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일상 #2



중국에서 들어온 비행기들로 인천공항은 혼잡했다. 내가 타고 갈 파리행 비행기도 한 시간 정도 연착됐다. 그리고 꼬박 열한 시간을 날아 파리에 도착했지만, 어쩐 일인지 처음 파리에 왔을 때 느꼈던 설렘은 없었다. 익숙하게 공항을 빠져 나와 작년에 묵었던 쟝의 에어비앤비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씻고 나자 밤 아홉 시. 서머타임이 시작된 파리는 이 시각이 되어도 해가 지지 않았다. 그런 광경을 처음 본 나로서는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보내야 할 메일이 있어 급히 업무를 처리하고 장을 보러 나섰다. 아침으로 먹을 과일과 샐러드, 요거트, 뮤즐리가 바구니 한 가득이었다. 약간 허기가 지는 것 같아 마트에서 사온 복숭아를 한 입 물면서 이 정도면 파리에서의 꽤 괜찮은 시작이잖아, 나는 안도했다. 시차적응을 못해 새벽 5시부터 눈을 뜬 것만 제외하면.



일찍 일어난 김에 일찍 길을 나섰다. 파리에 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어떤 이에겐 별 것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어떤 의식과도 같은 일인데, 바로 공원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다. 눈부신 파리의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맘껏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근처 빵집에서 바게트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사들고,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원,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했다.


이른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 파리의 여름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햇볕은 뜨겁지만 그늘로 가면 서늘할 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살짝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폴 오스터의 첫 장을 펴는데,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냥 책을 덮고,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아 버렸다. 이 환상적인 날씨에 이곳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눈부신 햇살과 부드럽게 내 얼굴에 닿는 이 바람, 진한 숲의 냄새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행복감을 선사했다.



공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챙겨 먹고, 공원에서 못 읽었던 책을 마저 읽다가 이대로 파리의 밤을 보내기가 아쉬워 센 강을 걷기로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알렉산더 3세 다리에서 출발해 에펠탑을 보고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알렉산더 3세 다리 밑으로 내려가자 많은 파리지앵들이 센 강에 걸터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버스킹 소리가 들려왔고,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토무슈가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들처럼 나도 강둑에 걸터앉았다. 차가운 강바람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며 강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 눈물이 와락하고 쏟아질 것 같았다. 여러 감정이 뒤섞여 왔다. 이번 파리 행을 계획하며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끝내 파리에 오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이 정말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파리의 낮과 밤이 잘했다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글/사진 당신의봄

콘텐츠 에디터. 취미는 사랑. 특기는 공상.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쓴다. 낯선 곳에서 여행이 아닌 일상을 꿈꾼다.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