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에서 보낸 한 달][여행] 시칠리아 코를로오네, 안티 마피아 박물관

시칠리아에서 보낸 한 달 #10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남쪽 끝의 섬으로, 국가 권력의 공백이 많았다. 복잡한 근현대사 속에서 권력이 여러 차례 바뀌며 공권력이 결여되는 상태가 자주 지속되었고, 이 공백을 마피아가 채웠다. 이탈리아의 지역주의와 함께 성장한 마피아(Mafia) 범죄조직은 그물망처럼 짜인 비밀 조직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를 움직였다. 마피아와 연결되지 않고는 이탈리아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80년대 후반부터 마니 풀리테(Mani Pulite : 깨끗한 손)라 불리는 대대적인 마피아 소탕 작전을 펼쳤다.


마피아 영화의 영원한 고전이라 불리는 〈대부(The Godfather)〉는 1972년 1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74년 2부, 90년 3부까지 제작되어 마피아 가문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마피아를 너무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질타가 쏟아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대부를 꼽을 만큼 걸작이자, 미국 영화의 역사로 손꼽히고 있다. 갱 영화는 이 이전에도 많았고 이 이후에도 많았지만, 〈대부〉는 아무도 견주지 못할 영화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대부〉


시칠리아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마피아’와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 없는 명불허전의 영화는 단연코 놓칠 수 없는 테마일 것이다. 시칠리아가 마피아의 본거지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고, 영화 〈대부〉의 주요 촬영지가 뉴욕과 시칠리아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포르차 다그로(Forza d’Agro), 사보카(Savoca)와 같은 촬영 장소를 직접 찾으며 ‘대부 투어’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촬영지에 방문하기 전에 그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물어볼 수 없었던 마피아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코를레오네(Corleone)에 가보기로 했다.


시칠리아 코를레오네


이탈리아 시칠리아주 팔레르모현에 속하는 코를레오네는 인구는 약 11,000명의 도시이다. 영화 대부의 주인공이자 뉴욕 마피아 두목인 돈 코를레오네(Don Corleone, 말론 브란도 분)의 고향으로 묘사 되는 마을이다. 마이클 코를레오네를 연기했던 알 파치노의 부모님도 시칠리아 이민자 출신이며, 실제로 외조부가 시칠리아 코를레오네 출신이기도 하다. 감독이 알파치노의 이러한 배경 때문에 제작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명 연극배우였던 그를 적극 추천하여 배역을 맡겼다. 알 파치노는 이를 마치 운명 같았다고 회상했다. 마르코 벨로키오의 〈배신자(2019)〉라는 영화는 이탈리아 사법부의 마피아 소탕 작전을 다룬 드라마인데, 더 잔인하게 묘사된 파가 코를레오네 파다.


코를레오네 대부 기념품


이처럼 마피아를 소재로 다루는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코를레오네는 지금도 이름만 들어도 왠지 두려움이 느껴진다. 현지 주민들은 거의 살지 않을 듯한 시골 마을, 우리처럼 마피아가 궁금한 관광객들만 두려움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마을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실제 코를레오네가 마피아의 본거지이기는 했으나, 영화 〈대부〉 속 주인공들은 가상 인물이며, 촬영도 대부분 근교 포르차 다그로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마피아와는 전혀 관련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마을 주민들은 안티 마피아 박물관(Museo Antimafia)을 운영하며 ‘마피아의 본거지’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코를레오네


안티 마피아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가이드는 간절하고도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호기심 가득한 우리들을 향해 말했다.


안티 마피아 박물관


“이 작은 마을은 여전히 마피아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돈 코를레오네(Don Corleone)를 비롯해 미화된 시칠리아 마피아를 상상하며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너무 보기 싫었다. 돈 코를레오네는 가상의 인물일 뿐이며, 보시다시피 우리는 안전하다. 마피아 때문에 코를레오네를 찾는 이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티 마피아 박물관에서


원래는 고아원이었던 건물을 2000년에 마피아와 반 마피아 운동에 관한 국제 기록 센터로 바꾸어 ‘안티 마피아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비영리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마피아를 미화하지 않고, 그 시대의 기록물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복잡한 근현대사 속의 시칠리아와 마피아에 대한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마피아’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지금은 그토록 끔찍한 영화 속 마을이 아니라 지극히 평화롭고 안전한 마을이라는 사실도.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하자 모든 이빨을 다 드러내고 세상 좋은 웃음을 지어주던 가이드 안토니오 덕분에 한 뼘 만큼 남았던 내 모든 두려움이 사르르 녹았다. 


안티 마피아 박물관(Museo Antimafia Corleone)
주소 : Piazza Garibaldi, 1, 90034 Corleone PA




글/사진 김혜지(이태리부부)

파리, 로마를 거쳐 현재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기록하고 콘텐츠를 생산해 내며 삶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입니다. 유투브 채널 '이태리부부' 운영 중. 『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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