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 비엔나][여행] 가을엔, 비엔나 커피의 추억

2023-10-30

하루 한 잔 비엔나 #9

 


아침에 일어나도 몸이 개운하지 않고 목이 뻐근한 것을 보니 가을이 오긴 왔나 싶다. 유럽에서 살다 보니 – 그리고 슬슬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시기가 가장 힘들다. 갑자기 쌀쌀해져서 그럴까? 따뜻하다 못해 뜨거움이 잔뜩 느껴지던 공기 내음도 달라졌다. 이른 새벽에도 해가 쨍쨍했던 여름이었는데, 지금은 아침에 눈을 떠서 창문 블라인드를 걷어보면 아직도 하늘이 푸르스름하다. 싸늘하고 차가운 내음. 그리고 적당히 찌뿌둥하고 나른한, 쉬이 풀리지 않는 컨디션. 아, 올해도 이렇게 가을이 왔구나.


가을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의 카페


가을이 오면 그렇지 않아도 매일 즐기던 커피를 달고 살게 된다. 집에서는 간편하게 원터치로 다양한 커피를 마시는 게 좋아 두 종류의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머신을 구비해 두고 캡슐도 잔뜩 쟁여두고 산다.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스타벅스 충전 카드 덕에 스타벅스에도 매일 발 도장을 찍는 중이다. 공항 내 스타벅스는 직원 할인까지 되는 탓(?)에 공항에서 한 번, 시내에서 한 번, 두 번이나 찾는다.


비엔나에서 스타벅스? 아주 좋다. 특히 더운 여름날에 스타벅스의 콜드브루는 링거 수준으로 수혈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면 커피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덩이 넣은 커피를 내어주는 비엔나 카페들 아니던가. 유학 초반에는 실수도 여러 번 했다. 난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이 시린 블랙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커다란 컵에 아이스크림과 생크림까지 잔뜩 얹어주는 커피는 마치 파르페 같은 비주얼이었다. 지금도 여름날에 고객들을 만나다 보면 ‘비엔나 아이스커피’의 충격 후기를 종종 듣는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장구를 치게 되는 이야기다.


비엔나 카페의 여름 메뉴들도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다.


블랙커피에 얼음을 따로 추가해 달라고 주문해 본 적도 있다. 그랬더니 고개를 갸우뚱,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니냐는 표정으로 되묻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이는 “얼음 몇 개 줄까?” 하고 물어봐서 반사적으로 “3개……?” 했더니, 뜨거운 커피 속에서 끄트머리만 남아 동동 떠다니던 얼음 세 조각을 발견한 적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철에 직접 만들어 먹게 되는, 비엔나 커피에 얼음 추가


요즘은 일부 비엔나 카페도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만든 차가운 블랙커피를 서비스하는 곳들이 생겼다. 이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지만, 그래도 스타벅스의 콜드브루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얼음이 들어간 차가운 커피를 내놓는 비엔나 카페들이 늘고 있다.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 한 번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비엔나에는 비엔나 소시지가 없고, 비엔나 커피가 없다. ‘Vienna Coffee’ 라는 메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비엔나 커피를 시킨다면 눈치 좋은 웨이터는 멜랑쥐나 아인슈페너를 가져다줄 것이다.


멜랑쥐는 우유 거품을 잔뜩 올린 카푸치노 같은 커피다. 아인슈페너는, 아시다시피 생크림을 블랙커피 위에 올린 커피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카페에서도 아인슈페너를 서비스하는 곳이 많아졌는데, 2019년 한국에 들어가서 마셔본 아인슈페너는 깜짝 놀랄 만큼 달았다. 비엔나에서는 생크림에 단맛이 거의 없다. 우유를 굳힌, 고소한 맛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쓰고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묘미가 있다. 녹아내리는 한국의 휘핑크림과 달리 비엔나 커피의 생크림은 질감 자체가 단단하다. 물론 달콤한 커피도, 쓴 커피도, 모두 옳다. 호로록.


비엔나 카페의 대표적 메뉴 멜랑쥐


비엔나에서의 생활을 카페를 빼고 논할 수 없다. 커피 한 잔 시켜두고 사진 작업도 하고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그 시간이 너무나도 귀하다. 특히 비엔나의 전통적인 카페에서는 느긋함이 필수. 그래서 촬영을 할 때도 2시간 이상 여유가 있는 촬영코스에만 카페 신을 넣고 있다. 


비엔나 카페들


글을 쓰는 지금도 목덜미가 뻐근해지는 게 슬슬 커피 한잔 내려마셔야 할 듯하다. 비엔나에서 마시는 모든 커피가 비엔나 커피라는 말처럼, 나도 비엔나 커피 한잔 내려 마셔야겠다. 냉장고에 얼려둔 얼음을 톡 깨서 넣어 미리 표 비엔나 아이스커피를 만들까? 아니다, 살짝 바람이 부는 날이니, 오늘은 따뜻한 페어랭어터(블랙커피)를 만들어 마셔야겠다. 





글/사진 비엔나의 미리작가(마이네포토 대표)

피아노를 전공했고, 스냅작가로 활동 중이다.
E로 오해받지만 사실 I가 2% 더 많은 INFP. 2006년부터 유럽에서 살았고, 2009년부터 시작한 비엔나 스냅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은 일 벌리기 능력자 워킹맘. 주력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아날로그 느낌의 필름카메라 작업도 즐겨하며, 요즘은 아이패드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다.
현재 마이네포토(MeineFotos)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한 마리의 고양이, 내성적인 연하남, 다소 엄마를 닮아 집중 받기 좋아하는 아들과 살아가는 중이다. 

https://instagram.com/photo_by_miri_vienna
https://blog.naver.com/miri_in_v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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