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플루토]콜라 피자 발렌타인 데이, 명왕성은 보이지 않는다지만

굿바이 플루토 #1



화물열차라고? 콜롬비아 레코드 홍보 담당자는 방금 전 밥 딜런이 한 말을 되물었다. 맞아, 화물열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흑인 블루스, 컨트리 거장들에게 음악을 배웠지. 그러다 1년 전 여기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도착한 거야. 사실 화물열차를 몰래 타고 떠돌아다닌 건 그가 아니라 우디 거스리였다. 인종, 계급, 빈부에 관한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대변자라 불리던 블루스 가수. 청년 시절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밥 딜런의 별명은 ‘우디 거스리의 주크박스’였다. 1962년 발표한 첫 앨범은 잠잠했지만, ‘피터 폴 앤 메리’가 그의 두 번째 앨범에 실린 <Blowing in the wind>를 다시 불러 빌보드 1위에 올려놓자 밥 딜러은 뉴욕의 수많은 포스트 우디 거스리 중 단연 첫 번째 계승자가 되었고, 베트남 전쟁과 맞물리며 바야흐로 시대의 대변자로 추앙 받았다. 하지만 그건 무대 아래 사람들의 착각이었다.


“내가 부르는 것은 단지 노래일 뿐이다. 노래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밥 딜런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누군가를 대변할 생각이 없었다. 베트남 전쟁 반대 집회에 나선 젊은이들이 그에게 시대적 한 마디를 요청했을 때, 그는 침묵했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은 <Blowing in the wind>를 부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그 밥 딜런이 아니다. 아무리 새 노래를 만들어도 사람들은 히트곡만을 불러 달라고 한다. 그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의 감성이 아닌데 어떻게 그 노래를 부르란 말인가.”


그는 아무도 대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면 투어에 나섰고, 히트곡을 부르며 잔고를 채웠다. <Blowing in the wind>는 2018년 한국 공연에서도 불렀다. 그러니까 그는 정말로 아무도 대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요구했다. 누군가 자신들의 말을, 마음을 대변해 주길. 말의 길이 한계 없이 확장된 지금에도 말을 들리게 하는 길은 좁다. 그래서 누구든 원한다. 나의 말을 대변해 줄 사람, 적어도 마음을 헤아려줄 사람.


1991년 나는 내 말이라 할 만한 게 없을 나이였고,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말, 알고 싶은 세계는 ‘내게서 오지 않은’ 일곱 단어 안에 있었다.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밸런타인데이. 콜라의 세계는 조금 알았다. 빨간 머리 소녀 간판의 웬디스 햄버거에 앉아 뻑뻑한 빵을 촉촉하게 녹여주는 행복한 어린 날의 콜라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내 손 안에 든 콜라는 사설 독서실 자판기 안에 있었다. 위스키, 브랜디는 말할 것도 없고, 블루진, 피자마저 내 세계가 되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 일곱 단어가 한꺼번에 머무는 곳은 지구 표면 한 꺼풀 아래에 있는 몽롱한 세상, ‘재즈카페’였다. 블루진이 멋지게 들러붙은 긴 다리, 까만 머리, 까만 눈, 넥타이를 매고 하이힐을 신은 진화된 인종들이 맥주를 잔에 따르지 않고 병째 마시거나 물 컵 반쯤 위스키를 채워 고소하다는 듯 마신다는 곳.




그 먼 세계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단파 라디오보다 더 가냘프고 조악한 음질을 실어오는 이어폰 줄이었다. 이어폰 밖 세상에선 누구도 위스키를 마시지 않았고, 하이힐을 신고 재즈를 들으러 다니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이래선 안 됐다. 급박한 다림질에 눌려 번들거리는 교복 마이와 웃자라 발목에서 댕강거리는 바짓단은 어쩌지 못했어도, 3센티미터 앞머리를 아등바등 바짝 세우는 것이 멋의 전부였어도, 등수를 놓치지 않으려고 자판기 캔 콜라를 마시며 밤 새워 교과서를 암기했어도, 정말 나를 둘러싼 세계가 이래선 안 됐다.



"그러나 그 단어들 전부가 나의 세계를 대변하고 있었고,

나는 속히 그 세계의 문을 열어야 했다."



비 내리는 봄날, 그가 말했다.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을 못 본 체하며 목소리만 높여서 얘기하네.”


낮은 책상에 앉아서 중간고사나 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촛불 사이로’ 피아노를 울리거나 술에 취해 누군가와 토론이라도 해야 했다. 마음 가까이 재즈카페의 출입구 손잡이가 다가와 있었지만 당장은 중간고사 답안지 마킹 펜을 쥐어야 했고,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문제가 읽히지 않았다. 위스키, 브랜디 …… 일곱 단어가 끊이지 않고 되풀이, 되풀이, 오토리버스. 시간은 가고, 문제는 아직 많이 남았고, 머릿속은 온통 콜라, 피자, 발렌타인데이. 좋아하지도 않는 피자와 초콜릿이 인생을 망치는 듯 했지만 그건 봄비를 뚫고 내게 닿은 그의 말이었다. ‘우리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일곱 단어 안에는 어떤 메시지도 없었고, 내 마음을 끌어들일 단서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단어들 전부가 나의 세계를 대변하고 있었고, 나는 속히 그 세계의 문을 열어야 했다. 일곱 단어는 분명 “우리에게서 오지 않을 것들”이었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우리’들은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가 저들에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 채 그는 노래를 불렀다. 무한궤도, 솔로, 넥스트, 영화 OST, 솔로, 다시 넥스트. 그는 시대의 대변자였고, 노래가 아닌 말로도 우리 시대를 대변하겠다고 나섰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찾아 늦은 밤 라디오를 틀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는 가까이에서 의미를 들려주었다. 너는 태어난 자체로 인생의 목적을 이룬 거야. 훌륭해지려 하지 말고 행복해져. 그가 처음 산 빨간 기타를 안고 잠 못 든 날 밤을 생각하며 함께 설렜고,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할 때 나 역시 부끄럽지 않게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부끄럽게 살고 만 나 자신을 탓하며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늙어 버리는구나 생각될 때 ‘눈물 너머 잡힐 듯 다가오는 희망’을 한 번이라도 느껴 봐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가 보자 생각했다. 대마초, 동성애, 동성동본. 내 세상이란 건 당연히 내게서 오지 않은 것들이어야 한다는 걸, 그래야 세상이라 부를 수 있다는 걸 그가 말해주었다. 그는 생각과 의미와 세상을 주었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내 세상이다.


분명하지만 애석한 사실은 그는 나를 모르고, 나 역시 그를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그의 노래, 가사, 말은 이미 벅찼다. 그는 처음부터 내 현실에 없는 사람이었고, 죽음이 그의 현실이 되었을 때 슬픔과는 별개로 그로 인해 내 삶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늘 궁금하기는 하다. 그라면 지금 어떤 말을 했을까? 하지만 그가 들려준 말이 많으니 그의 말을 받아 다음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것이 들은 사람의 몫이 아닐까, 그것이 인간의 길이라 생각했다. 그가 존재할 때나 존재하지 않을 때나 그는 여전히 내게 있었고, 끊임없이 영향을 주었다.


2006년 명왕성이 행성에서 퇴출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명왕성은 아주 먼 공전을 계속하고 있다. 지구 멀리서 지구와 함께. 그가 있거나 없거나 그는 내게 영향을 주고 있고, 그의 존재를 아주 가끔씩, 그리고 문득 느낀다. 굿바이 플루토, 나의 한 세기여.




다음 편에 계속.




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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