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 #7
7월이 넘어가고 8월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비엔나에도 여름이 왔다”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올해 봄과 여름은 “이런 날씨 처음이야”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다시 “라떼는 말이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면, 갓 유럽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버텼던 기억이 난다. 카페에서도 시원한 음료를 찾긴 했지만 굳이 얼음을 동동 띄워 마시지 않아도 좋았고, 나무 그늘만 들어가도 서늘하게 느껴지던 건조한 공기의 혜택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에서 살면서도 선풍기 한 대 산 적 없었다. 좀 덥네, 싶으면 그날 밤 폭우가 쏟아지면서 이불을 돌돌 말고 잘 정도의 서늘한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으니까. 온 동네의 창문이 여름밤마다 활짝 열려 있던 풍경을 기억한다.

언젠가 8월의 밤도 떠오른다. 올해 역시 여름밤을 달구고 있는 시청사 앞 ‘필름 페스티벌’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보여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여서 호기롭게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점점 싸늘해지는 저녁 공기에 가방 속에 구겨 넣었던 카디건을 꺼내 입었음에도 결국 영상이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다가 어느새인가 점점 “덥다” 하는 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집 근처 잡화상에서 하얀 선풍기를 하나 구매했는데, 그해 여름에는 몇 번 사용하긴 했지만 줄곧 튼 적은 없었다. 무더운 날의 대비책 정도로 구매했을 뿐, 창문을 열면 여전히 시원했으니까.

그 다음해부터 몇몇 여름밤은 “열대야구나!”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더워서 밤새 선풍기를 틀고 잤다. 밤바람도 예전에 비해 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선풍기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다가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 남편을 위해 이동식 에어컨을 들이기에 이르렀다. 한국처럼 실외기를 설치해 쓰는 시스템이 아닌, 창문으로 뜨거운 공기를 바로 빼내 집안은 서늘하게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전기세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을 쐬며 계절을 보냈다.
당시 그 집은 시내 쪽이고 건물들이 붙어 있어 점점 더워지는 여름을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 집은 신축 건물이라 설계할 때부터 건물 전체를 시원한 물이 돌며 온도를 내려주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남편은 이동식 에어컨이 없어도 아주 만족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날씨는 정말 뒤죽박죽이다. 날씨도 일교차도 변화무쌍하달까. 고객들에게 “올해처럼 이렇게 뒤죽박죽인 건 처음이에요!” 하는 말을 달고 살고 있다. 올해는 늦봄 초여름에도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유독 잦았고, 덕분에 다른 해보다 우중 스냅 촬영을 더 많이 했다. 한여름을 기대하며 얇은 옷만 챙겨 오셨던 분들께서 급히 재킷이나 바람막이를 사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이번 주만 해도 33도, 35도를 웃돌던 여름 온도가 하루아침에 21도로 뚝 떨어지기도 한다. 전날은 반팔, 반바지를 입고도 땀을 흘리며 돌아다녔는데 다음날은 도톰한 블레이저를 부랴부랴 꺼내 입어야 할 정도. 유럽의 여름은 원래도 변덕스러웠지만, 날이 가면서 더욱 변덕스러워지고 있다.
슬쩍 환경도, 지구 온난화도 걱정이 된다. 내일 또 무더운 날이 오면 서늘했던 오늘이 그리워지려나.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https://instagram.com/photo_by_miri_vienna
https://blog.naver.com/miri_in_vienna
https://mirivienna.com
하루 한 잔 비엔나 #7
7월이 넘어가고 8월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비엔나에도 여름이 왔다”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올해 봄과 여름은 “이런 날씨 처음이야”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다시 “라떼는 말이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면, 갓 유럽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버텼던 기억이 난다. 카페에서도 시원한 음료를 찾긴 했지만 굳이 얼음을 동동 띄워 마시지 않아도 좋았고, 나무 그늘만 들어가도 서늘하게 느껴지던 건조한 공기의 혜택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에서 살면서도 선풍기 한 대 산 적 없었다. 좀 덥네, 싶으면 그날 밤 폭우가 쏟아지면서 이불을 돌돌 말고 잘 정도의 서늘한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으니까. 온 동네의 창문이 여름밤마다 활짝 열려 있던 풍경을 기억한다.
언젠가 8월의 밤도 떠오른다. 올해 역시 여름밤을 달구고 있는 시청사 앞 ‘필름 페스티벌’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보여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여서 호기롭게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점점 싸늘해지는 저녁 공기에 가방 속에 구겨 넣었던 카디건을 꺼내 입었음에도 결국 영상이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다가 어느새인가 점점 “덥다” 하는 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집 근처 잡화상에서 하얀 선풍기를 하나 구매했는데, 그해 여름에는 몇 번 사용하긴 했지만 줄곧 튼 적은 없었다. 무더운 날의 대비책 정도로 구매했을 뿐, 창문을 열면 여전히 시원했으니까.
그 다음해부터 몇몇 여름밤은 “열대야구나!”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더워서 밤새 선풍기를 틀고 잤다. 밤바람도 예전에 비해 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선풍기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다가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 남편을 위해 이동식 에어컨을 들이기에 이르렀다. 한국처럼 실외기를 설치해 쓰는 시스템이 아닌, 창문으로 뜨거운 공기를 바로 빼내 집안은 서늘하게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전기세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을 쐬며 계절을 보냈다.
당시 그 집은 시내 쪽이고 건물들이 붙어 있어 점점 더워지는 여름을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지금 집은 신축 건물이라 설계할 때부터 건물 전체를 시원한 물이 돌며 온도를 내려주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남편은 이동식 에어컨이 없어도 아주 만족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날씨는 정말 뒤죽박죽이다. 날씨도 일교차도 변화무쌍하달까. 고객들에게 “올해처럼 이렇게 뒤죽박죽인 건 처음이에요!” 하는 말을 달고 살고 있다. 올해는 늦봄 초여름에도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유독 잦았고, 덕분에 다른 해보다 우중 스냅 촬영을 더 많이 했다. 한여름을 기대하며 얇은 옷만 챙겨 오셨던 분들께서 급히 재킷이나 바람막이를 사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이번 주만 해도 33도, 35도를 웃돌던 여름 온도가 하루아침에 21도로 뚝 떨어지기도 한다. 전날은 반팔, 반바지를 입고도 땀을 흘리며 돌아다녔는데 다음날은 도톰한 블레이저를 부랴부랴 꺼내 입어야 할 정도. 유럽의 여름은 원래도 변덕스러웠지만, 날이 가면서 더욱 변덕스러워지고 있다.
슬쩍 환경도, 지구 온난화도 걱정이 된다. 내일 또 무더운 날이 오면 서늘했던 오늘이 그리워지려나.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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