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로부터]카시네 공원의 벼룩시장과 포장마차

피렌체로부터 #3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보다 더 나를 자극한 건 우리 집 정원의 이름 모를 새들이다. 깊은 숲속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아침식사를 하는 모양이다. 이른 아침이면 여지없이 정원으로 날아와 들쑥날쑥 정돈되지 않은 풀숲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사실 노래라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지만, 곤한 잠이 필요한 내 소중한 새벽 시간에는 새소리가 쇳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몇 달째 가꾸지 않은 정원은 각종 벌레가 가득하여 새들에겐 천국 같은 먹이창고일 것이다. 평소라면 살짝 열린 창문을 굳게 닫고 다시 잠을 청하겠지만, 오늘은 활짝 문을 열고 새소리를 들으며 나갈 준비를 한다. 일주일에 화요일 단 하루,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열리는 카시네 공원 벼룩시장에 가기 위해서다.



카시네 공원Parco del cascine은 집 앞에서 2차선 도로만 넘어가면 입구가 나올 정도로 가까이에 있다. 엄청난 부로 피렌체를 쥐락펴락했던 메디치 가문이 1434년부터 약 100년 동안 농사와 사냥의 터로 사용했던 곳이다. 피렌체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160헥타르의 면적을 자랑한다. 160헥타르라면 48만 4천 평인데, 도저히 어느 정도 넓이인지 가늠이 안 된다. 한번 비교를 해 보자면,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한 샴페인 제조 회사는 4천 개의 포도농원을 갖고 있는데 그 면적이 160헥타르라고 한다. 또, 중국 허페이合肥 시에는 같은 규모의 테마파크가 있는데, 여기에는 무려 5조 원이 투자됐다고 한다.


공원 내에는 축구장, 테니스장, 수영장, 경마장 등 스포츠 여가시설이 있다. 그래서 매일 조깅하는 사람들, 자전거나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피렌체의 축제가 가장 많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주말이 되면 피렌체 시민들은 대개 집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끼리 도심을 거닐거나 도시를 빠져나간다. 외식을 하기도 하고, 가까운 교외로 나가 트레킹을 하거나 캠핑을 하기도 한다. 그마저도 귀찮은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서 나무와 놀 거리가 풍부한 공원을 찾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카시네 공원이인 것이다.



화요일 오전. 새벽같이 서둘러야 동네 주민들과의 경쟁에서 좋은 물건을 차지할 수 있는 ‘득템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오전 9시, 벌서부터 시장골목은 인산인해다. 화물차에 가득 실린 가죽가방들부터 천막 아래 빛을 피해 다양한 색 바구니에 담긴 액세서리들, 말도 안 되게 저렴하게 내놓은 생필품들, 스페인산 심플한 그릇들과 독일제 냄비까지. 새 물건들과 누군가의 손을 거쳐 갈고 닦아진 골동품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제법 긴 시장 길을 다 둘러보면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수많은 탐나는 물건들이 있어도 결국엔 당장 필요한 한 가지를 사야 낭비가 없지. 그렇다고 꼭 필요한 물건도 없지만 스페인산 접시가 시장 초입에서부터 눈에 띄더니 결국 시장 한 바퀴를 돌아 어느새 그 그릇 앞에 서 있다. 같은 모양의 접시 여덟 개에 여덟 종류의 음식을 담아 모아 놓으면 팔각형 모양이 된다. 꽤나 활용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격 흥정에 들어갔다. 10유로, 5유로를 앞다투다 결국 20유로의 합의점에 도달했다.


햇살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가격흥정에 힘을 모두 쏟아내고서야 벌써 점심때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도 걸렀는데. 시장에 가면 뭐니뭐니해도 시장음식이지. 곰보처럼 울퉁불퉁한 외모에 겉이 딱딱하고 누룽지 맛이 나는 빵을 반으로 잘라 그 속에 피렌체 전통음식인 소내장을 잘게 다져 올리브오일과 향신료를 넣고 요리해서 제법 메운 고추양념소스를 곁들인 일명 곱창버거를 오늘의 아점으로 정했다. 입천장이 다 헐 것 같은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빵 표면이 낯설고 당황스럽지만 버거 맛은 더 당황스럽다. 그래서인지 버거 하나를 먹는 시간이 보통 식사처럼 꽤나 걸린다. 도저히 대충 씹어 넘길 수가 없다. 딱딱하지만 매력적인 맛의 빵 때문이다. 한참을 씹어야 고소함에 다다른다. 곱창의 느끼함은 맥주 한 모금으로 넘길 수 있는 정도다.



공원벤치에 앉아 식사를 하고 한참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듯 눈을 돌렸다. 버거에서 떨어진 빵부스러기로 평화의 상징들에게 한 끼를 제공해 준 흐뭇함이 느껴지며 실없이 웃음이 나온다. 주말이면 이렇게 큰 공원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지만 평일에는 한가하다 못해 평화롭기까지 하다. 하늘은 파랗게 물들어 한없이 높고 그보다 위에 태양은 세상의 습함을 말리고 소독하듯 따갑지만 나쁘지 않다.


평일 한가로이 하늘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주말에도 일부러 카시네공원을 찾는다. 주말 이틀 동안에는 안티크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새 물건을 갖고 나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고 물려받은 옛 찻잔들, 백설공주가 보며 매일같이 누가 이쁘냐며 물었을 법한 화려하지만 오래된 듯한 거울,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썼을 법한 손가방 같은 희귀제품들을 구경하기에 좋은 날이다. 물론 내가 살만한 것들은 하나도 없다. 짐을 늘리지 않는 것이 제 1법칙이니까. 어딘가로 항상 떠날 준비를 하는 우리는 미니멀리즘을 선호하는 부부이기에 인테리어는 사치.


공원 초입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바로 보이는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꼭 포장마차를 닮았다. 문을 여는 건 주인 마음. 추운 날씨에는 문을 닫고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주인이 생각했을 때 따뜻해야 문이 열리고, 손님은 날이 좋기를 기다려야 한다. 햇살 좋고 봄바람 적절한 날, 오늘 오랜만에 포장마차가 문을 열었다. 노을이 지기 전 아직은 따뜻한 태양의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와서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 앉는다. 야외로 펼쳐진 8개 정도의 테이블과 의자들은 밤 시간에 인기가 많기에 서두르는 것이 좋다. 해가 지고 나면 인종 무관, 동네 주민들이 하나 둘씩 이곳으로 모여든다. 맥주 큰 병이 3병 세트로 10유로, 유럽의 그 흔한 자리 값도 없고 심지어 포장마차 안에 작은 화장실도 있어 쉼터가 따로 없다.





글/사진 Stella Kim

글쓴이 Stella Kim은 짧은 여행이 아쉬워 낯선 도시에 닿으면 3개월 이상 살아보고자 했다. 호주를 시작으로 필리핀,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태국에 머물렀다. 다시 이탈리아에 돌아와 4년째 피렌체에서 거주하며 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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