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로부터]결국은 다시 침대로

피렌체로부터 #5



혹독한 감기몸살 기운 때문에 내가 사는 이곳이 한국인지 천국인지 이탈리아인지 모르게 며칠간 침대에서 지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날들을 보내고 맑은 공기가 필요할 때쯤 일을 나갔다.


맑은 하늘만큼이나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일 신혼부부 한 커플, 감기 바이러스도 날려버릴 것 같은 미소를 가진 그들과 버스에 올랐다. 피렌체 한 바퀴 신나게 돌아야겠다. 이탈리아 대부분의 도시가 땅속에 유적을 품고 있다. 피렌체가 지하철이 없는 이유다. 피렌체 시내 중심은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작은 도로들이 대부분이다. 건물들이 모두 유적이기 때문에 길을 넓히자고 쉽사리 건물을 부수거나 할 수 없다. 버스 오른편 뒷좌석에 커플 손님이 앉아 있고, 그 뒤에 자리를 잡은 나는 열심히 피렌체 자랑을 읊고 있었다. 우리 버스도 작은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슬아슬 공사 중인 건물을 지나가고 있을 때 건물 외벽에 설치된 비계 파이프가 우리가 앉아있는 바로 옆 유리창과 세게 부딪혔다. 순간 쩌억 소리가 났고 와장창 유리 파편들이 쏟아지며 우리를 덮쳤다. 유리 조각이 커플의 옷과 얼굴에 박혔고, 우리 셋 다 피가 나고 있었다.



곧바로 버스는 좀 더 넓은 도로에 주차했다. 금세 구급차가 도착했다. 여자 손님은 앰뷸런스 침대에 눕혀졌고 남자 손님은 앞 좌석, 난 신부님 옆 보호자 석에 앉았다. 우리는 외투를 모두 벗어야 했는데, 제일 피해가 큰 여자 손님은 바지까지 벗어 앰뷸런스에 미리 준비돼 있던 비닐 바지로 갈아입었다. 앰뷸런스 직원들은 우리에게 몇 번씩 신분을 물었고, 어디가 불편한지 계속해서 살피며 피렌체 산타 마리아 누오바Santa Maria Nuova 중앙병원으로 향했다.


곡소리 안 내주는 커플이 감사하기만 했다. 낯선 나라에 와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오직 서로밖에 없는 커플, 적지 않게 놀랐을, 인생 한 번밖에 없을 신혼여행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그들은 응급차에 실려 가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거주민들이 세금을 내고 의료혜택을 받고 있다. 나 역시 학생 신분이었을 때는 일 년에 약 150유로의 의료보험료를 내야 했다. 그리고 집 주위에 있는 의사 한 명을 정하고 의료보험 카드를 신청한다. 그러고 나면 일 년 동안 여러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반면 현재 비즈니스 비자로 머무는 난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고 의료 혜택 대부분을 무료로 받는다. 대신 연금과 소득에 대한 많은 세금을 국가에 내야만 한다.


만약 내가 감기에 걸렸다거나 임신을 하거나 피부가 상해도 내가 정한 의사와 약속을 잡고 먼저 만나서 얘기를 나눠야 한다. 증상에 맞게 소변검사, 피검사, 초음파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병원을 지정해 주고 빨간 종이에 검사 항목을 적어준다. 그러면 그 종이를 들고 정해진 병원을 찾아 검사를 마치고, 그 결과물을 들고 다시 내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주치의 같은 역할이긴 한데 내 병을 고쳐 주진 못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가정의사라고 말한다. 매번 전화로 의사의 스케줄에 맞춰 약속을 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의 빨간 종이는 무료 진료의 혜택을 준다. 하지만 이마저도 귀찮고 급한 사람들은 도심 곳곳에 있는 개인 의사를 찾아간다. 그 역시 전화로 미리 약속을 잡고 많은 진료비를 지출해야 하지만 좀 더 빠른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누오바 병원에서는 딱히 손을 쓸 수 없단다. 신발이며 양말까지 모두 유리 조각들이 박혀있었다. 커플이 그 순간 원하는 건 제발 코트에 박힌 유리 조각들을 좀 털어줬으면 하는 거였는데, 그런 일은 병원에서 할 일이 아니었다. 몇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약 40분간 우리를 붙잡고 있었고, 신랑 쪽에서 한쪽 눈에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 즉시 바빠진 의료진이 눈 전문의가 있는 피렌체 외곽 카레지careggi 병원으로 서둘러 우리를 보냈다. 앰뷸런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왜 시내에서 가장 큰 중앙 병원에서 눈 검사를 못 하는 걸까…….


피렌체 시내에서 버스로 40분 거리에 있는 카레지 병원에 15분 만에 도착했다. 곧바로 안과 병동으로 인도됐고, 우리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었던 앰뷸런스 의료진들도 자리를 떴다. 사고가 일어난 지 약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제야 우린 안과 병동 대기실에 앉아 안정을 취했다. 코트에 붙은 유리조각들을 털어내고 망친 하루를 되새겼다.


접수하고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1시간이 일 년처럼 느껴질 때쯤, 커플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체계적으로 조금이라도 불편한 부분을 다 살펴보고 건강하게 귀가하기를 바라는 내 생각과는 반대였다.


“우리 언제까지 있어야 해요? 인제 그만 하고 쇼핑하러 가고 싶어요.”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사고가 난 지 3시간이 다 되어간다. 배도 고팠을 테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르네상스 도시 피렌체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특히 쇼핑은 그들이 피렌체에 온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병원에서의 기다림이 익숙해져 버린 나와는 당연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는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아파서 응급실을 찾아도, 중앙병원을 내원해도 하루를 다 보낸다고 생각하고 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가장 위급한 환자가 제일 먼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 환자들의 치료를 함께 기다리고 나서야 내 차례가 온다.


자판기에서 뽑은 초코바로 허기를 달래며 기다림을 견뎌낼 때쯤 이름이 불렸고, 드디어 눈 검사를 하러 들어갔다. 이름이 불린 그 순간부터 검진 후 결과를 들을 때까지 아마도 1시간쯤 더 흐른 것 같다. 역시나 신랑의 눈에 작은 유리 조각이 스쳐 상처가 났고 약물치료가 필요했다. 모든 진료를 다 마치고 난 뒤 병원을 나서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다. 물론 병원비는 1원도 내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갈 경우, 웬만해서는 병원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는 버스 사고의 피해자가 아닌가. 어쩌면 이탈리아 내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유난히 많이 울리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 몸으로 정말 쇼핑을 하러 갔을까? 나는 감기에서 떨치고 일어난 지 하루 만에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글/사진(2-5) Stella Kim

짧은 여행이 아쉬워 낯선 도시에 닿으면 3개월 이상 살아보고자 했다. 호주를 시작으로 필리핀,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태국에 머물렀다. 다시 이탈리아에 돌아와 4년째 피렌체에서 거주하며 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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