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피렌체를 걷고 있다 #3



페르난다 할머니의 요리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샐러드였다. 한 가지 채소 잎에 레몬 반 개 만큼의 즙을 뿌리고 그 위에 소금을 살짝 친다. 그리고 토스카나 지방에서 자란 올리브에서 짜낸 오일을 둘러 마무리한다. 그게 페르난다 할머니 식 샐러드의 전부였다. (비단 올리브뿐만 아니라 키안티, 몬테풀치아노 와인 등 토스카나 지방에서 생산한 그 모든 것이 평생 피렌체에서 산 할머니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이었다.) 요리라 부르기엔 너무 간단한 레시피지만 맛은 고급 레스토랑 샐러드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 그 한 가지 채소가 루꼴라였을 땐 더더욱.



이탈리아 요리의 기본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채소 잎과 레몬즙, 소금과 올리브 오일만 들어간 샐러드가 그토록 매력적일 수 있었을까? 사실 내가 유럽으로 요리 유학을 떠났던 건 프랑스 퀴진 식의 화려한 요리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하필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택한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결정이었다. 피렌체의 요리 학교는 기본적으로 가정식에 충실하길 요구했다. 아니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크리에이티브한 걸 요구하거나. 처음엔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지만, 조금씩 이탈리아 요리를 배워나가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이탈리아 요리에 쓰이는 재료의 풍부함, 멋 부리지 않는 소박함, 그리고 무엇보다 진솔함에 빠져들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요리가 바로 이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진짜 이탈리아 요리 교습소는 학교가 아니라 페르난다 할머니의 주방과 투박한 동네 레스토랑이었다. 이들 레시피의 중요한 카테고리 중 하나가 단순한 진가였다. 내가 멋대로 붙인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이 좋았다. 단순한 진가. 어쩌면 나는 요리를 통해서 삶의 방식까지 배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얼마간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고, 또 그렇게 살아지는 것도 같았다.




"나는 단순함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가을 하늘 청명하던 어느 날, 차에 갓 백일 된 아이를 태우고 남편 회사 근처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차도 양옆으로 색색이 물든 나뭇잎을 바라보며 나는 정말 모처럼 계절의 정취에 취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지금 이 시간을, 현재 갖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왔는지. 나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30년 가까이 늘 그리고 바라오던 그림이 이제 완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 동안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온종일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주문을 걸어 보았지만, 결국은 제자리,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어디쯤 있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답답하고 막막했다. 어째서? 왜?


육아는, 지금껏 잘해 왔다고, 열심히 나답게 잘 살아왔다고 굳건하던 믿음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다들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던 ‘육아헬’이라는 걸 나 또한 겪으며 얼마나 힘들면 지옥이란 말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공감을 하고 말았다. 혼자 집안에 남아 아이를 돌보고 있으면 때때로 깊은 수렁 혹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이 돌보기가 힘들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더없이 완벽한 외조를 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내 자신, 내 인생, 내가 사랑하는 일에서 성공과 만족을 누리고 싶었다. 나는 정말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 모두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하게 오늘을 살고 있는 요즘. 육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라는 한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들이 나를 단순한 진가라는 레시피에서 한참을 떨어트려 놓았다. 게다가 아직 사회로 복귀하지 못한 처지에, 이런 고민도 사치다 싶을 만큼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는 단순함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늦은 오후까지 한 끼도 허락하지 않던 아이가 마침내 보챔을 멈추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엄마를 알아보고 나름의 애정을 표현할 줄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나는 커튼을 치고 베란다 창문을 내려다보았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가을이 찾아와 있었다. 마침 연어를 굽기 위해 마트에서 사다 놓은 레몬이 떠올랐고, 냉장고에는 채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남편이 무심결에 장바구니에 담아 온 모둠 쌈채소 한 팩이 있었다. 언제 아이가 깰지 모르는 이 짧은 순간, 페르난다 할머니 샐러드의 간소한 레시피가 진가를 발휘할 차례였다. 채소, 레몬, 소금과 올리브 오일. 만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내 식대로 해석한 할머니의 레시피를 맛보며 - 나는 발사믹 소스도 둘렀다 - 현재 가지지 못한 것만을 바라며 사는 내게 가장 절실한 하나, 단순한 진가를 곱씹고 있었다.





글 마르가레타

꽃이 좋고 요리가 좋다. 식탁 위에 뭔가를 올려놓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다이닝 잡지 ‘바앤다이닝’에서 마케터로 근무했고, inspired by jojo에서 플로리스트로도 일했다. 요즘은 가야할 곳이 많기 때문에 거기서 꼭 가고 싶은 곳을 고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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