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로부터]8월에 떠올리는 크리스마스, 그리고 사람

피렌체로부터 #4



한국도 이제 8월 더위가 조금 누그러졌으려나. 여름이 끝나 가면 마음은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 준비에 나선다. 성탄, 유럽에서의 크리스마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유럽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를 꿈꾸곤 했다. 물론 처음 맞닥뜨린 현실은 꿈처럼 달지 않았다. 거리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건 사실이었으나 딱히 특별한 행사는 없었다. 동네 주민들은 가족과 친구들의 연말 선물을 사기 위해 바삐 상점을 들락거릴 뿐이고, 관광객들은 거리의 화려한 조명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뿐인 건 아니다. 주머니 두둑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소매치기들도 한층 기승을 부렸다. 그들도 가족이나 친구 모임이 있으니 명분은 그럴싸했다. 재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엔 작은 마을버스 안에서 지갑을 도난당했다. 무리로 몰려다니는 그녀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큰 지갑을 작은 틈 사이에서 잘도 빼갔다.



그런 이탈리아가 익숙해진 나로선 성탄절에 굳이 시내를 돌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대신 시장에서 일찌감치 재료를 구입해 와 가족, 동료들과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즐기는 문화로 바뀌었다. 거리의 그 많은 성당 중 하나에 들어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도 한 번 안 올렸으면서 이날을 내 일처럼 기뻐하며 즐겨 왔다니. 작년에도 성탄절 전날에 동료들과 모였다. 집에서 밤새워 놀고 난 다음 날, 숙취는 며칠이 지나도 가시지 않을 것 같은데 전화벨이 울렸다. 안토니오였다.



성탄절을 한 달 앞뒀던 작년 11월. 동네의 몇 안 되는 이탈리아 친구 중 한 명인 안토니오가 크리스마스 식사를 함께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통역도 없이 이탈리아인들과 갖는 식사 자리라니 음식을 먹기도 전에 속이 답답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섰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추억 하나 만들자며 흔쾌히 허락했다. 안토니오의 전화는 바로 그 약속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오후 5시 30분, 안토니오와 그의 아내가 승용차를 한 대 끌고 와서는 요란하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고 우리 부부를 차에 태웠다. 이렇게 넷이서 식사를 하는구나 안심하는 순간, 안토니오의 친구 한 명이 차에 올라탔고, 다른 한 명이 오토바이로 뒤따라 왔다. 식당 앞에 도착하자 또 한 부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렌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프라토Prato라는 지역에 있는 식당이었다. 안토니오의 아들이 쉐프로 있는 식당이라 했다. 거리는 한산한데 식당 안에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양 볼에 Bacio(키스)를 하고 서로의 이름을 교환했다. 처음 만난 이탈리아인들은 낯선 사람들의 이름을 귀 기울여 듣고 절대 까먹지 않는다. 아니 까먹지 않도록 노력한다. 처음 본 사람이 이름을 얘기할 땐 상대방의 눈과 입에 집중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첫 번째로 갖춰야 할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 이름은 이들에게 큰 숙제일 테니 이 나라 이름 하나쯤 갖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옆에 있는 음식을 전해달라고 하거나 건배를 제안할 때도, 맛이 어떠냐 물을 때도 반드시 이름을 불러준다. 그럴 때마다 순간 당황스럽다가도 바보처럼 미소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이제야 한 식탁에 모여 앉은 우리 여덟 명은 식사를 시작했다. 먼저 식전주로 스파클링 와인을 잔에 채우고, 다 같이 ‘Buon Natale(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고, 치즈, 살라미와 바게뜨 빵을 자르고, 올리브유로 적절히 볶은 버섯을 그 위에 올려 식전 음식과 곁들인다. 시작부터 어찌나 입맛에 잘 맞는지 자꾸만 치즈에 손이 가는 내 손을 안토니오의 부인 로사가 재빠르게 저지했다. 다음 음식을 위해 너무 많이 먹지 말란다.



그 후, 두 가지 종류의 파스타로 배가 채워질 때쯤 메인요리가 나왔다. 적절히 구워진 스테이크와 토스카나식 곱창 요리였다. 이쯤 되자 위에는 여유가 없어 눈에 담거나 카메라에 담아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사진으로 맛을 기억하기로 했다. 다행히 토스카나식 곱창은 내 고향 곱창 요리와 많이도 달라 손도 대지 않았다. 장장 두 시간을 그 많은 음식을 먹는 데 쏟았다. 음식을 편하게 넘기기 위해 토스카나 레드 와인을 드럼통째 실컷 마셨다.


안토니오와 로사, 프랑코와 그의 아내, 파비오, 그리고 안젤라. 낯선 이방인들이 함께한 명절 식사 자리. 어쩌면 불편할 수도, 어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눌한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우리에게 한없이 친절을 베풀고 배려해 주었다. 한국의 사정을 물어보기도 하고 최근 나온 뉴스의 북한 이야기도 궁금해하면서. 전 세계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가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컸다.



식사가 어떻게 끝이 났는지 시간은 얼마나 갔는지 셈할 수도 없는 사이, 디저트로 이탈리아식 케이크인 판도로Pandoro와 오렌지가 나왔다. 달콤함으로 입안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식사는 총 세 시간 만에 끝이 났다. 배가 부를 대로 불렀으니 이제는 집에 가고 싶어 안토니오의 차에 올랐으나 프랑코와 그의 부인이 우리를 붙잡으며 커피 한 잔을 권했다. 프랑코의 집은 둘이 살기 적절한 크기에 깔끔하게 꾸며진 보금자리였다. 들어서자마자 집과 가족사진 자랑에 한껏 들떴던 프랑코는 한참 지나고 나서야 황급히 커피 기계를 데웠다.


남자들은 술기운에 젖은 듯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로사가 집안을 구경하던 나를 불렀다. 여자들은 자연스레 주방 식탁으로 모여 앉아 판도로를 잘라 접시에 담고 있었다. 흡사 내 고향 명절날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웃음이 나왔다. 거실은 TV 소리 외엔 조용한 반면 여자들의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주에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 억울했던 사연들을 꺼내며 커피 기계가 어서 데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녀들의 대화를 해석하기 위해 집중하다가 머리에 쥐가 날 때쯤, 안젤라가 드디어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한국의 가정문화는 어때? 식사는 어떻게 해? 아침에는 신랑에게 밥과 반찬을 차려주고, 점심은 일하다 해결하거나 집에 와서 해결하기도 하고, 저녁은 메인요리를 만들어 거창하게 먹는다고 답했다. 세 사람은 경악을 하며 어떻게 삼시 세끼를 전부 챙길 수 있느냐, 아침에 커피와 빵 하나 먹고 일 나가면 그만이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커피는 한 시간 반이 흘러서야 완성되었고, 안토니오의 피로하다는 호소 덕분에 드디어 프랑코의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집 앞까지 데려다준 안토니오가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도 함께하자고 권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싫은 건 아니었다. 그들의 배려가 고마웠고 음식도 맛있었다. 이번엔 내가 그들을 배려하려는 마음이었다. 좀 더 나은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수 있을 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우리의 식사는 다음으로 미뤄졌고, 이제 여름이 가고 크리스마스가 오기까지 계절 하나가 남았다. 이 겨울의 만찬은 좀 더 편안하게 그들과 보낼 수 있으려나. 약 다섯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와서 라볶이를 만들어 먹은 일도 올해는 반복하지 않아도 되겠지.





글/사진 Stella Kim

글쓴이 Stella Kim은 짧은 여행이 아쉬워 낯선 도시에 닿으면 3개월 이상 살아보고자 했다. 호주를 시작으로 필리핀,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태국에 머물렀다. 다시 이탈리아에 돌아와 4년째 피렌체에서 거주하며 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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