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삶으로]나를 살찌게 하는 아! 스페인

여행에서 삶으로 #4



현지 가이드라는 직업은 꽤 고되다. 세상 어느 일이 쉬울 리 있겠냐만, 스페인에 살며 멋진 풍광과 깨끗한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지만, 하루 종일 걸으며 말하는 일은 고될 때가 많다. 가족과 친구들이 염려하는 건 외국이 아니라 바로 그 생활의 고된 변수이다. 일 년에 단 한 번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 휴가도 그렇다. 한국에 도착해 듣는 첫 마디는 “그렇게 힘들다면서 왜 살은 안 빠졌어?” 한국 휴가를 네 번 다녀왔으니 이 이야기도 네 번이나 들은 셈이다.


어느덧 가이드 4년차로서 분명 해가 갈수록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데, 살이 빠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볼 때마다 늘 답은 하나다. 스페인 음식! 내 입에 너무 잘 맞는다. 사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던 이 문제가 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닌 듯하다. 투어 때 만나는 손님 대부분도 다른 어떤 유럽 도시보다 스페인의 음식이 입맛에 잘 맞는다고 말하는걸 보면.


빠따따 브라바스


조금 짜다는 것만 빼면 스페인 음식은 우리 한국인 입맛에 참 잘 맞는다(그래서 스페인에서 요리를 주문할 때 씬 살 뽀르 빠보르Sin sal por favor 즉, ‘소금 빼 주세요.’라는 말은 필수다). 요리에 마늘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 다른 유럽 지역보다 매콤한 요리가 많다는 것. 그게 한국 음식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스페인도 식후경, 먹다 죽은 귀신은 그 빛깔도 곱다했다. 다이어트에 신경 쓰느라 눈앞에 펼쳐진 요리들을 멀리한다는 건 지구 어디에서도 예의가 아니다, 암.


한국 사람의 오감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음식은 무엇보다 ‘빠에야Paella’일 것이다. 일명 스페인식 볶음밥. 생쌀을 불려 조리하며,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 가에 따라 그 종류가 수십 가지에 이른다. 한국인 입맛에 가장 무난한 것은 해산물 빠에야일 테지만 나는 오징어 먹물 빠에야를 가장 추천하고 싶다. 마치 자장밥과 같은 비주얼에 고소함이 일품이다. 식사 후에 상대방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이면 평생 함께 웃거나 굴욕을 당할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다는 건 덤.


해산물 빠에야와 오징어 먹물 빠에야


바르셀로나에 간다면 해산물 요리를 꼭 맛봐야 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신선한 해산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먼저, 문어 요리. 물론 그릴에 구워 먹어도 맛있는 문어지만 스페인에서는 ‘뿔뽀 가예가Pulpo A La Gallega’를 주문해야 한다. 부드럽게 삶은 문어와 찐 감자, 소금, 올리브유, 구운 파프리카 가루의 향연. 문어의 쫄깃함과 감자의 담백함이 어우러진다.


스페인 하면 새우 요리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미 스페인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 신선한 올리브유에 통통한 새우와 마늘, 그리고 매콤한 고추를 넣어 튀기듯이 볶은 대표적인 스페인식 새우 요리다. 마늘에 고추까지 들어갔으니 유럽 여행 중 느끼해진 입맛을 단번에 되살릴만하다. 이외에도 맛조개 구이, 관자 구이, 대구 튀김 등도 꼭 먹어봐야할 해산물 요리다. 


감바스 알 아히요와 조개 요리


사실 스페인에서는 맥주 한 잔에 올리브만 시켜도 행복하다. 저 멀리 알암브라Alhambra 궁전 바라보며 그라나다 산 니콜라스San Nicolas 전망대에서 마셨던 레몬맥주와 올리브는 지금도 있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 정도로 멋진 스페인의 풍경과 마주하고 있다면 다른 음식은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맥주와 찰떡궁합인 요리들을 이야기해 보면,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빠따따 브라바스Patata bravas’ 일명 용감한 감자 요리다. 이름이 흥미로운데 찌거나 튀긴 감자 위에 올라가는 소스가 매콤해서 용감한 사람만 먹을 수 있다고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전혀 맵지 않으니 꼭 한번 맛보길. 식당마다 이 브라바 소스 만드는 방법이 달라 여행 중 각 도시별로 하나씩 맛보아도 재밌을 듯하다.


빠따따 브라바스, 우리에겐 어렵지 않습니다.


스페인식 바게트빵에 다양한 재료들을 올린 ‘몬따디또Montaditos’를 주문해도 좋겠다. 바삭한 빵 위에 요거트를 바르고 생연어와 꿀을 올린 것부터 새우와 캐비어 혹은 해산물 샐러드를 올리는 경우까지 그 종류가 수십여 가지에 이른다.


몬따띠또


이탈리아, 프랑스와 더불어 와인의 나라로 불리는 스페인인만큼 여행 중 와인을 마실 일도 많을 것이다. 이땐 그 어떤 예외 없이 ‘하몽Jamon’을 선택할 것. 사실 한국에 이미 수없이 많이 생긴 스페인 식당에서 웬만한 스페인식 요리는 다 맛볼 수 있다. 맛도 크게 차이나지 않고. 하지만 하몽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에서 먹는 하몽과 현지 스페인에서 먹는 하몽은 맛이 다르다.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시킨 생햄, 하몽은 생김새와 향 때문에 처음 접하는 경우엔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 있지만, 입에 한번 익숙해지면 하몽 때문에라도 스페인 여행을 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고두고 기억나는 음식이다. 특히 도토리를 먹여 키운 흑돼지 하몽, ‘하몽 이베리꼬 베요따Jamon Iberico de Bellota’는 스페인 레드와인과 곁들일 때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몽!


이외에도 4년간 나를 살찌운 스페인 음식은 너무나 많지만 언젠가 스페인 시골 밥상에 오르는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전통 음식에 대한 더 소개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끝으로 음식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겠다.


그리고 맥주와 올리브




글/사진 이진희

2014년 강렬했던 스페인 여행의 마력에 빠져 무대뽀로 스페인에 터를 잡아버린 그녀. 현재는 스페인 현지 가이드로 활동중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lee.jinny_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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