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음 위의 사랑앓이]아이슬란드 남부, 살아있음을 실감하다

불과 얼음 위의 사랑앓이, 아이슬란드 #2



빙하가 만든 풍경들



숨을 크게 들이 쉰다. 숨을 쉴 때마다 온몸이 아이슬란드의 맑은 공기에 반응한다. 내가 살아있다는 실감,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 천혜의 자연을 상속 받은 아이슬란드 사람들. 하지만 화산과 빙하로 둘러싸인 이 땅에서 지금의 생활수준으로 끌어올리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순리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해 보지만, 순리, 순리라…….


겨울엔 보통 남부 지방을 여행한다. 스코가포스는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이다. 62m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가 언뜻 얼어있는 듯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아주 딴판이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폭포의 물줄기는 겨울에도 줄어들지 않아 접근하기 힘들다. 여름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야 제대로 폭포를 감상할 수 있었다.



여름에 찾아 왔을 땐 그저 아름다운 전원으로만 보였던 인근 마을이, 한겨울인 오늘은 좀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해안 절벽의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급격하게 식으면서 생긴 암벽이다. 바닷물에 침식된 해안 절벽은 다양한 형태의 동굴을 만들었다. 오랜 시간 파도가 깎아낸 자연의 조각품인 것이다. 남부의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레이니스피아라'는 레이캬비크의 상징인 하들그림스키르카 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겨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오로라와 얼음동굴인데, 남부여행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즐길 수 있다. 그 중 ‘스비나펠스요쿨’이란 곳에서는 빙하트레킹을 즐길 수 있으며 영화 <인터스텔라>의 얼음행성을 이곳에서 촬영한 이후로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 빙하트래킹 후에는 ‘요쿨살론’으로 이동해 빙하를 근접한 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압축된 유빙 때문에 이곳의 빙하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뎠다고 한다. 시간의 개념이 무색해지는 곳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경외감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뜻밖의 만남, 오로라


남부를 여행하는 동안 날씨가 좋지 않았다. 비가 오는 바람에 얼음동굴은 고사하고 오로라도 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구름이 이렇게 거대한 줄은 몰랐다. 물기를 머금은 까만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있어서 한번 들어가면 그 안에서 길을 잃을 것처럼 보였다. 몇 킬로미터를 운전해도 구름 밑을 벗어나지 못하니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다행히 호픈을 지나면서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동부로 가는 길은 그래도 열려 있어서 동부의 겨울 피오르드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섯 시간 만에 에이일스타디르에 도착했다. 장시간 운전에 지쳐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다가 아래층에서 여행의 감흥에 젖어 떠드는 외국인들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한동안 다시 잠을 못 이루다가 오로라 지수와 날씨예보를 확인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구름이 많이 끼어 오로라는 볼 수 없나 생각한 그 순간, 하늘에 초록색 띠가 생겨났다. 뭔가 싶어 봤더니 한 줄이 더 생겼다. 오로라였다. "덕진아, 오로라야!" 친구를 부르며 카메라를 챙기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느새 동쪽에 한 줄이 더 생겼고, 북쪽에는 연속적인 짧은 줄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구름이 흩어지며 별이 선명한 하늘이 나타나고, 이어, 오로라. 우리는 차를 끌고 어둠이 짙어진 산으로 차를 몰고 갔다. 거기서 기다리면 더 선명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30분 정도를 기다렸지만 오로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구름이 계속 몰려오더니 눈까지 뿌려댔다. 그렇게 짧은 인상만 남은 오로라를 마음속에만 담아 가져와야 했다. "내일 북쪽의 미바튼 호수로 가면 더 선명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야!" 서로 위안하고, 잠시라도 오로라를 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선명한 오로라도 아니었고 결국 사진에도 담지 못했지만 ‘기다리고 노력하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작은 진리는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듯 사람의 인생도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성공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부족해도 노력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것은 아닌지.


사람이 저마다 다른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듯, 그 사람에 어울리는 성공도 저마다 다르지 않을까. ‘돈으로의 성공’에 취해 있는 이들에게 성공의 여신은 너무 바쁜 나머지 이들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없는 모양이다. ‘나만의 성공’. 나만의 성공의 여신을 바라보고자 노력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찾아야 하는 게 더 문제긴 하겠지. 그래도 오직 그것만이 나를 넉넉하고 행복하게 하며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위해 헌신해 줄 거라는 믿는다.





글/사진 라이언(조대현)

54개국, 162개 도시 이상을 여행한 여행 작가.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편에 저서 <아이슬란드 링로드>가 소개되기도 했다. 강의와 여행 컨설팅, 여행 칼럼 기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의 <비지트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다수의 여행 서적을 출간했다. 출판사 '해시태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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