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여행] '하루 한 잔 비엔나'를 시작하며

하루 한 잔 비엔나 #1



“작가님이 하실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많을 것 같아서…….”

 

그 말이 콕 닿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음악의 도시, 비엔나 커피는 없는 도시. 비엔나에 오래 산 나는 그 말대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가 과연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지만 글이 잘 써지지는 않았다. 작년까지 오스트리아 한인회지 편집부로 일하며 인터뷰와 카페를 소개하는 칼럼을 쓰기는 했다. 블로그도 한다. 일로 만나 지금은 지인이 된 『오스트리아 홀리데이』의 작가님께 조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마주하다가 결국 종료를 누르고 말기 일쑤였다.

 

『오스트리아 홀리데이』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거람. 사진에 관해서? 비엔나 생활에 관해서? 해외에서 아기를 키우는 일이나 비엔나의 카페들에 관해서? 아니면……?

 

나는 비엔나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악보에 그려진 음표들을 건반으로 옮겨 표현하는 일이었다. 현재는 사진을 업으로 삼고 있다. 피사체를 뷰파인더를 거쳐 네모난 칸 안에 담아내는 일이다. 모두 눈에 보이는 ‘유’적인 부분을 다시 ‘유’적인 부분으로 표현하는 작업인 것이다.

 

악보 보고 연주하기


유학 시절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수업이 작곡이었다. 독일에서 학교를 다닐 때, 20세기 음악가들의 스타일로 곡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쇤베르크나 드뷔시가 사용한 기법을 활용하여 8마디 정도 곡을 써보라는 것. 아니, 어떻게 쓰라는 거야? 어떻게 만들라는 거지? 나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술도 마찬가지. 얼마 전 오일파스텔에 푹 빠졌다. 유명 화가의 작품이나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리는 건 할 수 있었는데 내 상상을 종이 위에 옮겨보는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 ‘대상을 안 보고’ 그림을 그릴 수 있지? 당시 비엔나에 여행 와 있던, 미술을 전공한 나의 시누이는 주제를 주면 상상하는 대상을 거침없이 그려댔다. 그런 시누이의 손길은 정말 마술 같아 보였다.

 

오일파스텔


그럼 글은 어떨까. 글은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테마를 낚아채어 키보드 위에 옮기는 일이다. 물론 낚아챈 것들을 나열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게다가 글을 쓸 때만큼은 이상한 망상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어렸을 때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판타지 소설 쓰듯 일기를 쓰기도 했다. ‘유’에서 ‘유’만 가능한 나에게 글쓰기만큼은 ‘무’에서 ‘유’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물론, 쓴 걸 읽으면 이건 지워야겠다, 투성이지만.

 

결국 나는 여기에서 비엔나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내 이야기도 슬쩍슬쩍 집어넣을 것이다. 푸념도 하고, 자랑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싶다. ‘유’에서 ‘유’, ‘무’에서 ‘유’, 그런 경계가 사라지는, 행복한 걱정으로 타자를 치는 밤을 보낼 생각이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여기저기 다니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일 벌리기도 좋아하지만, 잔잔한 음악 틀어두고 집에서 작업하는 것도 좋아한다. 언젠가 사진을 담은 책을 내어보고 싶다. 오늘도 스냅을 찍고, 클래식을 듣고, 글을 쓰고, 엄마껌딱지 아들과 성격 정반대의 남편과 느긋한 두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비엔나에서 살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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