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로부터]문화 예술의 도시에서 산다는 것

피렌체로부터 #2



1817년, <적과 흑>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은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 안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면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고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다리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는 이 기괴한 경험을 일기에 남겼다. 그 두근거림은 아마 바로크 시대의 극사실주의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가 그린 ‘베아트리체’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가 사망한 뒤에도 피렌체를 관광하는 사람들 중에서 같은 증상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피렌체의 아름다운 회화 작품들과 르네상스와 중세를 오가는 건물들에 매료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현상에 ‘스탕달 신드롬’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타 크로체 성당


이런 감정이 나에게도 한 번쯤은 올까? 그림, 조각들을 보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받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 만큼 충격을 받게 되는 걸까? 믿기 힘든 현상이지만, 스탕달 신드롬으로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피렌체의 중앙 병원에 실려 오는 사례는 현재 진행형이다.


피렌체는 작은 골목 안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골목골목을 넋 놓고 거닐다 보면 이대로 길을 잃어도 좋을 것 같다. 그동안 피렌체에 살면서 그림과 도시 이야기로 벅차오르는 감동은 느껴봤지만, 두오모 성당 쿠폴라의 464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을 때만큼 다리가 후들거린 작품은 아직 없었다.


사실 내가 가이드하는 여행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미켈란젤로도, 그가 조각한 피렌체의 상징 다비드도 아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에서 사는 느낌은 어떤가요? 일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다. 그들에게 어떤 내 일상을 얘기해줄까 고민하지만 사실대로 다 이야기하자면 꽤나 길다. 꼬박 하루 동안 내 이야기만 들어야 할 거다.


베키오 궁전


투어를 마치면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반나절 동안 쉼 없이 피렌체 곳곳을 소개하고 걷다 보면 온몸의 기를 다 분출하며 다니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일을 끝날 때쯤엔 어딘가에 잠시라도 앉아야 한다. 피렌체에서 관광객들이 보고자 하는 두오모 성당, 베끼오 다리, 시뇨리아 광장 등 주요 관광지는 모두 한곳에 모여 있다. 유유자적 3시간 정도 걷다 보면 도시는 내 안에 다 들어와 있다. 그 길이 그 길이고 두 번 이상은 다녔던 골목이다. 대중교통이 필요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오롯이 걸어서 도시를 봐야 한다.


시뇨리아 광장


이제 해가 지기 전 남은 시간들을 작은 골목 안, 의자 3개가 놓인 이탈리아식 선술집에서 보낼까 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골목에 교묘하게 터를 잡은 작은 와인 바이다. 토스카나 레드 와인 한 잔과 달콤한 꿀에 치즈를 찍어 한 입 베어 물으면 오늘 하루의 고됨이 풀어지는 듯하다. 낯선 동양인이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바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있자니 동네 지나다니는 이탈리아 할아버지들이 한참을 신기하듯 쳐다본다. 그냥 지나치는 법도 잘 없다. 호기심 많고 오지랖 넓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궁금한 건 잘 참지 못한다.


언제나 그랬듯 동양인에게 다가와 대화를 시도한다.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를 확인하는 질문에 한국인이라고 답변하기를 수십 번. 피렌체에 약 300명의 한국인이 산다면 일본인들은 그 두 배 하고도 반이 넘게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대부분의 동양인 여행자는 알지 못할 비밀스러운 장소에 있으면 당연히 이 도시에 거주하는 일본인이리라 여긴다. 다시 유학생인지 여행객인지를 묻고 난 뒤, 그들은 피렌체의 역사와 예술가들에 대해 늘어놓는다. 그러면 부족한 이탈리아어로 답한 것을 가끔은 후회하게 된다. 때로 관광객인 양 영어로 잘 모른다고 질문을 회피하면, 이탈리아에 와서 왜 영어를 하냐며 역정을 낸다.


“내가 한국에 가서 일본어로 음식을 주문한다면 좋겠냐?”


결국 이탈리아어를 조금 할 줄 안다고 고백한다. 그들은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 역사와 문화 이야기에 몰두한다. 친절하게도 천천히 또박또박. 이런 연유로 난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거나 미술관에서 근무했다 은퇴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친구로 지내기도 한다.


골목의 비밀스러운 바


피렌체 시민들은 그들이 문화고 예술이다. 하나같이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고, 50년 넘게 살아온 도시이지만 한없이 아름답고 봐도 봐도 끝없는 매력과 마력에 사로잡혀 피렌체를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 그대로 문화가 되었다.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피렌체 생활이지만, 그들의 문화와 예술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


따가운 볕을 피해 그늘진 골목을 들어간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 가수의 노래를 따라 작은 바에 앉으면 한 잔의 여유가 있고, 고개를 들면 하얀 구름이 적절히 파아란 하늘에 스며들어 있다. 바 위에 놓인 작은 화분들 속 아름드리 핀 꽃향기에 취해 서늘한 듯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레드 와인 한 잔의 여유를 오롯이. 그 순간도 예술이다.


매일 매일 같은 일상이고, 여유로움 가득하다. 지극히 평범하다. 피렌체를 배경으로 찍은 옛 영화들을 보면 수년이 지난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의 모습과 달라진 점이 별로 없다. 10년, 100년이 흘러도 피렌체는 지금 그대로 문화, 예술을 간직한 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도 도시도 그대로….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별로 변하지 않은 베키오 다리




글/사진(2~6) Stella Kim

글쓴이 Stella Kim은 짧은 여행이 아쉬워 낯선 도시에 닿으면 3개월 이상 살아보고자 했다. 호주를 시작으로 필리핀,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태국에 머물렀다. 다시 이탈리아에 돌아와 4년째 피렌체에서 거주하며 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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