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추럴하게]독일을 넘어 꿈같은 휴가로

본, 내추럴하게 #7



뭐, 큰 기대도 안했지만 역시 독일의 여름은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합니다. 며칠 반짝 덥나싶더니 해가 다시 나올 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안 나오는 해를 기다릴 거 없이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이런 마음으로 2017 여름휴가는 슬로베니아의 해안도시 피란으로 떠났습니다.


자동차로 편도 1100킬로를 운행하는데요, 중간에 오스트리아를 거쳐 슬로베니아로 들어가는 코스입니다.


작년 이태리 서부 여행 때는 중간에 스위스에서 1박을 하고 내려갔는데 이번에는 원샷 다이렉트로 도전!


ⓒGoogle Maps


비교적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가진 독일의 휴가 일정은 역시 아이들 방학기간에 맞춰 시작되는데요, 올해 제가 휴가 떠날 즈음엔 전 독일의 지방(지자체이므로 지방마다 방학 시작이 조금씩 다릅니다)이 방학을 했나 봅니다. 아우토반이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어 차라리 심야에 출발, 정체는 피하고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21시 경 출발, 다음날 새벽에 오스트리아까지 간다는 계획으로 짜 봤습니다만 결과는, 각설하고 피곤해 죽을 뻔했어요.


이런 짓 다시는 안 하리라 다짐해봅니다.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는 각각의 고속도로 통행 증명서를 미리 발급받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일종의 톨게이트 비용이지요.


소풍 전야의 초딩처럼 잠을 설친 상태라 더욱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만의 고통을 잊게 해 주는 게 태어난 아이의 첫 모습이라 하지요. 도착 즈음 보이는 바다의 광경에 그 모든 것이 용서되고 맙니다!



이곳은 대배우 고현정, 조인성을 평범한 조연으로 만들어버린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배경 장소 중 하나인 슬로베니아의 피란(6.25때 피난 아님. Piran)이라는 곳입니다.



아직은 제가 젊은 나이인지 휴가지 선호도가 산보다는 바다예요. 그런데 이곳…, 화면보다 실제가 몇 배 더 아름답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음에도 바로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숙소 체크인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또 시작됩니다. 저의 한량질! 해를 자주 못 보면 결핍된다는 비타민 D를 마구마구 생산해 줍니다. 쏟아지는 태양을 버티려면 맥주는 필수구요. 아, 그런데 이곳 슬로베니아의 맥주…, 진짜 감동적이네요. 이태리 바로 옆인데 클래스가 이태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시원하고 깔끔합니다. 살짝 크림맥주 느낌도 나고요.


이렇게 며칠 보내다 조금 변화를 주고 싶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포스토이나Postojna 동굴을 방문합니다.



별 기대 없이 아내의 추천으로 간 곳이었는데 역시 여행천재 마눌님의 선택은 늘 옳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네요. 입구에서 꼬마기차(?)로 십여 분 내려가면 거기부터 시작입니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일분도 안 되어 여기저기 감탄이 터지네요.



역시 자연이 주는 이 감동은 제가 원래 말주변도 없었지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종유석이 1밀리미터 쌓이는 데 십 년이 걸린다고 가이드가 설명하는데, 그럼 여긴 대체….



주의하실 점은,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서 매우 더운 시절임에도 다들 긴팔 옷이나 점퍼 등을 다들 착용하고 계셨지만, 저같이 사회에 역행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부류들이 혹 있어서 섭씨 9도 정도 가볍게 무시하는 용자들이 계신데요, 그러지 마세요. 제발.


한 시간 반입니다. 한여름에 동사하는 줄 알았답니다.




"여기서도 입수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네요."



꿈같았던 남쪽나라에서의 몇 주를 보내고 다시 집이 있는 북으로 향합니다.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는 당연한 이치이건만 늘 아쉬움이 한가득 남습니다. 마치 군 시절 꿀 같은 휴가 후 시커먼 색깔이 가득한 부대로 복귀하는 마음이랄까요. 마지막 이별주 한 잔으로 아쉬움을 달래기엔 많이 부족하네요.



무엇보다 일조량이 현저히 부족하여 늘 어두운 삶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이곳 슬로베니아의 열기와 태양을 어떻게든 포장해서 가져갈 순 없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자, 이렇게 한 사람이 서서히 정신 줄을 놓아가는 거지요.



그래서!!!!


노래 가사처럼 이 밤의 끝을 잡고…가 아니라 이 휴가의 끝을 잡고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굿Salzkammergut를 들러 가는 것으로 아내와 합의를 봅니다. 세계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어있는 일명 “소금 보물창고” 잘츠캄머굿은 알프스의 산지와 여러 개의 호수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지중해의 작열하는 태양이 열정의 상징이었다면 이곳은 마치 은은한 화롯불 곁에서 외할머니의 나직한 옛날이야기를 듣는 행복함의 상징이라고, 감히 설명해봅니다.



여행 천재이신 마눌님은 이미 경험을 한 곳이지만 전 처음인지라 더 기대감이 컸는데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 전 이 말 안 믿을래요. 큰 기대를 뛰어 넘어버린 이곳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할 말을 잃게 합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절경이고 포토존이 됩니다. 특히 알프스의 무공해 천연설이 녹아 만들어진 에메랄드빛 호수!



전날까지 지중해에서 수영하고 놀았건만 여기서도 입수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네요. 그리하여 유람선을 안타면 그것은 범죄라고 판단, 한 바퀴 돌아줍니다. 물이 너무 맑아 아래 물고기들의 다니는 모습이 제법 멀리서도 육안으로 확인됩니다. 놀라워라!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내의 추천으로 방문한 볼프강제Wofgangsee 작은 시내의 중심에 위치한 ‘카페 베르크슈타트’. 오스트리아의 정취를 한껏 느끼며 즐기는 아침식사와 커피는 지금도 잊히지가 않네요.



늦은 아침 식사 후 정신없이 놀다보니 금세 저녁이 되네요. 노는 건 왜 이리 빨리 시간이 가는지. 이쯤 되니 슬슬 또 피가 부릅니다. 누구를? 알코올이지요. 다른 동네 왔으면 그 동네에서 로컬 맥주를 영접해 봐야 하는 겁니다. 기대감 가득, 애타게 불러봅니다.


에델바이스 한 잔이요!!



전 밀주(몰래 만든 술이란 의미 아님. 밀로 만든 술!)애호가이므로 바이쩬 비어를 일단 선택합니다. 음, 가벼운 느낌의 맥주네요. 완전 갈증 날 때 벌컥 한 모금하면 해갈 능력이 뛰어나겠어요. 거기다가 당도도 다른 맥주들에 비해 더 있는 편이라 여성 드링커 분들도 좋아하실 거라 사료됩니다.


자…, 날은 어두워가고 시원한 알프스의 바람자락은 낮에 익어버렸던 얼굴을 식혀주고 온통 주황 불빛의 아름다운 마을이 눈을 호강시켜주는 동시에 저처럼 행복이 얼굴에 가득 묻어나는 많은 사람들, 거기다 맥주 한잔 마셨겠다, 네, 맞습니다. 취한 거죠.



여름휴가는 무조건 뜨거운 바다야!! 하고 신념처럼 갖고 있던 제 생각을 180도 바꿔준 잘츠캄머굿. 이곳에서 꼭 열흘 이상 휴가를 보내보겠다 다짐을 꼭꼭 해보며 이제 독일 국경을 넘습니다.


휴가의 끝자락은 뉘른베르크. 근데 역시! 일관성 정말 확실한 독일은 저희를 격하게 환영해주네요. 어떻게 국경 넘자마자 이렇게…. 네, 잊고 있었어요. 정녕 아메바 뇌를 갖고 있는지. 고작 몇 주였는데 말입니다. 알려줘서 고마왔습니다.





글/사진(3-19) 프리드리히 융

2003년 독일유학 중 우연히 독일 회사에 취직하여 현재까지 구 서독의 수도(현재 독일의 행정수도)인 본에 거주중인 해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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