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여행] 비엔나의 멋진 친구들

하루 한 잔 비엔나 #6



얼마 전 성황리에 방송을 마친 《팬텀싱어》.

 

크로스오버 중창팀을 구성한다는 타이틀로, 국내외 내로라하는 ‘실력파’들이 출연하여 경합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벌써 이번이 4회째이고, 그간 다양한 팀들이 구성되어 현재도 인기리에 활동 중인 이들이 있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에서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팬텀싱어》 무대에 올랐다. 음악 명문가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빈 국립대학의 ‘동양인 최초 성악 강사’라는 타이틀로 방송에 나온 성악가 안민수 씨. 사실 나와는 나이도 같고 지금껏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과정을 쭉 지켜봐 왔던 터라 이번 도전 소식이 더욱 흥미로웠다.

 성악가 안민수 씨


어떻게 보면 경력은 이미 튼튼하게 완성된 사람이다. 다양한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강사 임용 전에도 교육 시스템을 인정받았으며, 몇 년 전 《팬텀싱어》의 오스트리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현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파이널까지 올라가 오스트리아를 떠들썩하게 했으니. 그런 경력 속에 동양인 최초로 세계적인 권위의 빈 국립 음대에 출강한다는 것은 정말 음악인으로서 “이제 다했다!”라고 말해도 모자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안주해도 될 만한데 《팬텀싱어》 도전이라는 프로필을 덧붙이려고 노력하는 그의 행보가.

 

사실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잘 못 본다. ‘짤’도 제대로 못 보는 ‘쫄보’다. 합격자, 우승자 뒤에 남은 탈락자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팬텀싱어는 열심히 달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안민수 씨를 응원하라며 압력까지 넣어가면서.

 

민수 씨는 아쉽게도 파이널에는 진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방송 이후에도 쭉 이어지는 《팬텀싱어》 멤버들과의 끈끈한 우정, 그의 목소리를 좋아해 주는 두터운 팬층을 보면 이번 도전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수 씨와 함께

 

한편, 얼마 전 빈 필하모닉의 연주 홀이기도 한 무직페어아인(Musikverein)에서 성공적으로 데뷔 무대를 가진 지인도 있다.

 

욘Jon 은 한국계 스웨덴 지휘자로 욘의 부부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오래전 욘의 프로필 사진을 촬영한 적이 있다. 한국계이지만 어렸을 적 한국을 떠난 터라 한국말을 못하던 그와 독일어에 손짓 발짓까지 곁들여 가며 촬영을 마쳤다. 그런데 한참 후, 역시 촬영 일을 하며 알게 된 친한 동생이 “언니도 아는 사람이에요”라며 욘과의 교제 사실을 슬쩍 전해오는 게 아닌가.

 

지휘자 욘


그게 인연이 되어서 둘의 청첩장용 웨딩 촬영도 내가 맡았고, 결혼식 때는 내 드레스를 입혀주기도 했으며. 현재는 올해 아가도 태어난 욘 부부 가족의 전용 포토그래퍼로 함께하고 있다.

 

그런 인연이기에 이미 다양한 페스티벌과 오스트리아의 무대에서 지휘했던 프로페셔널 지휘자임에도 무직페어아인 데뷔 무대가 남 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스냅 촬영을 하기 위해 대기실에 방문했을 때 악보를 정리하며 집중하던 욘의 모습이란. 우리에게는 활발하고 장난도 치는 재치 있는 지인이지만, 연주를 앞둔 그의 모습에서는 그야말로 ‘음악가’의 면모가 보였다.

 

대기실에서


나도 음악을 전공했다 보니 주변에서 - 특히 엄마가! - 연주를 앞두고 많이들 하는 말 중 하나가 “그만큼 했는데 이제 긴장 안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이다. 긴장 안 하기는 무슨!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대의 중압감이 커지는 기분이다. 한때는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려서 고개를 한껏 쳐들고 연주한 적도 있었다. 남들 눈에는 연주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을 테지만.

 

연주하는 내 모습


지인 음악가들이 무대 뒤에서 긴장한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기도 한다. 워낙 무대 위에서는 당당하고 기운찬 모습을 보여주기에 긴장이라고는 안 할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오래, 더 많은 무대에 선 그들도 무대에 나서는 마지막까지 악보를 보고 집중하는구나, 왠지 모를 친밀감이 느껴진다.

 

욘의 황금 홀 데뷔 무대는 대성공이었다. 가족 모임으로 만났을 때의 익살스러움과 달리 무대에서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오케스트라를 격동적으로 지휘한 그에게 사람들은 갈채를 보냈다. 우리가 아는 욘 맞아? 사실 그게 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멋진 순간이었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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