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오는 로마]저는 거기 있었고, 아주 약간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시가 오는 로마 #8




오 분간/ 하재연


어려운 건 결심의 문제다 저 구름은 오 분간 한자리에 머물러 있기로 한 모양이다 오 분 후 구름은 쉬지 않고 내내 자세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보고 있는 오 분간이다 (중략) 구름의 힘이 바람을 불러들인 것은 아니다 저기 있는 구름을 결정한 것은 구름의 형태가 아니고, 내가 보는 구름은 오 분간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구름이다 우리는 오 분간, 아주 약간, 옮겨진 건지도 모르지만


- 시집 『라디오 데이즈』, 문학과지성사, 2007


외국 생활을 시작할 때 '거주 문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비자나 체류 허가증 같은 서류를 처리하고 나면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 자체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이탈리아에 와서 거주 공간을 네 번 바꿨습니다. 처음에는 신입 교육생을 위해 회사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살았어요. 두 달 반의 교육 기간을 마치고 나서는 '스포타홈'이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집을 구해서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직방'이나 '다방' 같은 애플리케이션이지만, 집주인이 아니라 어플에서 월세와 보증금을 결제한다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이 집의 주인은 78세의 번역가 여성이었습니다.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일은 아주 가끔 하시고 보통은 자산 관리와 TV 보기, 손주 돌보기 등을 합니다. 한 달만 살기로 계약하고 들어간 것이어서 부엌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냉장고는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먹던 음식물이 뚜껑도 덮이지 않고 냉장고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화장실도 함께 썼는데, 세면대에서 양치질을 한 뒤 음식물을 뱉어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불쾌했습니다. 또, 그분은 밤새 TV를 틀어 놓았는데, 복도를 건너 그 소리가 제 방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녀에게는 백색소음이었겠지만, 잠들기 전 고요함을 즐기는 저한텐 아니었지요.


이렇게 불편한 점이 먼저 떠오른 걸 보니, 그 집은 확실히 제게 맞는 집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었어요. 집에서 3분 거리에 큰 마트가 있는 것, 건너편에 포장 라자냐가 정말 맛있는 핏제리아(피자를 파는 가게)가 있는 것, 조깅을 하기에 좋은 공원이 10분 거리에 있는 것 등등. 특히 그 공원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근법의 대명사가 된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그림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 길」이 떠오르는 곳입니다. 새벽에 그곳을 걷다 보면 명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어요.


첫 번째 집, 두 번째 집


세 번째 집은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구했습니다. 8월에 들어갔는데, 제 방엔 넓은 발코니가 있었습니다. 60세의 프리랜서 여성이 혼자 사는 집이었고 집 구조가 독특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긴 복도가 나옵니다. 그 복도 끝에는 현관문이라고 하기에는 방문 같지만, 방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중후하고 엄격해 보이는 문이 두 개가 나와요. 저는 그걸 '중간 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왼쪽 '중간 문'을 열면 큰 원룸이 나오는데, 그곳이 집주인이 사는 곳입니다. 오른쪽 '중간 문'을 열면 작은 집이 나옵니다. 작은 집이라고 하는 이유는 부엌이 있는 거실과 방 두 개, 그리고 욕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기 방 두 개를 임대해주는 것입니다. 방 두 개가 크기가 달랐는데 에어비앤비라 단기 임대자가 많아서 집주인은 제게 큰 방을 쓰게 했습니다. 작은 방은 짧게 머무는 사람들이 썼지요. 


집주인의 원룸과 작은 집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편했습니다. 저는 이 집에서는 한 달 보름을 살았고, 운 좋게도 보름만 작은 방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순간 인사를 밝게 하며 나를 안심하게 해 주었던 22살의 이탈리아 여자였습니다. 이름은 일라리아입니다. 그리고 일라리아는 보름 중에 열흘간 바캉스를 떠났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바캉스를 길게 떠납니다. 집주인도 이탈리아인이죠. 당연하게도 바캉스를 떠났습니다. 집주인이니까(?) 더 오래 놀 수 있겠죠. 결국 저는 거의 한 달을 혼자 살았습니다.


세 번째 집


집주인이 바캉스를 떠나기 전 자기의 화초를 관리해 달라고 부탁해서, 저는 그녀의 원룸을 둘러볼 기회도 얻었습니다. 주방과 욕실, 그리고 옷장만 있는 드레스룸을 다 합치면 교실만 한 크기의 원룸이었습니다. 책상과 빨간 소파, 작은 침대가 'ㄷ'자 모양으로 있고, 가운데에는 원목 테이블이 있었습니다. 소파와 침대 위에는 벽걸이 책장이 달려 책이 가득했어요. 집주인은 프리랜서라고만 했지, 어떤 일을 하는지는 말을 해주지 않아서 방을 보며 상상해야 했습니다. 책상에 종이와 책들이 쌓여 있고, 인테리어의 포인트 색은 빨강이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의 크기가 다양한 걸 보면서 이 사람은 예술 업계에 종사한다기보단 글을 쓰는 사람일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화초에 이름을 붙였거든요, '윈디'라고(화초는 열 개가 넘었는데, 이름은 하나만 알려줬습니다). 


바캉스를 갔던 집주인이 돌아왔고, 저는 이 집을 떠났습니다. 떠나던 날, 직장 동료가 이사를 도와주러 왔다가 그만 현관에서 중간 문 사이의 복도에 있던 화병을 밀치고 말았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 화병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습니다. 동료를 먼저 내려 보내고, 그 벼락같은 소리를 듣고 나온 집주인에게 제가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자 집주인은 괜찮다고 말하며 깨진 화병 조각들을 치웠습니다. 집주인이 빗자루로 조각을 모으고 있는 동안, 저는 조각들을 담을 봉투를 찾아보았습니다. 마침 끈이 떨어져서 버리려던 가죽 가방이 있어서 그걸 들고 갔더니, 집주인이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그 가방을 정말 버리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못 쓰는 가방이라고 했더니, 자기에게 주면 안 되겠냐고 합니다. 제가 못 쓰는 걸 왜 달라고 하는 건지 궁금하다는 얼굴로 보고 있자, 집주인이 대답했습니다. 


“내 윈디에게 물을 줄 때 못 봤어? 내 방 안에 있는 작품들! 그거 다 내가 재활용품으로 만든 것들이야. 병뚜껑으로 만드는 건 이제 질렸는데, 가죽 가방이라니! 이걸로 멋진 장식을 만들 거야.”


나름 그녀의 원룸을 둘러본다고 봤는데, 인테리어 소품과 장식들이 재활용품인 줄 몰랐습니다. 저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그녀는 저를 자기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알고 보니, 확실히 보였어요. 신발장 위 벽에 걸린 액자 안에는 병뚜껑들로 만든 자전거가 있었고, 윈디(화초 이름)들이 담긴 화분도 모두 캔이나 이전에 무언가를 포장하고 있던 플라스틱 통이었습니다. 책을 꽂아 놓은 책장의 모양도 심상치 않았어요. 자세히 보니 와인을 막는 코르크가 책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그 원룸은 그녀가 창조한 세상이었습니다. 


복도에 있던 유리 화병은 깨졌지만, 그것은 제 가죽 가방과 결합하여 또 다른 장식품이 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저의 마음도 조금 편해졌습니다. 떠나는 길에 유리 화병을 깨버리고 간 한국 여자로 남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녀의 "괜찮다"는 말이 진심인 것 같아서, 그리고 제 가죽 가방이 그녀의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안심했습니다. 사실 계속 '집주인' 혹은 '그녀'라고 불렀지만 그녀의 이름은 '클라우디아'입니다. 클라우디아와 윈디, 너무나 닮은 그들이 함께 사는 집에서 저는 이탈리아의 첫여름을 보냈습니다. 사실 이 글은 그들을 생각하며 쓰는 글입니다. 


이사하는 날



클라우디아의 집을 떠나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왔습니다. 이 집은 중개업체를 통해 구한 것이 아니고 제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선배가 살던 집입니다. 4년을 살았던 선배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사를 가면서 물려(?) 주었습니다. 아마 저도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계속 이곳에서 살 것 같아요. 그동안 이사를 계속해야 했던 건 서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 집을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집 문제는 신뢰관계가 중요한데, 아무래도 외국인이고 저의 비자로는 그 신뢰가 형성되기 어렵거든요. 이 집은 선배가 보증인 역할을 해주어서 신뢰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드디어 반년 간의 떠돌이 생활이 끝났습니다. 로마에도 '내 집'이 생긴 겁니다. 


이 집으로 이사를 한 날,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습니다. 이 집에서 저는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째 살고 있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어요. 집주인 부부는 따로 삽니다. 남편 피에트로는 카라비니에리(이탈리아의 경찰. 일반 경찰 폴 리지아에 비해서 높은 직위를 가진 계급)이고 부인 루치아는 학교 선생님입니다. 그들은 한 달에 한번 집세를 받으러 옵니다. 할머니 때부터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라서 루치아는 집에 깊은 애정이 있습니다. 제 방에 있는 가구들도 루치아가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가구입니다. 루치아는 60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방의 가구를 대할 때 괜히 송구스럽습니다. 아직 불러본 적은 없지만(부를 때 '선생님'을 붙여야 할 것 같아요), 옷장 선생님, 제가 함부로 문을 젖혀서 죄송합니다. 화장대 선생님 제가 자꾸 팔꿈치를 기대서 무거우시죠…? 얼마 전에 친구가 제 방에 놀러 와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가구 선생님들을 보고 "언니, 너무 앤틱하고 예쁘다! 신기해!" 라며 한참 감탄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 들으셨어요? 여전히 참 고우세요. 


저는 하재연 시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이동」이라는 제목의 시도 있을 정도로, 어딘가로 옮겨 가는 상황이 묘사되는 시가 많습니다. 아마 한국을 떠나온 지 얼마 안 된 저의 상황 때문에 이 시인의 시에 더 공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것이 구름입니다. 그 구름을 '오 분간' 바라보았는데, 그동안 구름은 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저기에 어떻게 구름이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구름의 형태가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보고 있는 오 분간'입니다. 저는 로마에 왔고, 여기에서도 꾸준히 옮겨 다녔지만, 그래도 그곳에 머물고 있던 그 며칠은 거기 있었어요. 중요한 건 그것 아닐까요? 그곳에 머무르고 있던 그 시간이요. 물론 아주 약간 옮겨지고 있었겠지만요. 





글/사진 박무늬

대학교에서 언어학과를 졸업한 후, 취업이 막막하고 의욕도 없어서 작은 카페와 독립출판사를 차렸다. 친구와 함께 첫 번째 책 『매일과 내일』 을 내고, 출판사 사업 신고한 것이 아까워서 두 번째 책 『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데,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서 이탈리아 로마에 왔다. 현재 유로자전거나라 회사에서 투어 가이드로 일하며, 사람과 삶에 부딪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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