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추럴하게]사보나, 이탈리아

본, 내추럴하게 #6



3월 즈음. 전년 대비 날씨가 독일답지 않게 너무 좋아 올해는 선물을 받나 보다 싶은 감사함에 하루하루를 지냈는데, 그러면 그렇지 그 며칠을 빼곤 추위와 비바람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독일 작곡가 슈만이 개떡 같은 독일의 날씨 중에 5월이 가장 아름답다며 극찬하며 작곡한 가곡 “아름다운 계절 5월에”가 무색한 요즘입니다.



여담으로, 독일을 비롯한 서북유럽의 날씨는 매우 더럽기로 유명한데요, 놀라운 건 독일에 방문하는 영국인들은 독일날씨가 좋다고 한다네요. 영국은 사람 살 곳이 진짜 아닌 거죠. 이렇게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니 작년에 뜨겁고 즐거웠던 남국의 정취가 더 생각나 마음의 위로 차 이불을 뒤집어쓰고 빗소리를 벗 삼아 지난 여름휴가 사진첩을 뒤척여 봅니다. 여름에만 휴가를 쓸 수 있는 제 직업 특성상 그때가 유일하게 한국을 방문해서 독일에서 얻은 각종 곰팡이를 짜릿한 고국의 햇빛으로 멸균하고 마늘 향 가득 한 식탁을 원 없이 대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지난해엔 과감히 한국행을 포기하고 이탈리아 서북부 해안 도시 '사보나'라는 곳으로 출발했습니다.



사보나는 제가 살고 있는 본에서 대략 1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해안 도시입니다. 유럽여행 다니시는 분들이 많아 익히 알려졌듯 유럽인들은 태양에 열광하는데요, 선캡이나 토시 등으로 햇빛을 차단하는 한국의 정서와 매우 동떨어져 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날씨가 지랄 같아 해를 볼 일이 많질 않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피부와 접촉해 줘야 하는 겁니다. 저와 아내는 자동차로 여행했는데요, 일단 스위스 남부를 통과할 때 즈음 이미 태양이 작열하며 독일 "바이짜이찌엔"을 저절로 외치게 됩니다.



사실 한국인 정서엔 독일보다 이탈리아가 더 맞다고 늘 주장하는 저로서는 이번 여행으로 그 믿음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요. (독일에 비교해 볼 때) 일단 풍부한 해산물, 딱딱하고 규칙 좋아하는 독일인에 비해 좀 융통성 있고 낯가림 없는 이탈리아인들의 기질, 무엇보다 확실하게 아름다운 날씨!! 길가에 늘어선 야자수를 비롯한 남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열대성 나무들과 정말 눈부신 파란 바다, 어둡고 둔탁(?)한 독일어만 듣다가 노래하는 듯 말하는 이탈리아어를 사방에서 보고 들으니 아내와 저는 연신 “외국 같다!!”를 외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원 없이 들이켜 본다는 큰 기대감에 부풀어 마침내 맛보게 된 에스프레소!! 명불허전이네요. 엄청난 콩기름 향이 제 코와 입안을 휘저으며 아우성을 칩니다.


독일의 커피 사랑도 대단하여 어디서든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지만 현지에서 마시는 기분 탓인가, 비교 불가하다 생각이 듭니다. 이 에스프레소는 기상 직후 공복에 특히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게, 마시자마자 그 진한 향과 맛에 기분 좋게 뒷골이 당기며 잠을 확 깨게 됩니다.



아무튼 비록 몇 주지만 매일 늘어지게 늦잠자고 세계에서 젤 맛난 에스프레소로 아침을 대신 한 후 바로 해변에 나가 뜨거운 태양 아래 모자란 잠을 자다 깨서 수영하는 호사를 누립니다. 다만, 이탈리아는…, 맥주는 영 아니네요. 맥주는 그냥 독일에서 마시는 거로다가.




"느긋하게 거리를 걸으며 다른 사람들을 관찰해 봅니다."



사람마다 생김새와 성격이 다르듯 여행 스타일도 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일단 저는 몇 군데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잘 먹고 잘 쉬자’ 주의라 한군데 죽치고 앉아 하루 평균 8~9시간을 자고(낮잠 제외) 처묵처묵, 띵까띵까, 그러다가 돌아오는 편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생선 종류를 즐기지 않던 저도 이 ‘음식 야만국’ 독일에 꽤 오래 살다 보니 비늘 달린 것들을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데요, 이태리야말로 대한민국과 꼭 닮은 비린내 천국이라는 점이 매우 감사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생선들!! 그중에서도 제가 애정하는, 유명 주례님이시기도 한 문어 박사님을 오늘 모십니다. 이태리어로 ‘뽈뽀polpo’라 불리시는 문어님의 부드러운 식감이 화이트와인과 어우러지면 단백질의 완전체로 다가와 제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아멘인거죠.



늦잠 신나게 자고 세수도 안 한 채 가방 챙겨 숙소 앞의 바에서 간단히 에스프레소를 한잔한 후 해변으로 가서 못다 한 잠을 잡니다. 몸이 뜨거워지면, 세수 겸 샤워 겸 수영 한 판하는 패턴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요, 이것도 나름 일인지라 수시로 당이 떨어지니 이를 보충하기 위해 근처 빵집으로 갑니다.



이것이 본토 티라미수!!


유기농 수제 티라미수라고 강조하시는, 호호아줌마 닮았던 점원분이 추천해 주신 메뉴들입니다. 하…, 맛은 정말 뒷골 당기게 달짝지근합니다. 천성적으로 단맛에 거부감이 있는 저도 기분 좋을 정도의 퀄리티네요. 제 아내 또한 연신 “미쳤어!”를 외치며 이성을 잃으신 채 흡입을 합니다.



해수욕 및 일광욕, 당 보충이 끝났으니 다시 숙소에 들어와 피로를 회복한 후 마실을 나가봅니다. 컨디션에 따라 자동차로 100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예쁜 도시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그냥 사보나 시내를 슬렁슬렁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외국의 정취를 느낀다 함은 본인이 사는 곳과 다른 형태의 건물, 날씨 혹은 언어, 음식을 경험해 보는 것일 수 있지만, 제 개인적으론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바, 이렇게 느긋하게 거리를 걸으며 다른 사람들을 관찰해 봅니다. 제가 장소를 많이 옮기지 않고 한곳에 오래 있으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완전히 빡빡한 일정을 마친 후 하루의 하이라이트, 최고의 한식, 양식 조리사, 전능하시고 제가 사랑하는 마눌님이 준비하신 저녁 식사를 매우 늦게(저녁식사 시간이 늦을수록 더 맛있는 이유는 도대체…) 시작해 봅니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랬다고, 그러고 보니 의식적으로 해물을 너무 많이 섭취했네요. 그러나 전혀 물리지 않습니다. 마치 처음으로 생선을 대하듯 맛있게 먹습니다.


이런 식으로 몇 주를 보내니 저도 사람인지라 좀 지겨워졌을 법도 하나, 지루하기는커녕 돌아오는 날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제 다시 몇 주 안 남은 올해의 휴가가 다시 저와 아내를 설레게 하네요!


아싸!!!





글/사진 프리드리히 융

2003년 독일유학 중 우연히 독일 회사에 취직하여 현재까지 구 서독의 수도(현재 독일의 행정수도)인 본에 거주중인 해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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