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독 간호사였던 공순향이 친구 ‘소라’에게 보낸 편지 전문
우연이면서 동시에 필연일지 모르는 관계 속에서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만났다. 1970년대 초 독일로 떠났던 간호사 공순향이 함께 독일로 떠났던 친구 ‘소라’, 나와 이름이 같은 누군가에게 쓴 편지였다. 그 편지는 50년의 세월을 지나 나를 독일로 떠나게 했다.
낯선 땅에 혼자 도착해 수속을 밟는 순간, 나는 독일로 떠난 그녀의 마음을 떠올렸다. 독일로 떠나기 전 포항에서 그녀를 직접 만났을 때 보았던 사진들, 들었던 이야기만으로는 떠올릴 수 없던 감정들이 이방인으로 낯선 땅을 처음 밟을 때 갑자기 생생해졌다.

공순향이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슈바인푸르트에서 찍은 사진
그녀는 프랑크푸르트 근처에 있는 슈바인푸르트Schweinfurt의 시립 병원에서 근무했다. 독일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그녀의 자취를 따라나서기로 했기 때문에 첫날에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그녀가 독일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다고 했던 빵 하나를 샀다.

숙소 앞 풍경과 빵 봉투
아침 일찍 서둘러 다음 숙소로 향했다. 슈바인푸르트에 머물기 위해 예약한 숙소는 오버진Obersinn이라는 곳에 있었다. 지도에서 점심을 먹을 식당을 미리 확인하고 기차에 올랐다.

환승하며 머물렀던 역
아무런 정보 없이 도착한 오버진에 내리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기차역 바로 앞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길 입구 오른쪽에 동상은 나를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오버진역 근처의 묘지와 동상

오버진의 풍경

오버진의 숙소에서 처음 만난 강아지
아주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검색해 둔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았고,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적막함 속에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자판기 아이스크림뿐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벤치에 앉아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았다.
길을 걸으면서 본 차는 그녀의 앨범 속 사진에서 봤던 자동차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런 연관이 없겠지만 나는 그 자동차의 사진을 찍으며 아주 조금 독일에 있었던 그녀에게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버진에서 만난 자동차와 공순향의 앨범 속 사진의 자동차
저녁을 먹을 곳을 찾았다.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빵집과 식당이 있었고 딱히 할 만한 게 없는 이곳에서 30분을 걸어가는 것이 즐거운 일로 여겨졌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동안 여기서 지금 당장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가는 길에 본 풍경들
걸어서 도착한 식당에서 무사히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메뉴판도 없는 식당에서 먹었던 치즈버거가 너무 맛있었다. 공순향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 속에서 만나는 우연한 일들이 나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슈바인푸르트 숙소에서 마지막 날 받은 메시지, ‘sora’ 라는 단어가 반가웠다.
다음날, 슈바인푸르트의 시립 병원에서 근무했던 사진과 마인강 앞에서 찍은 사진들을 따라 다시 기차를 타고 슈바인푸르트로 향했다. 작은 도시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시청광장이었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포항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구글맵으로 슈바인푸르트 시청광장을 보고 반가워하던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에 나는 이곳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
시청광장에 앉아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았다. 앉아있는 동안 종소리가 자주 들렸다. 오버진에서도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독일에 있는 동안 자주 종소리를 들었다. 50년 전에도 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종소리를 녹음했다.
그녀가 있었던 이 자리에 지금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순향의 자취를 밟으며 그녀가 왜 낯선 땅에 왔는지보다는 이 낯선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슈바인푸르트 시청광장
시청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인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었다. 그녀의 사진 속에는 마인강이 자주 등장하는데 슈바인푸르트에 강을 건너는 다리는 하나뿐이었고 나는 여기가 그녀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그곳이라고 확신했다.

마인강 앞에서 노래하는 공순향의 모습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마인강 주변은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걷고 또 걸으며 아무런 지표도 남아있지 않은 곳에서 아마 이쯤이었겠지 생각하며 그녀가 있었을 자리를 찾아 헤매었다.

마인강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
슈바인푸르트를 떠나기 전 병원에 가기로 했다. 시립병원을 찾기 어려웠던 나는 여러 병원을 방문하고 그 흔적을 찾아다녔다. 병원 근처에서 묘하게 비슷한 장소를 찾았을 때는 이 길에 있었던 그녀를 곧 만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변해버린 공간 속에서 같지 않지만 닮은 지표들은 조금씩 천천히 나를 그녀의 시간 속으로 안내했다.

병원 근처의 현재 모습과 공순향의 사진
※ 50년 전 편지를 따라간 여행 - 파독: 소라에게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글/사진 PPS소라(김소라)

음악가, 사진가, 디자이너.
https://www.instagram.com/sora_k.im/
파독 간호사였던 공순향이 친구 ‘소라’에게 보낸 편지 전문
우연이면서 동시에 필연일지 모르는 관계 속에서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만났다. 1970년대 초 독일로 떠났던 간호사 공순향이 함께 독일로 떠났던 친구 ‘소라’, 나와 이름이 같은 누군가에게 쓴 편지였다. 그 편지는 50년의 세월을 지나 나를 독일로 떠나게 했다.
낯선 땅에 혼자 도착해 수속을 밟는 순간, 나는 독일로 떠난 그녀의 마음을 떠올렸다. 독일로 떠나기 전 포항에서 그녀를 직접 만났을 때 보았던 사진들, 들었던 이야기만으로는 떠올릴 수 없던 감정들이 이방인으로 낯선 땅을 처음 밟을 때 갑자기 생생해졌다.
공순향이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슈바인푸르트에서 찍은 사진
그녀는 프랑크푸르트 근처에 있는 슈바인푸르트Schweinfurt의 시립 병원에서 근무했다. 독일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그녀의 자취를 따라나서기로 했기 때문에 첫날에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그녀가 독일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다고 했던 빵 하나를 샀다.
숙소 앞 풍경과 빵 봉투
아침 일찍 서둘러 다음 숙소로 향했다. 슈바인푸르트에 머물기 위해 예약한 숙소는 오버진Obersinn이라는 곳에 있었다. 지도에서 점심을 먹을 식당을 미리 확인하고 기차에 올랐다.
환승하며 머물렀던 역
아무런 정보 없이 도착한 오버진에 내리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기차역 바로 앞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길 입구 오른쪽에 동상은 나를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오버진역 근처의 묘지와 동상
오버진의 풍경
오버진의 숙소에서 처음 만난 강아지
아주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검색해 둔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았고,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적막함 속에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자판기 아이스크림뿐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벤치에 앉아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았다.
길을 걸으면서 본 차는 그녀의 앨범 속 사진에서 봤던 자동차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런 연관이 없겠지만 나는 그 자동차의 사진을 찍으며 아주 조금 독일에 있었던 그녀에게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버진에서 만난 자동차와 공순향의 앨범 속 사진의 자동차
저녁을 먹을 곳을 찾았다.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빵집과 식당이 있었고 딱히 할 만한 게 없는 이곳에서 30분을 걸어가는 것이 즐거운 일로 여겨졌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동안 여기서 지금 당장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가는 길에 본 풍경들
걸어서 도착한 식당에서 무사히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메뉴판도 없는 식당에서 먹었던 치즈버거가 너무 맛있었다. 공순향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 속에서 만나는 우연한 일들이 나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슈바인푸르트 숙소에서 마지막 날 받은 메시지, ‘sora’ 라는 단어가 반가웠다.
다음날, 슈바인푸르트의 시립 병원에서 근무했던 사진과 마인강 앞에서 찍은 사진들을 따라 다시 기차를 타고 슈바인푸르트로 향했다. 작은 도시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시청광장이었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포항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구글맵으로 슈바인푸르트 시청광장을 보고 반가워하던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에 나는 이곳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
시청광장에 앉아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았다. 앉아있는 동안 종소리가 자주 들렸다. 오버진에서도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독일에 있는 동안 자주 종소리를 들었다. 50년 전에도 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종소리를 녹음했다.
그녀가 있었던 이 자리에 지금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순향의 자취를 밟으며 그녀가 왜 낯선 땅에 왔는지보다는 이 낯선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슈바인푸르트 시청광장
시청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인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었다. 그녀의 사진 속에는 마인강이 자주 등장하는데 슈바인푸르트에 강을 건너는 다리는 하나뿐이었고 나는 여기가 그녀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그곳이라고 확신했다.
마인강 앞에서 노래하는 공순향의 모습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마인강 주변은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걷고 또 걸으며 아무런 지표도 남아있지 않은 곳에서 아마 이쯤이었겠지 생각하며 그녀가 있었을 자리를 찾아 헤매었다.
마인강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
슈바인푸르트를 떠나기 전 병원에 가기로 했다. 시립병원을 찾기 어려웠던 나는 여러 병원을 방문하고 그 흔적을 찾아다녔다. 병원 근처에서 묘하게 비슷한 장소를 찾았을 때는 이 길에 있었던 그녀를 곧 만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변해버린 공간 속에서 같지 않지만 닮은 지표들은 조금씩 천천히 나를 그녀의 시간 속으로 안내했다.
병원 근처의 현재 모습과 공순향의 사진
※ 50년 전 편지를 따라간 여행 - 파독: 소라에게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글/사진 PPS소라(김소라)
음악가, 사진가, 디자이너.
https://www.instagram.com/sora_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