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유럽 여행]코로나 시대의 유럽 여행 #1 - 스트라스부르

코로나 시대의 유럽 여행 #1



프랑스에 온 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모두들 그렇듯 코로나로 인해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고, 9월까지 소진해야 하는 일주일 연차를 집에서 쓰기는 아까웠다. 프랑스도 이제는 70% 넘는 사람들이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다고 하니, 이번 9월에는 용기를 내어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차로 다녀올 수 있는 스트라스부르와 콜마르가 있는 프랑스 알자스 지역으로 정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더 유명한 도시들이지만 추운 겨울보다는 선선한 가을을 택했다. 알자스는 독일 국경과도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인근 유럽 도시들도 둘러보기로 했다.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는 차로 5시간 반가량 걸린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구시가지의 ‘프티 프랑스Petite France’로 향했다. 워낙 장거리인지라 도착하고 나니 벌써 늦은 오후였다.



걷다 보니 스트라스부르의 가장 대표적인 장소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일강L’Ill, 중세 시대 독일 목조 가옥, 그리고 파스텔 톤의 꽃들……. 스트라스부르와 콜마르가 속한 알자스 지방은 프랑스와 독일이 여러 차례 번갈아 가며 지배하던 지역이다 보니, 두 나라의 색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공존한다.



바로 옆 광장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이 야외에서 이른 저녁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집에만 있을 때는 코로나 종식이 요원하게만 느껴졌는데 관광객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이미 코로나에 대한 걱정 따위는 극복한 것만 같았다. 가끔 이런 평화롭고 여유로운 사진을 한국의 지인들에게 보내면 다들 하나같은 반응을 보인다. “왜 아무도 마스크를 안 썼어?” 최근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신규 확진자 수가 줄어들자 정부에서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규제를 풀어주었고, 프랑스 사람들은 실내에서만 마스크를 쓴다. 나도 이제는 이곳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좀 한적한 야외에서는 종종 마스크를 벗게 된다.


물론 프랑스 사람들은 실외 마스크 착용을 의무로 했을 때도 마스크를 잘 안 썼다. 다른 유럽인들도 비슷하겠지만, 프랑스인들에게 마스크는 치과 의사와 수술실 의사 등만 사용하는 것이었고, 대부분은 마스크를 평생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후드 티의 모자를 덮어쓴다거나 얼굴을 가리는 행동 등은 매우 의심을 살 만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마스크에 익숙지 않은 이 사람들이야말로 빨리 코로나가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 같다.



해는 점점 지고 있었고 건너편 강물 위로 3층 높이의 보방댐Barrage Vauban이 보였다.


보방댐


평범해 보이는 이 건물은 루이 14세 시절, 스트라스부르를 다시 프랑스 영토로 만든 후 적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보방 장군 주도로 1681년부터 만든 댐이다. 당시 대부분의 지역이 들판과 과수원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이 댐의 문을 닫아 강물의 수위를 높여 적군을 물에 빠지게 했다고 한다.


보방댐 위쪽으로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늘도 어두워지고 있어서 구시가지의 야경을 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우리도 건물 안쪽 계단을 올랐다.

 


사람들이 그렇게 내려다보던 것은 프티 프랑스와 노트르담 성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었다. 강물 위로는 한가로이 배를 타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여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반대편은 더 놀라웠다.

 


프티 프랑스와 대비되는 현대식 건물이 오른편에 자리 잡고 강 위로는 하늘이 멋진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 건물은 꼭 경마장처럼 생겼지만, 현대 미술관이라고 한다. 예상치 못한 가을 저녁 하늘을 마주한 행운에 기분이 더 좋아진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노트르담 대성당 앞을 지나가기로 하고 테라스에서 내려왔다.

 


성당 가까이에 다다르자 성당의 높이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1053년에 처음 지어진 이곳은 700년 가까이 여러 차례 증축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높이가 되었다고 한다. 첨탑까지의 높이는 총 142m로, 아파트로 치면 50층 높이이다. 1647년부터 1874년까지 230년가량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었다는데, 17세기에 이 정도 높이의 성당이 존재했다고 하니 다시 한번 놀랍다.



다음 날 오전, 대성당 내부도 보기 위해 노트르담 성당을 다시 찾았다.


매년 9월 셋째 주 주말은 ‘유럽 문화유산의 날’로 지정되어 있다. 이 이틀 동안은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을 비롯해 프랑스 전역의 1,700여 개의 역사 유적지, 미술관, 성당, 고성 등이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곳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성당 앞에는 중세 시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대성당 외부에는 놀랄 만큼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조각상들이 가득했다. 물론 성경 속 이야기들을 표현한 조각이다.



성당 내부 또한 외부 못지않게 거대하고 섬세하며 아름다웠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18m 높이의 천문 시계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천문 시계는 시계 제작자, 조각가, 수학자, 화가, 자동차 제작자들이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태양과 달의 위치뿐 아니라 태양과 달의 일식까지 모두 재현할 정도로 정교하다.


이 시계가 인기 있는 이유는 자동인형들 때문인데, 매일 낮 12시 반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가 차례로 등장하며 예수에게 인사를 하고, 그 사이에 왼편의 수탉이 세 번 운다. 이는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정한 베드로를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매시 정각에는 죽음의 신이 등장하고, 이후 15분 간격으로 아기, 소년, 어른, 노인이 하나씩 움직인다. 큰 천문시계를 계속 올려다보고 있자니 인형 하나가 또 움직인다. 15분이 지났나 보다. 우리가 늙어가고 있고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더 늙기 전에 성당의 첨탑을 얼른 올라가 봐야겠다.

 


첨탑까지는 330개의 좁은 통로의 원형 계단을 빙글빙글 올라가야 하는데 꽤 어지럽다. 통로 중간에 자주 밖이 훤히 뚫려 있어서 밑이 내려다보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순간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제일 꼭대기 층에 도착하니 첨탑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첨탑이 완성되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날은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뭔가 더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성당 첨탑에서 내려왔다. 내일은 스트라스부르를 떠나야 해서 아쉬운 마음에 다시 프티 프랑스로 향했다. 독일 국경 인근이라서 그런지 독일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도 꽤 많이 보였다.




태양을 마주하고 바라본 전경도 무척 아름다웠다.

 

저녁은 알자스 전통 음식을 먹기로 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꺼려졌는데, 이제는 백신 접종도 2차까지 완료했고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져서 오랜만에 현지 맛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식당을 고르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양배추 절임에 소시지, 삶은 감자를 곁들여 먹는 슈크루트Choucroute, 돼지 족발을 맥주에 절인 음식인 자레 드 포흐Jarret de porc 혹은 장보노Jambonneau라고 부르는 음식을 주문했다. 알자스 지방의 맥주도 곁들였다. 이곳의 슈크루트는 짜지 않고 맛있었으며, 족발의 육질도 매우 부드럽고 잡내 또한 전혀 없었다. 양도 많아서 열심히 먹었는데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배불리 먹고 나와 호텔로 향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지만 하늘이 좀 흐릴 뿐 비는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남은 여행도 꽤 기대가 된다.




글/사진 서신석

한국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프랑스에서 항공기 관련 데이터 분석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유럽 축구를 시차 상관없이 마음껏 볼 수 있고, 여유로운 유럽의 일상과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