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하카타 앞에서 저녁 약속이 잡혔다. 동네도 동네인 데다 각자 물 건너 후쿠오카로 온 사람들이 시간 맞춰 한자리에 모인다는 설정도 마음을 들뜨게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비즈니스 미팅’이라 쓰고 ‘술자리’로 읽든, ‘술자리’라고 쓰고 ‘비즈니스 미팅’으로 읽든, 어느 쪽도 부담 없이 나갈 자리는 아니었다.
예약은 가까스로 잡았다. 금요일 저녁, 하카타 인기 술집에 7명 단체석 오네가이시마스.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놀라웠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밤 9시가 가장 빠른데 다이죠부데스까? 예약 완료. 하카타역 요도바시카메라 건너편 거리 초입, 사카바 아웅(酒場あうん)이라는 곳이었다.
하카타에서
하루 일정은 벌써 끝났는데 9시가 되려면 아직 멀었고, 가는 길에 라멘 한 그릇을 먹었다. 별점 따지며 라멘집 들어가는 건 너무 초보 같아서 아무 데나 들어갔건만, 국물이 짜도 너무 짰다. 구글 지도의 집단 지성을 무시하지 말지니. ‘비즈니스 미팅’에 벌건 초면을 들이밀 수 없어 맥주를 사양한 탓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남아 둘러 둘러 거리의 분주함에 취하기로 했다. 연기에 실린 냄새만으로 호객을 하는 야키토리집들, 평일 저녁에 이곳 하카타를, 오사카 난바를, 삿포로 스스키노를 걸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겨진 정장을 벗어 던지고 생맥주를 들고 있는 직장인들 사이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뭘 해도 즐거운 여행자니까 조용히 그들의 배경이 되어주면 그뿐이라는.
하카타역
⁂
사카바 아웅은 낮에는 ‘아웅 쇼쿠도 돈코(あうん食堂豚娘)’라는 하얀 포렴을 걸고 돈카츠를 비롯한 돼지고기 요리를 팔다가 저녁 영업을 시작하면 빨간 ‘사카바 아웅’ 포렴으로 바꿔 술집으로 변신한다. 매장은 2층에 있는데, 작은 룸에서는 아래층 ‘건널목 뷰’가 제법 흥미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곳의 명당은 요리사들과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ㄷ자 카운터다.
사카바 아웅
오픈 키친을 중심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은 집중과 이완의 양상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회를 썰고 꼬치를 굽고 육수를 살피고 주문에 응하고 음식 접시와 빈 접시를 주고받는 폭풍 하나가 지나면, 서로 농담도 하고 슬쩍 조리법 조언도 하며 다음 피크 타임을 대비한 태엽을 감았다. 그 와중에 손님들과 환담을 나누는 여유도 있었다.
버티고 버텼어도 결국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테이블 두 개를 홀로 차지하는 중. 카운터에 앉은 한국인 커플이 일본술 추천을 받고 있었다. 작은 잔으로 사케 맛을 본 남녀의 반색에 직원은 같은 술을 1홉들이 도쿠리로 내온다. 두 사람 바로 앞에서 회를 썰던 부점장은 무뚝뚝한 듯 살가운 듯 메뉴 이름을 읊으며 접시를 올린다. 옆 테이블에서는 최소 두 회사의 회식 자리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 곳은 목에 손으로 쓴 명찰까지 달고 있었다. 신입 사원 환영회인가? 그런 것치고는 술잔을 들고 부장급 직원들의 옆자리를 찾아다니며 작주하는 사원들의 붙임성이 너무 천연덕스러웠다. 일본판 ‘숨고’에 신입 사원을 위한 술자리 레슨 같은 게 있지 않은 한 저렇게 능수능란할 수는 없다.
하나둘, 멤버가 도착했다. 기획자, 촬영 감독, 코디네이터, 에디터, 파트너, 그리고 클라이언트. 온라인으로만 연락하던 사람, 몇 년간 건너 건너 이름만 듣던 사람, 이름조차 초면인 사람이 뒤섞였지만, 전부 서글서글한 얼굴들이었다. 그래도 형식상 기립하여 악수, 이 밤중에 명함 교환. 이제 어떤 스몰토크를 건네면 좋을까.
진작부터 예약 인원이 다 차기를 기다리던 기본 안주 ‘오토시’가 아이스 브레이커였다. 흑임자 소스를 올린 감, 모치리도후, 일본식 달걀말이 다마고야키, 시금치 절임까지는 알겠는데 분홍빛 살점에 싸인 초밥의 정체는 무엇이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말을 보탠다. 연어일까요? 방어나 참치 아닐까요? 그런데 어쩜 이리 색이 옅죠? 답은 ‘あうん’이 큼지막하게 박힌 티셔츠 차림 직원이 알려주었다. “프로슈토, 생햄입니다.” 아하, 모두 일식의 고수는 아니었다는 동질감에 분위기가 풀어졌다. 때맞춰 따라준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 일곱 잔 덕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카바 아웅의 오토시
⁂
왜 상호를 ‘이자카야 아웅’이 아닌 ‘사카바 아웅’이라 지은 걸까? ‘사카바(酒場)’는 술을 파는 가게를 아우르는 옛날 말인데, 좀 더 저렴한 이미지인 ‘이자카야(居酒屋)’보다 좋은 술과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것인지도 모른다. 직접 주조한 ‘아웅 오리지널’이라는 술을 다루자케(樽酒)로 팔았던 것만 봐도 이들의 역사가 가늠이 된다. 그리고 막 눈앞에 놓인 모둠회도 이들의 진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카바 아웅의 다루자케
참깨 소스 올린 고등어회 고마사바(ゴマサバ), 도미, 방어, 홋카이도산 문어 등이 먹기 좋게 올라간 사시미 모리아와세(刺身盛り合わせ). 직원이 물고기 이름을 알려줘도 항상 젓가락만 들면 잊는다. 담음새가 근사하고 예상보다 양도 많아 서먹한 7인이 정체 모를 회를 한 점씩 집어 먹으며 서로의 정체를 알아가기에 충분했다.
모둠회
이어서 후쿠오카의 또 다른 명물 멘타이코(明太子)가 나왔다. 이름 그대로 ‘명란젓’이라 부르지만, 으레 구워서 내놓는다고 한다. 토치로 겉만 살짝 구운 명란젓과 밥 조금, 그 고소함과 짭조름함에 맥주가 금방 한 바퀴를 돌았다. 하카타 거리를 걸으며 구경만 했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우리 곁으로도 젖어 들기 시작했다.
명란젓구이
알코올이 퍼지자 비즈니스 미팅다운 질의응답 시간도 한결 부드럽게 진행됐다. 후쿠오카에서 어떤 글과 영상 콘텐츠를 만들 생각인가요?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자리가 해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이라도 어색하지 않은 척, 음식도 사람도 잘 알던 사이처럼 이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어떨까? 그림도 묘사도 복고적이고 따뜻하게, 여기 사카바 같은 공기를 잔뜩 불어 넣어서.
결과물은 나중 일이고 지금은 음식에 집중하라는 듯 휴대용 버너가 설치됐다. 일본식 만두전골 다키교자(炊き餃子)가 이 자리의 마무리. 진한 닭 뼈 육수에 닭고기가 소로 들어간 만두가 몽글몽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우동 사리도 참을 수 없지. 서로 국물과 건더기를 퍼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후루룩후루룩 합창을 시작한다. 마무리 음식에 걸맞게 술에도 결정타가 필요했다.
하카타식 만두전골 다키교자
산토리의 3대 대중 위스키 야마자키, 하쿠슈, 히비키를 한 잔씩 마신다. 스트레이트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취향대로 하이볼로 만들어 마시라고 탄산수도 곁들여 주는 센스. 이자카야가 아니라 사카바라고 이름을 지은 이상,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걸까. 일곱 잔을 부딪쳐 서먹서먹함의 마지막 조각을 부서뜨렸다.
산토리 위스키
⁂
적당한 시간에 자리를 파했다. 올 때는 따로 왔지만 숙소는 같은 곳에 잡은 몇몇이 하카타 거리를 동행했다. 일본에서 5년째 살고 있다는 코디네이터에게 듣는 먼 나라 이웃 나라풍 일본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식당은 슬슬 문을 닫고 있었으나 술집에는 사람이 더 많아진 듯했다. 하긴 금요일 밤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직장인들, 여행자들은 멈출 줄 모르는 주류선 위에 올라타 있겠지.
인터뷰다, 취재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지만 관계의 집합과 해체가 익숙해지는 법은 없었다. 허겁지겁 자기소개를 하고, 농담의 주파수를 맞추고, 해야 할 말들을 교환하고, 마무리는 이메일이나 인스타 DM으로 짓자고 약속한다. 대화에 진척이 없는 날도, 신뢰를 얻어 피차의 프로젝트에 계속 도움을 주게 된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일의 성사에 장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아직 가게 이름을 이자카야가 아닌 사카바로 지은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서먹서먹한 사람들에게 사카바가 부린 요술은 꽤 근사했다. 아무튼 정색한 얼굴만 보다가 헤어지지는 않았으니까. 본격적인 일은 내일부터라지만, 나로서는 일단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에디터 T의 식도락: 사카바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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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하카타 앞에서 저녁 약속이 잡혔다. 동네도 동네인 데다 각자 물 건너 후쿠오카로 온 사람들이 시간 맞춰 한자리에 모인다는 설정도 마음을 들뜨게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비즈니스 미팅’이라 쓰고 ‘술자리’로 읽든, ‘술자리’라고 쓰고 ‘비즈니스 미팅’으로 읽든, 어느 쪽도 부담 없이 나갈 자리는 아니었다.
예약은 가까스로 잡았다. 금요일 저녁, 하카타 인기 술집에 7명 단체석 오네가이시마스.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놀라웠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밤 9시가 가장 빠른데 다이죠부데스까? 예약 완료. 하카타역 요도바시카메라 건너편 거리 초입, 사카바 아웅(酒場あうん)이라는 곳이었다.
하카타에서
하루 일정은 벌써 끝났는데 9시가 되려면 아직 멀었고, 가는 길에 라멘 한 그릇을 먹었다. 별점 따지며 라멘집 들어가는 건 너무 초보 같아서 아무 데나 들어갔건만, 국물이 짜도 너무 짰다. 구글 지도의 집단 지성을 무시하지 말지니. ‘비즈니스 미팅’에 벌건 초면을 들이밀 수 없어 맥주를 사양한 탓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남아 둘러 둘러 거리의 분주함에 취하기로 했다. 연기에 실린 냄새만으로 호객을 하는 야키토리집들, 평일 저녁에 이곳 하카타를, 오사카 난바를, 삿포로 스스키노를 걸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겨진 정장을 벗어 던지고 생맥주를 들고 있는 직장인들 사이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뭘 해도 즐거운 여행자니까 조용히 그들의 배경이 되어주면 그뿐이라는.
하카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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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바 아웅은 낮에는 ‘아웅 쇼쿠도 돈코(あうん食堂豚娘)’라는 하얀 포렴을 걸고 돈카츠를 비롯한 돼지고기 요리를 팔다가 저녁 영업을 시작하면 빨간 ‘사카바 아웅’ 포렴으로 바꿔 술집으로 변신한다. 매장은 2층에 있는데, 작은 룸에서는 아래층 ‘건널목 뷰’가 제법 흥미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곳의 명당은 요리사들과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ㄷ자 카운터다.
사카바 아웅
오픈 키친을 중심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은 집중과 이완의 양상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회를 썰고 꼬치를 굽고 육수를 살피고 주문에 응하고 음식 접시와 빈 접시를 주고받는 폭풍 하나가 지나면, 서로 농담도 하고 슬쩍 조리법 조언도 하며 다음 피크 타임을 대비한 태엽을 감았다. 그 와중에 손님들과 환담을 나누는 여유도 있었다.
버티고 버텼어도 결국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테이블 두 개를 홀로 차지하는 중. 카운터에 앉은 한국인 커플이 일본술 추천을 받고 있었다. 작은 잔으로 사케 맛을 본 남녀의 반색에 직원은 같은 술을 1홉들이 도쿠리로 내온다. 두 사람 바로 앞에서 회를 썰던 부점장은 무뚝뚝한 듯 살가운 듯 메뉴 이름을 읊으며 접시를 올린다. 옆 테이블에서는 최소 두 회사의 회식 자리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 곳은 목에 손으로 쓴 명찰까지 달고 있었다. 신입 사원 환영회인가? 그런 것치고는 술잔을 들고 부장급 직원들의 옆자리를 찾아다니며 작주하는 사원들의 붙임성이 너무 천연덕스러웠다. 일본판 ‘숨고’에 신입 사원을 위한 술자리 레슨 같은 게 있지 않은 한 저렇게 능수능란할 수는 없다.
하나둘, 멤버가 도착했다. 기획자, 촬영 감독, 코디네이터, 에디터, 파트너, 그리고 클라이언트. 온라인으로만 연락하던 사람, 몇 년간 건너 건너 이름만 듣던 사람, 이름조차 초면인 사람이 뒤섞였지만, 전부 서글서글한 얼굴들이었다. 그래도 형식상 기립하여 악수, 이 밤중에 명함 교환. 이제 어떤 스몰토크를 건네면 좋을까.
진작부터 예약 인원이 다 차기를 기다리던 기본 안주 ‘오토시’가 아이스 브레이커였다. 흑임자 소스를 올린 감, 모치리도후, 일본식 달걀말이 다마고야키, 시금치 절임까지는 알겠는데 분홍빛 살점에 싸인 초밥의 정체는 무엇이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말을 보탠다. 연어일까요? 방어나 참치 아닐까요? 그런데 어쩜 이리 색이 옅죠? 답은 ‘あうん’이 큼지막하게 박힌 티셔츠 차림 직원이 알려주었다. “프로슈토, 생햄입니다.” 아하, 모두 일식의 고수는 아니었다는 동질감에 분위기가 풀어졌다. 때맞춰 따라준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 일곱 잔 덕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카바 아웅의 오토시
⁂
왜 상호를 ‘이자카야 아웅’이 아닌 ‘사카바 아웅’이라 지은 걸까? ‘사카바(酒場)’는 술을 파는 가게를 아우르는 옛날 말인데, 좀 더 저렴한 이미지인 ‘이자카야(居酒屋)’보다 좋은 술과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것인지도 모른다. 직접 주조한 ‘아웅 오리지널’이라는 술을 다루자케(樽酒)로 팔았던 것만 봐도 이들의 역사가 가늠이 된다. 그리고 막 눈앞에 놓인 모둠회도 이들의 진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카바 아웅의 다루자케
참깨 소스 올린 고등어회 고마사바(ゴマサバ), 도미, 방어, 홋카이도산 문어 등이 먹기 좋게 올라간 사시미 모리아와세(刺身盛り合わせ). 직원이 물고기 이름을 알려줘도 항상 젓가락만 들면 잊는다. 담음새가 근사하고 예상보다 양도 많아 서먹한 7인이 정체 모를 회를 한 점씩 집어 먹으며 서로의 정체를 알아가기에 충분했다.
모둠회
이어서 후쿠오카의 또 다른 명물 멘타이코(明太子)가 나왔다. 이름 그대로 ‘명란젓’이라 부르지만, 으레 구워서 내놓는다고 한다. 토치로 겉만 살짝 구운 명란젓과 밥 조금, 그 고소함과 짭조름함에 맥주가 금방 한 바퀴를 돌았다. 하카타 거리를 걸으며 구경만 했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우리 곁으로도 젖어 들기 시작했다.
명란젓구이
알코올이 퍼지자 비즈니스 미팅다운 질의응답 시간도 한결 부드럽게 진행됐다. 후쿠오카에서 어떤 글과 영상 콘텐츠를 만들 생각인가요?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자리가 해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이라도 어색하지 않은 척, 음식도 사람도 잘 알던 사이처럼 이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어떨까? 그림도 묘사도 복고적이고 따뜻하게, 여기 사카바 같은 공기를 잔뜩 불어 넣어서.
결과물은 나중 일이고 지금은 음식에 집중하라는 듯 휴대용 버너가 설치됐다. 일본식 만두전골 다키교자(炊き餃子)가 이 자리의 마무리. 진한 닭 뼈 육수에 닭고기가 소로 들어간 만두가 몽글몽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우동 사리도 참을 수 없지. 서로 국물과 건더기를 퍼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후루룩후루룩 합창을 시작한다. 마무리 음식에 걸맞게 술에도 결정타가 필요했다.
하카타식 만두전골 다키교자
산토리의 3대 대중 위스키 야마자키, 하쿠슈, 히비키를 한 잔씩 마신다. 스트레이트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취향대로 하이볼로 만들어 마시라고 탄산수도 곁들여 주는 센스. 이자카야가 아니라 사카바라고 이름을 지은 이상,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걸까. 일곱 잔을 부딪쳐 서먹서먹함의 마지막 조각을 부서뜨렸다.
산토리 위스키
⁂
적당한 시간에 자리를 파했다. 올 때는 따로 왔지만 숙소는 같은 곳에 잡은 몇몇이 하카타 거리를 동행했다. 일본에서 5년째 살고 있다는 코디네이터에게 듣는 먼 나라 이웃 나라풍 일본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식당은 슬슬 문을 닫고 있었으나 술집에는 사람이 더 많아진 듯했다. 하긴 금요일 밤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직장인들, 여행자들은 멈출 줄 모르는 주류선 위에 올라타 있겠지.
인터뷰다, 취재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지만 관계의 집합과 해체가 익숙해지는 법은 없었다. 허겁지겁 자기소개를 하고, 농담의 주파수를 맞추고, 해야 할 말들을 교환하고, 마무리는 이메일이나 인스타 DM으로 짓자고 약속한다. 대화에 진척이 없는 날도, 신뢰를 얻어 피차의 프로젝트에 계속 도움을 주게 된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일의 성사에 장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아직 가게 이름을 이자카야가 아닌 사카바로 지은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서먹서먹한 사람들에게 사카바가 부린 요술은 꽤 근사했다. 아무튼 정색한 얼굴만 보다가 헤어지지는 않았으니까. 본격적인 일은 내일부터라지만, 나로서는 일단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글, 사진 | 에디터 T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이런저런 사람들과 후쿠오카 식도락 길에 올랐다.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