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플루토][인문 기행] 바람 부는 압구정

굿바이 플루토 #2



메케한 바람이 수면에 닿아 쉴 새 없이 녹아 사라지거나, 지루함을 못 참고 한숨을 내뿜듯 가끔 기포를 터뜨리는 것 말고는 바다 수면 밖으로 생명의 요동조차 없던 시절. 내 삶의 첫 기억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나는 물고기였다. 오십 년 동안 들이쉬고, 백 년 동안 내뱉으며 8억 번 숨을 쉬던 때의 이야기라, 정말이지, 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 고요한 일이 또 있을까. 다들 그랬듯,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도 나라거나 너라는 구분 없이 살던 시절, ‘우리’라 불러도 좋을 ‘물질’이었던 그때엔 중력과 인력의 평형점에서 떠밀려 다니거나 부유하는 걸 삶이라 불렀다. 오후 햇살에 한쪽 뺨을 달구며 버스에 앉아 멍하니 그 시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점액질 바다에서의 삶이란 애써 객체를 의식하지 않고선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감지하기 어려웠다. 무리의 어느 부분들이 쉴 새 없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떨어져나갔지만 누구도 그걸 ‘나의’ 죽음이라든가 내 오른쪽 다섯 시 방향 일곱 번째에서 헤엄치던 ‘미끈이의 죽음’ 따위로 부르지 않았다. 삶이란 무리의 대사 작용 같은 것이었으니까. 나는 어쩌다 그 세계와 동떨어져 홀로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세계의 문’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줄곧 ‘지각의 문’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아침 내 손끝에 딱딱한 하늘이 만져졌고, 그것은 또 다른 세계의 지각(地殼)이었다. 공중의 딱딱한 무게감이 왜 하필 내 손에 닿았던 걸까?



“뻔한 인생의 결론 향해 / 생각 없이 발걸음만 옮긴다 /

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 이제는 묻는다 / 왜!”

- 넥스트 <껍질의 파괴>  




지각의 문 저편에서 들리는 소리. 나는 손을 뻗어 새로운 세계의 지표 위에 얹었다. 팔에 힘을 줄 것도 없이 ‘나’라는 객체는 불쑥 점액질에서 빠져 나와 마르고 컴컴한 지각을 딛고 섰다. 그건 성장의 과정도 누구나 거쳐 가는 삶의 과정도 아닌 것 같았지만, 건조한 바닥을 디딜 때마다 다리에 힘이 생겼고, 처음엔 그저 ‘내’ 다리의 힘을 느끼는 것만으로 좋았다. 이후 삶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지만,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짐작할 수도 없고 간절히 바란 적도 없는 건조하고 생소한 지표 위의 삶을 터벅터벅 나아갔던 것이다.


이제야 어른의 세계를 만났다, 그런 생각을 했던가? 아니면 줄곧 기다리던 ‘일곱 단어의 세계’의 문을 열었다고 느꼈던 걸까? 단편적이지만 그래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누군가 내 손에 끊임없이 조니워커 위스키와 헤네시 브랜디를 번갈아 들려 주었던 장면들과, 점액질 세계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객체답게 갈증에 겨워 받는 족족 마셔대던 장면이다. 취기를 느낄 틈도 없었다. 다시 축축한 무리가 되어가는 익숙한 느낌이 드는 때도 있었지만, 버드와이저, 미켈롭, 하이네켄, 하나하나의 세계가 엄습할 때마다 나는 거듭 거듭 새로운 지각의 문을 열어젖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다음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어딘가 컴컴하고 습한 바닥에 죽은 벌레처럼 엎드린 채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일기를 써요.”


침대 위의 그녀가 내던 바짝 마른 목소리도 또렷하다. 조용히 물 한 컵을 다 마시고 식탁에 앉아 의식처럼 빨간 립스틱을 바르곤 했지.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음악을 듣기도 해요. 한 시간, 두 시간. 집에 올라오지 않을 때도 있어요. 방에 들어오는 게 싫어서. 차에 앉아 내 방 창문을 올려다보면, 저기 들어가고 싶지 않아, 다시 못 나올지 몰라, 알아요? 그런 기분?”


매일 밤 그녀는 술에 취해 시동을 걸었다. “음악 틀까요?” 빨간 티뷰론, 국산 스포츠카. 음악을 트는 날은 없었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 그녀가 어디든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게 이 세계의 법칙일지 몰랐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우리에게서 오지 않은 것들’이었으므로. 아무리 벨소리가 울려도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기어 손잡이 옆에서 구간 반복되던 노래 Dreams are my reality. 그녀는 꿈을 잊은 듯한 얼굴로 빨간 립스틱을 덧바르고 빨간 티뷰론의 속도를 높였다. 차에서 내린다는 말은 했던가? 그녀와 어떤 인사를 나눴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고 싶은 열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꿈도, 그녀의 현실도 아니었다.



“열병에 걸린 어린애처럼 / 나의 눈길은 먼 곳만을 향했기에.”

- 넥스트 <The dreamer>



나는 과연 어떤 세계의 문들을 지나왔던 걸까? 압구정 현대백화점 버스 정류장에서 뱅앤올룹슨 서비스 센터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10년을 사용했으니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듣더라도 수긍하고 돌아서야지 했지만, 10분의 간단한 수리로 수명이 다한 줄 알았던 이어폰은 10년 전 기내 면세품이던 상태로 돌아갔다. 귀를 휘감는 요란한 모양의 이어폰을 끼고 막 가을바람이 시작된 압구정로데오를 걸었다. 부동산, 연애, 연예, 패션, 오렌지, 그 켈리포니아의, 색과 부를 향한 욕망. 많은 바람이 불다 지나갔다는 이야기는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다. 잦아들었나? 바람 불던 압구정은 내 세계의 역사가 아니었으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쩐지 가방, 스니커즈, 만년필, 카드지갑, 이어폰, 아침에 바르고 나온 로션까지, 내 몸에 달린 상표들이 거리 간판들에 깍지를 끼며 들러붙는 기분이었다. 임대 그리고 임대, 리모델링, 개업, 신축, 정오에 문을 여는 맥주집, 탭을 등지고 서 있는 이국 아가씨의 미소. 거리를 채우는 바람.




“세속도시의 즐거움에 동참하고 싶은 자들 압구정동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구나

투입구의 좁은 문으로 몸을 막 우겨넣는구나”

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




유하 시인의 시집 『바람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가 책장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20년 전 내게 압구정의 전설을 들려주던 그 시집은 잦은 이사 통에 사라지고, 지금 있는 시집은 10년 전쯤 헌책방에서 산 것이다. 모든 시작이 10년 전이었던 건가, 아니 그보다 좀 더 되짚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시집을 펼치니 겉장 뒤에 편지 하나가 끼어 있었다. 처음 본 듯했다. 책을 사놓기만 하고 10년 동안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았던 거다.


“당신에게 이 시 한 권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행복을 담고 웃으면서 사는 우리가 되자.”


기억보다 빛바랜 갱지 위로 1991년 7월 26일의 타자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되길 바라며 시집에 고백을 붙들어 매 두었던 투명 테이프는 악력이 다해 멀건 눈물자국처럼 남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끈기가 다한 접착제 대신 고백 스스로 안간힘을 내어 표지 빈틈에 매달려 있었다.


“사랑, 행복, 기쁨 우리 모든 것을 이 시 한 권에 듬뿍 담아보자.”


담담하고 절절한 고백. 온갖 색과 망상, 소비, 세속도시의 좁은 문, 문 앞에 서서 입장을 안달하던 청춘, 그 단어들 속에서 그녀는 끝내 그의 ‘우리’를 읽어 낼 수 없었던 걸까? 어찌하여 이 고백은 나의 책장에 놓이게 되었나. 아님 혹시 끝내 건네지 못한 고백이었던가?



‘욕망의 공간, 빛을 본 오징어처럼 절제란 없는 곳.’ 가을볕에 내맡겨진 단정한 대리석 바닥 위를 그런 욕망들이 딛고 다녔다는, 오래 묵은 시 속 세상. 대중없이 남의 나라 국기를 달아 놓은 가로등은 한때 ‘욕망의 통조림’ 같은 밤을 달궜다고 한다. 이제 그 욕망들은 무엇을 욕망하고 있나. 도시인인지 그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인지 분간 못하는 내 주위에조차 바람 불던 압구정동 욕망의 상표는 ‘누구나 하나쯤’, ‘누구나 한 번쯤’의 흔한 사물이 돼 버렸다. 아파트 값, 외제차, 외국물, 개성의 표상 들은 욕망의 평준화를 거쳐 일상적인 면세 선물로 남발되고 있다. 개성도 색도 부도 ‘거친 욕망들도’(넥스트 <The ocean>) 가을바람 곁에 그저 애처롭기만 할 뿐인데.


오늘 같이 바람 부는 날, 그래서 기억이든 욕망이든 추억이든 바람처럼 이는 날엔 당신은 어디에서 어떤 고백을, 어떤 독백을 하며 사실는지. 빨간 립스틱의 그녀는 어떤 욕망과 꿈과 고백을 일기장에 적었을까? 그 일기장에 내 이름도 적혔을까? 이제 무엇 하나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그녀가 세상에 없다는 소식도, 그녀가 있던 세상도, ‘우리가 되자’며 시집을 건네던 손길도 욕망이 지고 난 뒤안길, 지지 않은 거라곤 땅값뿐인 압구정 거리처럼 모든 게 진짜 일어났던 일 같지가 않다. 빨간 스포츠카도, 간절한 ‘우리’의 바람도 테이프의 악착같은 끈기도, 모두 다 꿈이 아니었을까? 빨간 립스틱을 바른 그녀도 시집을 잃어버린 그녀도 “눈물과 기도 속에서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지”(넥스트 <The dreamer>) 모를 일이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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