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음 위의 사랑앓이]아이슬란드 겨울 여행의 진수, 북부 지방

불과 얼음 위의 사랑앓이, 아이슬란드 #3



아이슬란드 겨울 여행의 진수, 북부 지방


많은 여행자들이 겨울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동부와 북부를 제외하곤 한다.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눈이 많이 올 경우 동부와 북부의 도로들이 폐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슬란드 대자연의 겨울을 볼 수 있는 동부와 북부 여행을 굳이 뺄 이유는 없다. 매일 몇 번씩 제설작업을 펼치기 때문에 조심해서 운전한다면 데티포스를 제외하고는 충분히 차로 접근이 가능하다.


일찍 눈을 떠 오전 8시부터 에이일스타디르를 향해 출발했다. 혹시나 가는 길에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광활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러나 북부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환상적이었다. 눈 덮인 길은 의외로 미끄럽지 않았고, 속도를 줄여 천천히, 집중을 해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오히려 차가 한 대도 없어서 우리만 길 위에 덩그러니 있는 느낌이 묘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쓸쓸하기도 했으나 10시가 넘어가면서 눈 위로 햇볕이 쏟아졌고, 하얀 도화지 같은 눈밭 위를 최초로 탐험하는 듯한 기분에 결국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우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세계에서 우리만 서 있는 이 감정, 그것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다. 차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차가운 공기에 코가 바로 반응했다. 온몸이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로 채워지면서 몸이 새롭게 탄생하는 기분이랄까?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보면 온통 하얀 눈밭이었다. 카메라도 초점을 잡는 데 실패하기 일쑤였고, 스마트폰의 파노라마 모드도 이동선을 잡지 못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우스울 만큼 새하얀 공간이었다. 지구상에 이런 공간이 또 있을까? 극지방에라도 가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인터스텔라>의 얼음행성(실제로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하기도 했지만)을 탐험하는 기분이었다. 나와 친구는 평소 그런 성격도 아닌데 잔뜩 들떠, 동심이 되살아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떠들며 주변을 뛰어다녔다. 우리가 눈처럼 순수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상상초월 데티포스 로드


문제는 862번 도로를 통해 데티포스로 향하는 와중에 발생했다. 우리 앞에 딱 한 대의 차만 지나갔는지 도로 표시도 보이지 않는 하얀 길은 이것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주변과 분간하기 어려웠다. 도로 양쪽에 표시 봉 같은 것만 보일 뿐이었다. 도로에 쌓인 눈이 차량 밑을 긁으면서 차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친구는 계속 데티포스를 꼭 가야하는 건지 물었지만, 나는 모른다는 답만 계속 했다. 그러나 돌아갈 수도 없었다. 돌릴 만한 길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차가 멈추는 순간 눈밭에 갇혀버릴 것 같아서였다. 한참을 느린 속도로 가고 있는데 앞에 차 한 대가 보였다. 반가운 그 차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 차는 바퀴가 아주 큰 오프로드 차량이었다. 우리가 길을 내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친구와 “어떻게 하지?”란 말만 반복하는 중에 그 차는 우리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차선을 벗어나 말 그대로 ‘오프로드’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위용에 기겁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주차장 표지판이 나타났다. 눈이 이렇게 쌓여 데티포스를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다만 차라도 되돌릴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차장에는 바퀴가 큰 오프로드 차량이 3대나 더 있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캐나다 구스’가 찍힌 방한복에 신발에는 아이젠을 차고 등산 스틱까지 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놀란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이 눈난리에 일반 차량으로 데티포스까지 올 생각을 했냐는 눈빛이었다.


그들은 눈밭을 헤치고 데티포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친구는 돌아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래도 한 번 가보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앞선 팀들을 따라가면 쉽게 갈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장갑도 없이 그들을 따라 걷는 북부의 날씨는 예상보다 훨씬 매서웠다. 주위에 바람을 막아줄 장벽 같은 게 아무 것도 없었기에 찬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얼굴은 새빨개졌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렸다. 손은 동상에 걸린 듯이 얼얼했다. 1km 남짓 걸었을까. 선봉대가 자리에서 멈추더니 카메라를 꺼내기 시작했다. 데티포스라는 것을 직감하고 더욱 힘을 냈다.



하얀 눈을 뚫고 보이는 것은, 힘차게 아래로 물줄기가 뿜어지고 있는 폭포 데티포스. 사실 아이슬란드 여행자 사이에선 이런 이야기가 있다. “데티포스는 (우리가 지나온) 862번 도로에서 보면 웅장함이 덜하기 때문에 반대쪽 864번 도로로 들어가서 봐야 한다”고. 하지만 겨울 데티포스는 나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862번 도로에서 더욱 웅장하고 멋있었다. 데티포스는 편견이 여행의 장애가 된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그걸 알려주기 위해 나를 힘들게 여기로 데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오늘도 자연에게 크게 배운 셈이었다.





글/사진 라이언(조대현)

54개국, 162개 도시 이상을 여행한 여행 작가.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편에 저서 <아이슬란드 링로드>가 소개되기도 했다. 강의와 여행 컨설팅, 여행 칼럼 기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의 <비지트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다수의 여행 서적을 출간했다. 출판사 '해시태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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