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이 시작한 빵 일기][베이킹에세이] 본격적인 베이킹 공부의 시작!

2024-01-29

겁 없이 시작한 빵 일기 #3



강의는 매일 오전 일곱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점심시간은 삼십 분. 세부 안내 사항을 확인하고 강의 하루당 한 개씩 공진단 열 개를 챙겼다. 베이커에게 아주 일반적인 활동 시간이겠지만 노동 경험이 없는 만년 허약체질의 뉴비가 타지에서 앓아눕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그 외에도 해열진통제, 종합감기약, 기침약, 소화제, 배탈약 등 약물검사에 걸릴 수도 있겠는걸? 싶을 정도로 매일 다양한 약의 도움을 받아 별 탈 없이 2주간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어떤 약도 듣지 않는 두통과 오심에 초주검이 된 것은 적립 데미지를 일시 수령 한 것이라 생각하고 겸허히 받아들였다.

 

b642c500460fd.jpgSFBI(San Francisco Baking Institute)


SFBI(San Francisco Baking Institute)에서 처음 배운 빵은 바게트. 첫 주에만 모두 55개의 바게트를 구웠다. 아직은 인적이 드문 여섯 시 반, 학교에 도착하여 카페테리아에 준비된 따뜻한 커피와 머핀, 크루아상, 커피 케이크 등 매일 종류가 바뀌는 갓 구운 조식 페이스트리를 먹고 흰색 셰프 코트를 걸치면 강의 시간이 되어 실습장으로 향했다. 조별로 그날 실습할 서너 가지의 반죽을 내가 들어가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반죽기로 믹싱하고 1차 발효를 위해 커다란 도우박스에 옮겨 담아 레이블링 하는 것이 첫 일과.

 

2a9723a451a20.jpg카페테리아


끈적한 반죽이 사방에 들러붙지 않도록 팔꿈치까지 물에 적시고 상체를 반죽기에 넣듯 허리를 잔뜩 굽혀 반죽을 옮기는 일은 조원들이 돌아가며 했는데, 주 초반에는 ‘이번엔 네가 한번 해볼래?’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이번엔 내가 할게’로 배려의 이유가 바뀌었다. 마녀의 가마솥만 한 반죽기를 젖은 행주로 깨끗이 닦고 작업대를 정돈한 후 도우박스에 편안히 자리 잡은 반죽에 천천히 글루텐이 잡히는 두어 시간 동안은 이론 강의가 진행되었다.


b0aae5e1dd18e.jpg9c8824ba053bd.jpg실습장과 반죽기


선생님은 디즈니 공주처럼 발그레한 볼에 표정이 풍부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귀여운 사람이었는데, 아무리 하찮은 질문에도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를 꼭 붙여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강의, 실습, 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미국에 오기 전 공책에 잔뜩 적어 온 궁금증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베이커리 근무 경험담을 듣는 것 또한 강의 시간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신입 시절, 실수로 베이커리의 생명과도 같은 발효종을 모조리 버려버린 일이나 도우컨디셔너의 도입으로 원래 자정이었던 출근 시간이 새벽 두 시가 되어 기뻤던 일 등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나거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일화들은 몇 시간이고 듣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224bef508e0e4.jpg강의실


하지만 아무리 강의가 재미있고 선생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도 반죽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 시간에 한 번, 반죽의 발효 상태를 확인하고 힘을 더하기 위한 작업인 스트레치 앤 폴드(Stretch and Fold)를 하려면 실습장에 다녀와야 한다. 실습장에 한 번 다녀올 때마다 반죽은 매끈해졌고 강의실 바닥엔 하얀 밀가루 발자국이 늘었다.

 

9f0fde45fd5a4.jpg 1차 발효 중인 도우박스


반죽이 한껏 폭신하게 부풀어 올라 1차 발효가 끝나면 도우박스를 조심조심 뒤집어 커다란 작업대 가운데에 꺼내 놓는다. 당장이라도 머리를 누이고 싶은 거대한 베개 같은 반죽을 조원 수대로 나누고, 각자 바게트 다섯 개 분의 반죽을 분할하고 성형했다. 처음 만들어본 바게트는 아무리 열심히 굴려보아도 내 마음처럼 일정한 두께로 매끈하게 길어지지 않아 다섯 개 모두 모양이 제각각이었고, 그 와중에 손이 느려 거의 항상 꼴찌로 성형을 마치는 바람에 마음이 조급해져 당황하기 일쑤였다.

 

하루하루 실력이 늘어도 꼴찌를 면하는 일은 잘 없었는데, 수강생 모두 오븐 앞에 모여 각자의 바게트를 오븐에 넣을 때 살펴보니 의외로 나의 바게트는 그다지 자유분방하지 않았다. 나를 재촉하고 질책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닫고서야 비로소 반죽이 말을 듣지 않아도, 내가 꼴찌로 성형을 하고 있어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과정 자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84d77bdbf94de.jpg8712b108881fd.jpg자유분방한 나의 첫 바게트


그날의 주제에 따라 반죽법, 밀가루 종류, 발효법 등을 달리한 서너 종류의 바게트를 모두 굽고 나면 선생님의 작업대에 모두 모여 바게트를 잘라 종류별로 단면을 살펴보고 시식을 하며 질감과 맛에 대한 평가와 토론을 했다. 얇고 파삭한 크러스트에 속은 촉촉하고 말랑하니 어떤 빵을 먹어도 첫 반응은 ‘와 정말 맛있다’였지만, 단맛이 끝에 미세하게 남는다거나, 산미가 전면에 느껴진다거나, 씹을수록 침이 도는 질감이라거나 하는 디테일을 찾아내는 일을 하나의 놀이처럼 즐겼다.

 

90f41df241d14.jpg선생님 작업대에서의 평가와 토론


마지막 일과는 각자 구운 스무 개 남짓한 바게트를 작업대에 주욱 늘어놓고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는데, 칭찬과 격려에 후한 미국답게 부족함투성이인 나의 바게트를 보고도 잘한 것 위주로 이야기를 해주어 고칠 점을 더 많이 언급해 주지 않는 점이 나의 유일한 불만이었다. ‘이건 너무 삐뚤지 않나요? 쿠프도 너무 제멋대로 터진 것 같아요. 좀 더 균일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봐도 ‘다음번엔 이런 것들을 달리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 훌륭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칭찬을 많이 해주는 것이 불만이라니, 참으로 한국인스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지적보다는 칭찬의 힘이 더 컸던 걸까, 1주 차 과정의 마지막 날 구운 나의 바게트는 아름다웠다.


f732452ad83fe.jpg1주차 마지막날 나의 바게트




글/사진 조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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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코어 밴드 '노이지'와 '데이오브모닝'의 베이스를 맡고 있습니다.
연희동에서 숏앤심플 사워도우 베이커리를 운영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short.simple.sourd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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