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 #5
겨울 같았던 비엔나의 코로나
2017년, 오스트리아에서는 ‘얼굴을 인식할 수 없게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릴 수 없다’는 법령, 이른바 ‘베일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오스트리아에서도 마스크를 써야만 외출을 하고 대중교통도 탈 수 있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알레르기나 기침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 눈치를 주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마스크를 찾기 시작했고, 마스크 구하기 힘들던 나라에서 마스크를 판매하는 상점도 생겼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당시 이제 막 백신이 출시된다는 뉴스가 나오고는 있었지만, 전 세계 비행길이 막혀 한국의 가족은 누구도 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이 집에서 부지런히 미역국을 배달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출산을 위해 도착한 병원에서는 “코로나 방역 지침 때문에 병원을 나가면 가족이어도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를 낳은 날
덕분에 집에 가서 이것저것 좀 챙겨와야지 했던 남편의 빅 픽처는 산산조각이 났다. 토요일에 태어난 아기 덕에 남편은 갈아입을 옷도 면도기도 챙기지 못한 채 막 출산한 부인보다 더 푸석푸석한 주말을 병원에서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코로나 한복판에 태어난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아주 건강한 개구쟁이로 비엔나를 휩쓸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성장
코로나로 하늘길이 닫혀 의도치 않은 이산가족들이 생겼다. 자고 일어나면 어디 공항이 통제되었더라, 어느 나라에서 입국을 못하게 하더라 등등 “아니,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싶은 뉴스들이 속속 발표됐고, 관광객으로 붐비던 비엔나 시내도 썰렁해졌다. 외출 제한이라는 강수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특수한 용건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었고 그 당시 임신 중이었던 나는 병원을 가는 일 외에는 오롯이 집순이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당시의 비엔나
호텔, 레스토랑, 상점조차 문을 닫은 비엔나 시내는 정말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단체 관광객이며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케른트너 거리가 마치 이른 새벽처럼 오가는 사람 없이 조용한 모습이라니. 한 치 앞도 모를 상황에서도 어쨌든 다시는 못 볼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부터 다시 하늘길이 열렸고, 입국 시 PCR과 백신이 필요하던 규정도 점점 최소화되어 아무 조건 없이 출입국이 가능해졌다. 마스크 착용도 필수에서 대중교통과 약국, 병원에서만 쓰는 것으로 완화되더니 2023년 3월부터는 대부분 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졌다. 동시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착용할 경우 경찰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지침을 재확인했다.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붐비는 비엔나
봄이 오고 있는 비엔나
3월과 4월, 더위와 추위가 번갈아가며 지나갔다. 따스하고 파릇파릇한 봄을 상상하던 4월 관광객들도 뜻하지 않은 꽃샘추위에 급히 패딩을 구매했다고 할 정도.


봄과 겨울이 번갈아 오는 변덕스러운 날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4월 토끼’가 왜 4월인지 알겠다 싶을 만큼 4월까지 변덕스러운 날이 반복되지만, 어느덧 거세게 몰아치던 바람이 줄어들고 나무에도 초록색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겨우내 황량하던 공원이 알록달록한 색채로 물든다. 내내 흐리던 하늘에 구름 걷히는 날이 많아지며 파란 하늘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점 가벼워진다.
가장 큰 차이점은 해가 길어졌다는 것이다. 서머타임은 이미 3월 말에 시작되었고, 이제 오후 7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다. 어느덧 따뜻해진 햇살과 함께 공원에 피기 시작한 꽃들을 보면 매일매일 같은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한가득 사진첩을 채우게 된다. 단 하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이랄까.

이러다가 언제 더위가 찾아올지 모른다. 금세 들이닥칠 무더운 여름을 앞두고 사람들은 짧은 봄날을 즐기기 위해 공원을 찾고, 광장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야외 카페에서 햇살을 만끽한다. 풋풋한 봄 내음을 만끽하며 야외에서 마시는 비엔나 커피는 정말 가만 앉아있기만 해도 노곤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시기에는 비도 자주 내린다. 가끔은 우수수 짧은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공기 중에 흩뿌리는 미스트 같은 가랑비가 내리기도 한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해 비가 멎기를 기다릴 카페를 찾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빗줄기가 잦아들며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내리쬔다. 봄비가 내린 날이면 비엔나의 무채색 거리가 더욱 무겁고 분위기 있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돌로 만들어진 건물과 거리가 비에 젖으며 색감이 더 차분하게 잦아든다고 해야 할까? 비 오는 날의 비엔나도 놓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비 오는 날의 비엔나
바야흐로 코로나와 함께 ‘겨울’은 갔다. 비엔나 시내는 돌아온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3년이 그렇게 긴 시간이었을까, 예전에는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활기 넘치는 시내 상점과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보인다. 공기 중에는 분명 따뜻한 향기가 섞여 있다. 지금은 봄, 비엔나의 봄이다.


글/사진 허미리(마이네포토 대표, 미리작가)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여기저기 다니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일 벌리기도 좋아하지만, 잔잔한 음악 틀어두고 집에서 작업하는 것도 좋아한다. 언젠가 사진을 담은 책을 내어보고 싶다. 오늘도 스냅을 찍고, 클래식을 듣고, 글을 쓰고, 엄마껌딱지 아들과 성격 정반대의 남편과 느긋한 두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비엔나에서 살아가는 중.
https://instagram.com/photo_by_miri_vienna
https://blog.naver.com/miri_in_vienna
하루 한 잔 비엔나 #5
겨울 같았던 비엔나의 코로나
2017년, 오스트리아에서는 ‘얼굴을 인식할 수 없게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릴 수 없다’는 법령, 이른바 ‘베일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오스트리아에서도 마스크를 써야만 외출을 하고 대중교통도 탈 수 있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알레르기나 기침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 눈치를 주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마스크를 찾기 시작했고, 마스크 구하기 힘들던 나라에서 마스크를 판매하는 상점도 생겼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당시 이제 막 백신이 출시된다는 뉴스가 나오고는 있었지만, 전 세계 비행길이 막혀 한국의 가족은 누구도 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이 집에서 부지런히 미역국을 배달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출산을 위해 도착한 병원에서는 “코로나 방역 지침 때문에 병원을 나가면 가족이어도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집에 가서 이것저것 좀 챙겨와야지 했던 남편의 빅 픽처는 산산조각이 났다. 토요일에 태어난 아기 덕에 남편은 갈아입을 옷도 면도기도 챙기지 못한 채 막 출산한 부인보다 더 푸석푸석한 주말을 병원에서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코로나 한복판에 태어난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아주 건강한 개구쟁이로 비엔나를 휩쓸고 있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닫혀 의도치 않은 이산가족들이 생겼다. 자고 일어나면 어디 공항이 통제되었더라, 어느 나라에서 입국을 못하게 하더라 등등 “아니,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싶은 뉴스들이 속속 발표됐고, 관광객으로 붐비던 비엔나 시내도 썰렁해졌다. 외출 제한이라는 강수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특수한 용건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었고 그 당시 임신 중이었던 나는 병원을 가는 일 외에는 오롯이 집순이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호텔, 레스토랑, 상점조차 문을 닫은 비엔나 시내는 정말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단체 관광객이며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케른트너 거리가 마치 이른 새벽처럼 오가는 사람 없이 조용한 모습이라니. 한 치 앞도 모를 상황에서도 어쨌든 다시는 못 볼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부터 다시 하늘길이 열렸고, 입국 시 PCR과 백신이 필요하던 규정도 점점 최소화되어 아무 조건 없이 출입국이 가능해졌다. 마스크 착용도 필수에서 대중교통과 약국, 병원에서만 쓰는 것으로 완화되더니 2023년 3월부터는 대부분 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졌다. 동시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착용할 경우 경찰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지침을 재확인했다.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봄이 오고 있는 비엔나
3월과 4월, 더위와 추위가 번갈아가며 지나갔다. 따스하고 파릇파릇한 봄을 상상하던 4월 관광객들도 뜻하지 않은 꽃샘추위에 급히 패딩을 구매했다고 할 정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4월 토끼’가 왜 4월인지 알겠다 싶을 만큼 4월까지 변덕스러운 날이 반복되지만, 어느덧 거세게 몰아치던 바람이 줄어들고 나무에도 초록색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겨우내 황량하던 공원이 알록달록한 색채로 물든다. 내내 흐리던 하늘에 구름 걷히는 날이 많아지며 파란 하늘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점 가벼워진다.
가장 큰 차이점은 해가 길어졌다는 것이다. 서머타임은 이미 3월 말에 시작되었고, 이제 오후 7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다. 어느덧 따뜻해진 햇살과 함께 공원에 피기 시작한 꽃들을 보면 매일매일 같은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한가득 사진첩을 채우게 된다. 단 하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이랄까.
이러다가 언제 더위가 찾아올지 모른다. 금세 들이닥칠 무더운 여름을 앞두고 사람들은 짧은 봄날을 즐기기 위해 공원을 찾고, 광장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야외 카페에서 햇살을 만끽한다. 풋풋한 봄 내음을 만끽하며 야외에서 마시는 비엔나 커피는 정말 가만 앉아있기만 해도 노곤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시기에는 비도 자주 내린다. 가끔은 우수수 짧은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공기 중에 흩뿌리는 미스트 같은 가랑비가 내리기도 한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해 비가 멎기를 기다릴 카페를 찾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빗줄기가 잦아들며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내리쬔다. 봄비가 내린 날이면 비엔나의 무채색 거리가 더욱 무겁고 분위기 있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돌로 만들어진 건물과 거리가 비에 젖으며 색감이 더 차분하게 잦아든다고 해야 할까? 비 오는 날의 비엔나도 놓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바야흐로 코로나와 함께 ‘겨울’은 갔다. 비엔나 시내는 돌아온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3년이 그렇게 긴 시간이었을까, 예전에는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활기 넘치는 시내 상점과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보인다. 공기 중에는 분명 따뜻한 향기가 섞여 있다. 지금은 봄, 비엔나의 봄이다.
글/사진 허미리(마이네포토 대표, 미리작가)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여기저기 다니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일 벌리기도 좋아하지만, 잔잔한 음악 틀어두고 집에서 작업하는 것도 좋아한다. 언젠가 사진을 담은 책을 내어보고 싶다. 오늘도 스냅을 찍고, 클래식을 듣고, 글을 쓰고, 엄마껌딱지 아들과 성격 정반대의 남편과 느긋한 두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비엔나에서 살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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