책으로 공공 보험 외에 이런 양로원 옵션 등을 선택해 납부하신 분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저는 가톨릭재단이 운영하는 양로원의 ‘무지개’층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입소자의 90프로 이상이 할머니들입니다. 할배들은 이미……. 확실히 여성분들의 수명이 더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매일 죽는 게 소원이라면서 운동 열심히 하시고 규칙적인 과식을 하시던 마가레타 할머니. 만날 나 집에 보내달라고 하시며 떼쓰시던, 당시 20년 넘게 거기 사셨던 트루델 할머니. 한 마디도 안 하시다가 처음 제게 했던 말이 (여름에 탱크탑 입은 방문자를 보시고) “저게 다 벗은 거지 쯧쯧.”이었던 막달레나 할머니.(이 말이 제가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지금은 십년도 더 지났으니 이중 살아계신 분들이 몇 분이나 계실까 생각해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저는 할머니들의 의복 관리, 식사, 세면(샤워) 등에 관련된 일을 각 층에 배치된 간호사들의 지시에 따라 했는데요, 어느 날 알바 한 명이 병가를 내서 유난히 힘들고 정신없던 날이었습니다. 일이 거의 끝날 시간이 다 되어 폴란드 출신 간호사가 끝방 할머니 냉장고 냉장실에 안약을 눈에 넣어 드리라고 지시를 합니다.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벽에 진짜 고무 튜브가 있더군요. 가뿐히 몇 방울 넣어드리고 안녕히 주무시라고 한 후 퇴근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그 할머니 방에서 옷장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건강 체크를 하더군요. 다 좋다고 하더니 냉장고에 있던 안약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자, 오늘은 대변을 보셔야 하니 엎드리세요.”하며 그 안약을, 항문에다가…!!


네. 제가 안약으로 알고 할머니 눈에 넣은 건 일종의 변비 환자를 위한 좌약이었습니다. 어쩐지, 뭔 안약에 기름기가 이리 많은가 생각 들더니. 전 너무 황당하고 죄송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네, 전 쓰레기에요, 죄송합니다, 할머니! 그래도 별 탈 없으셨으니 용서해 주세요, 눈만큼 그곳도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글/사진 프리드리히 융

2003년 독일유학 중 우연히 독일 회사에 취직하여 현재까지 구 서독의 수도(현재 독일의 행정수도)인 본에 거주중인 해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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