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밥상][구포국수] 국수 한 그릇 먹겠다고 기차를 타고서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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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류, 구법포, 구복포라 불리다 가운데 글자를 빼고 구포가 된 나룻터 마을. 삼한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낙동강 강줄기를 따라 김해, 밀양, 경상 내륙으로 들어가는 배가 물자를 싣고 내리던 곳. 조선시대에는 합천 율지 밤마리, 상주 낙동진과 함께 낙동강 3대 나루터라 불리기도 했고, 동래에서 양산으로, 부산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는 내내 낙동강 물류와 장터로 사람을 모았던 구포. 구포에 변화가 오게 된 건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놓이고부터입니다. 포구 경기야 쇠락할 수밖에 없었지만, 영남의 물자를 기차로 서울까지 보내는 물류 기지가 되었고, 특히 인근에서 생성되는 소금이 전국으로 퍼지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구포가 어떤 지역이든 구포하면 떠오르는 건 구포국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수라는 게 한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게 참 의아하지요. 잔치국수 같이 지역성 없는 음식이 한 지역을 대표한다, 그건 반대로 그 지역에서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나주의 하얀집, 노안집처럼 나주곰탕은 나주에서만 먹어야 한다는 걸 머리 띵하게 각인시켜 주는 집이라면, 장충동 평안도족발집처럼 세상 모든 족발이 시시해지는 경험을 하게 하는 집이라면 전철이든 기차든 타야지요. 그래도 걱정이긴 합니다. 보통 불을 막으라는 의미로 건물 앞에 해치상을 세워뒀습니다. 그런데 해치를 서울시의 대표 이미지로 내세우면 어떻게 될까요. 서울에는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어서 보편을 독점적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요. 역사 도시를 표방하는 상징물이 몰역사성을 전면적으로 광고하는 아이러니가 만들어지지요. 음식도 그렇습니다. 그 동네 뭐가 가장 맛있어, 하고 물었는데, 삼겹살, 김밥, 떡볶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면, 참 외식거리가 빈한한 동네구나, 난감해집니다.  


이게 머릿속으로만 굴리는 염려병 같은 게 아닙니다. 택시를 타고 동네에서 가장 괜찮은 술집에 내려달라 했더니 기차역 할매 맥주 집에서 내려주거나, 가장 좋아하시는 집 추천해 달라했더니 치킨 두 마리를 튀겨 주는 집에 내려주거나, 제주도에서 돈까스 집에 가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거나 하며 생겨난 설렘 회로 차단 굳은살 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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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구포에 가면 국수를 먹으라는 게 아니라 구포국수가 하나의 상표, 브랜드, 고유명사가 되어 있다는 건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국수의 특별한 장르가 되었으니 기차를 탈 용기를 내 볼 만한 거지요. 구포국수에는 구포가 물류 거점이었다는 지역성이 개입합니다. 1950년대 이후 원조 밀이 부산항으로 들어오며 1956년 남선곡산주식회사, 영남제분 두 회사가 구포 지역에 설립되었고, 이어 국수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부터 구포 시장에는 국수를 말리는 광경이 진풍경으로 자리 잡는데, 이 국수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팔려 나가면서 구포국수가 잔치국수라는 이름을 대체해 버립니다.  


밀가루 국수는 그야말로 잔치 때나 되어야 먹는 잔치국수, 상류층이 의례, 제사 때 먹던 음식입니다. 첫돌에는 아이의 오복(五福)을 빌고, 혼례 때는 국수 가락처럼 부부의 금슬이 길게 이어지라고, 회갑 때는 오래 살라고, 국수가락이 길게 늘어나는 데서 장수를 비는 뜻으로 상에 올렸지요. 밀가루 생산량이 적어, 보통 국수하면 메밀국수였습니다. 메밀국수라고 그리 흔한 것도 아니어서 면을 만들었으면 국물도 면요리 격에 맞게 꿩고기 국물을 썼지요. 


한정 계층의 별식이던 밀가루 국수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쌀 소비를 제한하는 대신 만주에서 콩, 밀을 들여와 국수를 만들어 먹도록 강제하면서 일반의 음식이 됩니다. 급기야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부산항으로 미국 원조물자가 들어오며 한 푼 돈에 ‘한 끼 뚝딱’ 음식이 되고 말지요.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가루가 원조 물자로 공급되면서 부산에 밀가루가 쌓이고 내륙으로 가는 물류 기점 구포에 제분 공장이 세워지며 구포국수가 탄생하게 되는 겁니다. 


낙동강 바람도 구포국수의 맛에 보탭니다. 습기를 머금은 낙동강 바람과 해풍에서 말리는 면은 실내 공장에서 건조하는 면과 달리 면발에 짠맛이 더 강하고 쫄깃하다고 합니다. 해풍과 긴 일조량, 강바람을 등에 업고 1960~70년대 구포 지역에 국수 공장이 20여 곳이나 밀집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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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국수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재료부터 맛까지 참 단순하기 그지없습니다. 소박한 생김새와 맛으로 정체성을 삼는 음식이 또 어디 있을까요, 압도적으로 단순한 정체성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특별할 게 없다는 게 가장 특별한 점이라는 게. 국물 기본은 멸치입니다. 부산의 또 다른 고유명사 기장 멸치가 구포국수에 쓰이고 있는지는 확인이 안 되지만 국내산 멸치를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큰 멸치, 중 멸치, 작은 멸치를 섞어 쓰는데, 여분의 수분, 기름기, 잡내를 제거하는 과정을 3일 정도 거친 뒤에 쓴 맛이 나지 않게 아주 깔끔하게 손질해서 12시간 정도를 끓입니다. 단순한 맛을 내려면 손이 많이 번거롭습니다. 


면 위에 간장 양념, 김가루, 채 썬 단무지, 살짝 데친 부추가 기본입니다. 참깨, 계란 지단, 파를 얹는 집도 있습니다. 메뉴는 차갑게, 따뜻하게, 비빔, 김밥 등. 차분, 따신이라는 이름에서 시장 손맛이 느껴집니다. 고명은 국물을 침범하지 않고, 국물은 부추 향마저 한 데 섞지 않습니다. 구포국수를 어머니, 할머니의 맛으로 기억해 두고 싶습니다. 자극도 향기도 손기술도 필요 없이, 깨끗하게 다듬고 들입다 끓인 맛. 살다 보면 이 위에 세상 온갖 양념과 향기가 쌓이고 범벅이 되겠지요. 그 임계점 주기가 돌아올 때마다 가장 친숙한 맛, 깨끗한 맛, 그리움까지 더해진 국물 한 모금, 입 안 가득 오드득 터지는 하얀 면 다발들이 그리워 기차를 타는 겁니다. 고향에 가는, 고향집 한 상을 맞으러 가는 설렘을 느끼며 구포 시장으로 걷습니다. 구포 사람들, 이 한 그릇으로 인생 커다란 부분이 거뜬히 채워가겠구나, 꽤 괜찮은 인생 같아 보입니다.  




글 · 사진 |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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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 등을 써서 고양이 밥값을 벌고 남은 돈으로 맥주를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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