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밥상][닭꼬치] 외로움 만발한 계절의 공원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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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청공원 2025년 가을


한 사내가 삼청공원에 들어섭니다. 인사동, 안국동, 삼청동을 지나 북악으로 향하는 2차선 도로 옆 산책로 끄트머리. 오래전 차운기라는 건축가가 지은, 팀 버튼의 영화 한 장면인가 싶었던 재즈 스토리가 헐린 자리에 엉성하게 자리 잡은 유리 건물을 마지막으로 북적이던 사람들 다 어디 갔나 완연히 홀가분해집니다. 어쩐지 이끼 향 섞인 안개에 뒤덮인 듯한 산책로를 따라 계곡 물소리 흐릿하게 들리는 벤치를 골라 앉아 머리 위를 덮고 있는 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서울에서 제일 외로운 공원으로 서울에서 제일 외로운 사나이가 왔다. 외롭다는 게 뭐 나쁠 것도 없다고 되뇌이면서…… 이맘때쯤이 그곳 벚나무를 만발하게 하는 까닭을 사나이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벚꽃 밑 벤치에서 만산을 보듯이 겨우 의젓해지는 것이다. 쓸쓸함이여, 아니라면 외로움이여, 너에게도 가끔은 이와 같은 빛 비치는 마음의 계절은 있다고, 그렇게 노래할 때도 있다고, 말 전해다고.’  

- 천상병, <삼청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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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공원 2025년 봄


왜 이맘때 벚꽃이 만발한 걸까? 꽃 안에는 먼저 간 아버지가 있고, 요절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어머니, 어디로 가신 걸까? 사내는 그제야 ‘겨우’ 의젓해지는 걸 느낍니다. 쓸쓸함도 외로움도 사라져 가는 나이, 신이 날 일 없는 목숨이라도 가끔은 벚꽃 아래 앉아 노래하는 계절이 있습니다. 공원을 나선 사내는 만장도 없는 초라한 죽음을 위해 시를 쓰기로 합니다. 


서울에서 가장 외로웠던 사나이를 기억하며 꽃잎도, 단풍도 없는 앙상한 계절 한복판 앉아 잠시 추위를 버텨봅니다. 언젠가 빛 비치는 계절이 다녀갈지도 모른다며. 공예박물관 지나 정독도서관, 삼청 파출소를 지날 때까지 인사동의 발길이 다복다복 이어집니다. 소란 없이 북적이는 이 설레는 행렬도 삼청동 수제비집을 지나면 영 스산해지고 맙니다. 


서울에서 제일 외로운 공원에 들어설 땐 제법 외로운 마음이 됩니다. 공원 한가운데 앉아 놀이터를 건너다보면 겨우 쥐고 있던 의젓함을 놓아버리고 맙니다. 저 출렁이는 그물에 매달며 아무 이유 없이 진지한 아이들 놀이에 빠져 보고 싶습니다. 의젓함을 놓아버리고 바지에 오물을 지리며 아이처럼 살다 가버린 시인 천상병. 명석함, 의젓함 다 짧은 한 철의 이야기입니다. 빛 비치던 시절은 더께 같은 세월 먼지에 다 가려지고, 그는 서울과 경기 경계, 수락산 산자락에서 죽었습니다. 살아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다고, 소풍은 끝났다고, 새 한 마리 울다 사라졌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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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공원 2026년 겨울, 1년에 한 번 태어나는 이 아이의 이름은 '삼청동자'입니다.


외로운 게 나쁠 것도 없다면서 일어나 목적 없이 바지를 털고, 아주 오랜 여름 한 시절 이곳에 있었다는 수영장을 생각합니다. 떠들썩하고, 무모하고, 더러는 수줍고 조심스런 모든 한 시절 생명들이 모이던 곳. 1920년대 서울 남촌에는 남산공원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 장충단공원이 있고, 용산에는 효창공원, 서쪽에는 사직단 공원, 종로 한가운데에는 파고다 공원이 있고, 창경궁은 동물원이 되었습니다. 경성부는 경성 북부에 공원이 부족하다며 삼청 계곡에 공원을 만들기로 합니다. 1928년 8월 삼청동 일대 10만 평이 북부공원으로 지정되자, 팔판동, 삼청동 주민 15명이 모여 경성부에 수영장을 지어 달라는 청원을 넣습니다. 길이 50m, 폭 13m, 최대 수심 180cm, 이 수영장 이름은 베이비 풀입니다.  


이 한적한 동네에는 원래 점집이 많았고, 얼굴 붉힌 남녀가 눈이 드문 장소를 찾아 서성였다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바라보는 풍경이 있는 공원. 서울도성 산행을 나온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주민들, 놀이터 아이들, 슬렁슬렁 운동기구를 오락가락하는 사람들, 모두가 격정 없이 하루를 보내는 듯 보입니다. 


이 작고 오묘한 숲을 나오며 혁명 없이 반혁명의 피해자가 되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인생, 그렇더라도 살 만한 인생을 살다 간 천상병 시인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혁명을 시기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외롭게 살다간 한 정치가의 장례식이 열렸던 시청광장의 만장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만장이 서울역으로 떠나던 시간 나는 천상병이 누비던 인사동 술집 몇 곳을 옮겨 다녔지요. 그러다가 광주에서 왔다던 어느 대학 교수에게 술 한 잔을 얻어 마시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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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닭꼬치 집, 다사리아


공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또 습관처럼 꼬치 가게에 들러 간장 양념 닭꼬치 하나, 소금 양념 닭꼬치 하나를 주문하고, 고기가 구워지는 시간이 쓸쓸해지지 않게 맥주 한 잔을 마십니다. 더 마실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세 잔 정도가 적당합니다. 그쯤이면 배가 불러 호기롭게 고기 한두 덩이를 남기고 올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러고는 쓸쓸할 틈 없는 위장을 끌어안고 경복궁 담장을 따라 집으로 갑니다. 이 꼬치집의 이름은 다사리아입니다. 다시 생각해도 삼청공원의 쓸쓸함은 생맥주 한두 잔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글 · 사진 |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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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 등을  쓰며 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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