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세계]모리스 베자르

춤추는 세계 #8



2016년 2월 빡빡한 일정으로 유럽을 여행하던 중 스위스 로잔에 하루 묵은 적이 있다. 알프스 마테호른 봉우리를 보러가기 위해 동선 상 지나가야 했을 뿐 로잔이라는 도시에서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고, 저녁에 도착해서 다음 날 오전에 떠났으니 기억에 남는 일도 없다. 적당히 고색창연하고 적당히 선진화되어있는 스위스의 도시들 대부분이 비슷한 느낌이어서, 취리히, 제네바, 로잔 같은 주요 도시들 모두 깔끔하고 예뻤다는 인상 정도로만 남아있다. 굳이 기억해 보자면 로잔에 대해 두세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느 샌가 몸이 뒤로 기우는 걸 느꼈다. 응? 이거 위로 올라가고 있는 건가? 지하철이 지하터널을 통해 산 위로 올라가는 건 처음 경험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렇게 내린 산 위의 지하철역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 바에서 맥주를 마셨다. 지역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Docteur Gab's이라는 맥주였다. 이 브랜드의 여러 에일을 종류별로 먹어봤는데 각각의 개성과 밸런스가 훌륭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거의 ‘맥주의 이데아’였다. 결국 한국에 돌아와 이 양조장에 메일도 보내고 해외직구를 해보려고 알아봤는데, 관세 문제 때문에 개인이 소량 사는 건 힘들다는 걸 알고 마음을 접었다. 스위스에 다시 가게 되면 우선 하고 싶은 건 이 맥주를 마시는 거다.



다음 날 오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산을 내려가 기차역을 향했다. 그런데 지하철 다음 역 안내 멘트에서 ‘모리스 베자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그 ‘모리스 베자르’ 말이다. 역 이름이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일 리가 있나, 거 참 이상하다 싶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내가 들은 것이 맞았다. 로잔 지하철 2호선 Riponne역의 부역명은 Maurice Béjart역이었다. 베자르가 2007년 타계하자 역명이 헌정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베자르는 1987년부터 타계 전까지 로잔에서 ‘베자르 발레 로잔 무용단’을 이끌었고 사후 그 공을 인정받아 스위스 시민권을 받았다. 프랑스인이지만 로잔의 발레단을 전세계에 알렸으니 스위스인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듣던 대로 유럽에서는 춤 예술을 중요하게 여기는구나 싶어 부럽기도 했다. 어떠한 예술가도 도달하지 못할 현대 예술의 지평을 연 이가 베자르이기에 그런 정도는 마땅하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하철역 이름에 안무가 이름을 쓰다니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를 몸짓으로 보여주는 것,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내가 위안 받는 점이다."



베자르는 1927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철학자이자 미래학자인 가스통 베르제(Gaston Berger)이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여러 서양 고전 문학을 들려주고 연극과 오페라를 보여주며 철학자 모임에도 아들을 데리고 갈 정도로 교육열이 높았다. 그렇게 자란 베자르는 본격적인 전문 춤꾼으로 활동하게 되면서도 항상 인문학적, 예술적 소양을 넓히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많은 평론가들은 그를 ‘춤과 지성을 결합시킨 안무가’로 평가했다. 내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중에는 베자르가 여름휴가 때 항상 철학과 교수를 휴가지로 불러 철학 과외를 받는다는 일화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그가 만들어낸 세계는 동시대 안무가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저 몸들이 움직이는 아름다운 장면이 아닌, 생의 심오함을 품은 시를 보게 된다.


모리스 베자르 (fr.wikipedia.org)


그는 18세에 마르세유 발레단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20대를 프랑스, 스웨덴, 영국 등에서 보냈다. 2차 대전이 막 끝나고 난 후 유럽 공연예술계는 퇴락해가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해보려는 야심이 가득했던 베자르는 일찌감치 20대에 자신의 무용단을 만들어서 댄서보다는 안무가로서의 이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천재성을 빨리 인정받게 된다. 이십대부터 평생 안무한 작품의 수가 250편을 넘는다고 하니 나 역시 알고 있는 것은 무용사책에서 소개된 극히 일부의 작품뿐이다.


베자르가 처음 유럽 무대에서 크게 주목받게 된 것은 1960년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에 처음 춤을 만든 사람은 니진스키였고 이후에도 많은 안무가들이 이 음악에 도전했는데, 베자르와 피나 바우쉬의 ‘봄의 제전’ 정도가 니진스키의 성과에 버금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물을 연상케 하는 거칠고 기이한 움직임, 남성 군무의 역동성, 마지막에 폭력성이 관능성으로 바뀌어 집단 난교와도 같은 충격적인 장면으로 연출되는 점 등은 지금 봐도 낯설고 신기하다. 원시 제의를 어떻게 저렇게 해석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반면 군무의 구도가 상당히 조화롭고 치밀하게 잘 짜여져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 공연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역시 ‘볼레로(Bolero)’이다. 라벨이 작곡한 이 곡은 실제 스페인 민속춤곡인 볼레로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발레 안무가 루빈스타인을 위한 발레음악으로 1927년 만들어진 곡이었다. 이 곡을 1961년 베자르가 안무하게 되는데, 마치 동시대에 협업을 한 것처럼 춤과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현재까지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베자르 작품이다. 작품의 유명세 덕에 베자르 이후 많은 안무가들이 계속 이 곡에 도전하고 있다.

‘볼레로(Bolero)' 공연 조르주 동 출연


이 곡은 악기의 음량과 가짓수가 점점 늘어나서 종국에는 모든 소리가 폭발하듯 터지는 형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안무 역시 이에 맞추어 처음에는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하여 점점 몸 전체로 초점이 옮아가고, 군무진의 숫자가 점점 더해지고, 종결부에는 뒤쪽 의자에 앉아있던 군무진까지 합세하여 에너지를 한껏 터뜨린 후 급작스럽게 끝나는 형식을 취한다. 마치 생의 에너지인 ‘에로스’를 가시적으로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저런 힘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일 거야, 그러다가 어느 날 모든 에너지가 다 닫히면서 죽음을 맞이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이야기가 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를 몸짓으로 보여주는 것,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내가 위안 받는 점이다.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Les Uns Et Les Autres1981)’ 끌로드 를르슈 감독


이 영화는 어릴 적 ‘주말의 명화’에도 나왔던지라 내 연배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의 네 예술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으면서 무너져버린 인간 군상들을 화해와 희망의 몸짓으로 되살려낸 것이 이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유니세프 적십자 콘서트에서의 ‘볼레로’이다. 이 영화를 보고 다시 ‘볼레로’를 보면 그 감동이 배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영화에도 등장하는 조르주 동이라는 춤꾼에 대해 더 궁금해질 것이다. ‘볼레로’를 춘 세계 정상급 춤꾼들이 많지만, 독보적인 것은 역시 조르주 동이다. 훌륭한 기량과 외모를 갖춘 것은 물론, 독특한 개성과 관능미, 거기다 그늘까지 있으니 더욱 특별해 보인다. 그는 베자르의 동성 파트너였다.


‘삶을 위한 발레(Ballet for Life)’ 공연 실황


45세의 젊은 나이에 조르주 동이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자 베자르는 그를 추모하는 작품 ‘삶을 위한 발레(Ballet for Life)'를 만든다. 이 작품에서는 역시 아깝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모차르트의 음악에 맞춘 춤들이 이어진다. 작품 뒷부분에 조르주 동의 생전 모습이 무대 배경으로 나온다. 의상은 베르사체가 맡았다. 나는 이 작품을 2001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보았다. 예술가의 천재성과 삶의 유한성을 다루고 있지만 퀸의 노래와 화려한 무대미술, 의상 때문인지 상당히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느꼈고, 록 음악에 맞춰 발레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당시에는 놀라웠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퀸의 ‘Show must go on'이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무용수들이 흰 천을 들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베자르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는 계속되어야 하고, 삶은 이어져야 한다는 것.


‘현재를 위한 미사(Messe pour Le Temps Present)’를 2016년에 재현한 공연


록 음악에도 발레를 추는, 그리고 대중에게 호소력 있는 베자르의 면모는 이미 1967년 ‘현재를 위한 미사(Messe pour Le Temps Present)’ 아비뇽 페스티벌 야외공연에서 드러났다. 이 작품에서는 청바지를 입은 춤꾼들이 사이키델릭 록 음악에 맞춰 열정적으로 춤을 췄으며, 20회가 넘는 무료 야외공연으로 수 만 명의 대중들이 이 모던 발레를 즐길 수 있었다. 무용평론가 A.리비오는 1970년대까지의 베자르 작품세계를 탐구한 저서 ‘모리스 베자르’(정숙희 옮김, 도서출판 대흥, 1991)에서 이 작품이 베자르에게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음을 밝힌다. 68혁명의 분위기가 이 작품에 이미 배태되어 있었으며, 베자르는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68세대의 문화를 낯선 춤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발레를 대중문화와 만나게 하는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베자르는 고전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형식미를 강조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를테면, 그의 발레단원들의 기본 훈련을 위해 소련에서 발레 교사를 모셔왔고, 중세와 근대 문학, 연극에서 모티프를 종종 얻었으며, 클래식 음악을 춤 작품으로 만드는 시도를 많이 했다. 즉 고전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고 온고지신을 실천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모든 스타일을 다 섭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La IXe Symphonie de Beethoven)’이라는 작품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베토벤 교향곡 9번(La IXe Symphonie de Beethoven)’ 공연 실황


흔히 ‘합창’으로 알려진 베토벤 9번 교향곡이 만약 춤이라면 어떤 것일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형식주의적인 것이지, 특별한 의미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며, ‘합창’을 몸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베자르는 안무 과정에서 니체와 쉴러를 텍스트 삼았다고 하는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냥 복잡하지 않게 감상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댄싱 베토벤’에는 이 작품의 리허설 과정부터 공연까지의 모습이 모두 소개된다. 올해 EBS 국제 다큐페스티벌에도 출품된 작품이라 나는 이 영화를 운 좋게 티비로 볼 수 있었다. 다국적의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모여 이 대작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고, 리허설 장면을 보면서 동작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1789...그리고 우리들(1789... et Nous)' 공연 실황


‘베토벤 교향곡 9번’같은 대작 중 또 다른 명작은 ‘1789...그리고 우리들’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19세기 프랑스 대표 건축물인 파리 그랑 팔레에서 공연되었다. 무용평론가 장인주는 평론집 ‘세기의 안무가(이콘, 2015)’에서 프랑스 유학 시절 이 작품을 직접 보았던 생생한 감동을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안무가로 주저 없이 그를 처음으로 꼽을 만큼 거장으로서의 경의를 품게 되었다’고 표현한다. 총체예술극의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는 귀족과 평민, 정치와 일상, 과거와 미래, 자국과 타국, 춤과 연극이 한 공간에서 스펙터클하게 보여진다.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스케일부터 소박한 규모의 서정적 작품까지, 뭐 그러니까 이것저것 안되는 게 없었던 사람인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인도와 일본 문화에 심취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불교와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의 전통예술 노와 카부키에 관심을 두고 만든 작품 ‘카부키(Kabuki)'를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단체로 할복하는 장면도 있고 해서 좀 씁쓸했다. 서양인에게는 저런 게 비장하고 멋있어 보이나 싶고, 뭔가 얄팍해 보이기도 해서이다. 인도를 소재로 하거나 인도 음악을 사용한 작품들도 꽤 있다. 인도 힌두 신화에 기반하여 만든 작품 ‘박티(Bhakti)'는 지금까지도 공연되는 인기 레파토리이다. 동작과 구성이 탁월한 작품이다.


‘박티(Bhakti)’공연


다른 나라의 문화에서 소재를 찾은 그의 작품들을 보면 일단 특징적인 움직임 요소를 어떻게 포착하여 재창조할 것인가를 탐욕스럽게 연구하는 안무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지만, 그가 과연 그 문화의 정신세계를 얼마만큼 이해했을까는 잘 모르겠다. 유럽의 문화를 이해하는 만큼의 깊이를 가졌을까? 이국적인 움직임의 매력을 넘어서서 무엇을 더 담아낼 수 있었을까? 뭐 딱 거기까지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동작을 참 잘 만들고 구성이 탄탄하단 말이다. 뭘 더하고 뺄 것이 없는 딱 좋은 그런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또 미워할 수가 없다.


‘루미(Rumi)' 공연 실황


이 글을 준비하면서 베자르의 작품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찾아낸 작품 ‘루미(Rumi)’. 이 작품은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탄생 800주년을 맞아 헌정되었으며, 신비주의와 수피즘을 추구한 루미의 시가 추상적인 몸짓으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이전에도 1970년대에 팔레비 왕가의 후원을 받고 이란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고, 계속 페르시아 시인들과 수피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짧은 영상이라 작품 전체를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건 어쩜 저렇게 안무를 잘 할 수 있지 싶다. 이 외에도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그가 만난 다양한 나라의 춤들을 통해 탄생한 작품들이 많은데, 안 봐도 뻔하다. 다 얄밉게 잘 만들었겠지.


베자르 사후 베자르 발레 로잔 무용단은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길 로만이 예술감독으로 있으며, 베자르 작품과 길 로만 작품 모두를 공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베자르가 만든 전액 장학금 혜택이 있는 발레 학교 ‘루드라(Rudra School)’ 역시 꾸준히 최고의 춤꾼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작품으로서 춤 예술의 지평을 넓혔고, 이제는 그 후대가 이어서 그 길을 밝히고 있으니, 춤으로 충만한 삶과 죽음이다.


베자르 발레 로잔 무용단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티켓 오픈한 겨울시즌 작품은 베자르의 ‘호두까기 인형’이다. 베자르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불새’, ‘로미오와 줄리엣’, ‘결혼’ 같은 발레 명작들을 자신이 재해석하여 공연했다. 그 중 ‘불새’와 ‘호두까기 인형’은 여전히 인기 있는 레퍼토리인 것 같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남성으로 바뀌어 있고 원작과 줄거리도 다르지만 말이다. 베자르 발레 로잔 역시 발레단이다 보니 연말 호두까기 특수를 외면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로잔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 발레단의 공연을 추천한다. 한 세기에 한 명 정도 나오는 천재의 작품을 최고의 춤꾼들이 공연하는 것을 현지에서 관람하는 건 꽤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호두까기 인형(Nutcracker)' 공연 실황




글 허유미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춤과 관련된 수업과 글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춤들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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