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세계]알바니아의 춤

춤추는 세계 #9



2014년 가을 그리스, 알바니아, 마케도니아로 허니문을 떠났다. 결혼식은 생략한 채 떠난 신혼여행이었기에,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대해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스 외에는 모두 낯선 나라들이었기에 여정 자체가 신기한 모험이어서, 막상 결혼에 대한 각오나 의지 따위를 이야기할 겨를은 없었고, 언제나 그랬듯 술맛 보느라 밤마다 달리는 바람에 간신히 일어나서 이동해야 했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알바니아다.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 친절한 사람들, 싼 물가 때문에 너무나 매력적인 나라였다.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한 알바니아 첫 도시는 지로카스터였다. 오래된 오스만시대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구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도시다. 여기서 묵었던 숙소도 220년 된 가정집이어서 고풍스런 분위기는 물론, 마을 사람들의 서민적이고 단란한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동구권 몰락 이후 알바니아는 특히 더 어려워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극단적이고 폐쇄적인 공산주의 독재를 40년간 이어갔던 엔베르 호자의 죽음 이후, 자본주의 경제와 개혁 개방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국민 대다수가 다단계 사기에 빠져 경제파탄에 이르기도 했고, 다른 나라와의 교류 없이 수십 년 정권이 이어지다 보니 민주국가가 된 지금도 그 여파가 남아있어 사회기반시설이 미비하다. 20세기 이후 복잡다단한 역사, 공산주의 하에서의 지독한 탄압, 90년대에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계속된 혼란 등으로 알바니아를 떠나 난민이 된 사람들도 전세계에 많다. 특히 헐리웃 영화 등에서 이런 알바니아 출신들이 범죄자로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에, 알바니아는 매우 비정상적인 독재국가에 현재 최빈국이고 마피아가 득실대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지로가스터


그러나 지로카스터에서부터 느낀 것은, 다소 퇴락한 곳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혼돈과 위험이 지배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직 여행자가 많지는 않기 때문에 동양인 자체를 볼 일이 없었던 사람들이 우리를 관광하는 일이 여행 내내 이어졌지만, 누구든 친절했고, 어딜 가든 ‘한국 사람이 왔다더라’는 소식이 동네에 퍼져서 오히려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스는 그리스어 알파벳을, 마케도니아는 키릴 문자를 쓰기 때문에 간판이나 표지판도 읽기 힘들었던 반면, 알바니아는 로마자를 쓰기 때문에 마음이 좀 편한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세 나라 중 음식이 가장 맛있고 다채로웠으며 술맛도 괜찮아서 마음에 들었다. 여하튼 첫 도시에서 느낀 것은 ‘여기 딱 내 스타일인데?’라는 것이었다.


지로가스터


다음 여정은 베라트, 역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곳이었다. 이곳은 지로카스터에 비해 오스만 시대 건축물들이 더 온전하게 남아 있고 깔끔하고 부유한 느낌을 주는 도시다. 특히 베라트성이 볼만한 곳인데, 성내에 지금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어 갑자기 몇 세기 전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성 안의 골목길과 집들, 그리고 성의 망루에서 바라 본 베라트 시내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동네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골목 어귀에 모여 도미노게임을 하는 모습, 마차와 자동차가 함께 도로를 지나가는 모습도 정겨웠다.


여기서는 오스만 시대 대저택을 개조한 특급호텔에서 묵었는데,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최고의 호사를 누려 제법 허니문 기분이 났다. 베라트 시내를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에 배구를 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공을 떨어뜨리고 멈춰서 우리를 쳐다보던 기억도 있다. 평생 없었던 인기가 알바니아에서 생긴 셈이다. 그렇다고 부담스럽게 관심을 가지는 정도는 아니었고 그저 궁금해 하고 잘해주고 싶어 하는 느낌, 말하자면 환대의 느낌이었다. 앞머리를 손보려고 미용실에 갔다가 원장님이 돈을 안 받겠다 그러셔서 음료수를 사드렸던 기억도 난다.


베라트


베라트에서 수도 티라나로 이동할 때 탔던 미니버스도 생각난다. 도로사정이 나빠서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여러 시간 달리는데 정확히 정차하는 곳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시골 사람들이 장에 가지고 가는 짐, 가축까지 들고 타다보니 빡빡하게 앉아서 가야 했다. 내 뒤에는 비닐봉지에 거위를 담아서 탄 아줌마가 앉으셨는데 갑자기 나에게 귤을 몇 개 슥 내밀었다. 옆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려고 했더니 아줌마가 나를 쿡 찌르며 ‘안 돼. 너네만 먹어’라는 투로 눈을 찡긋 하셨다. 그런 소소하고 따뜻한 장면들이 여전히 떠오른다. 가난과 불편함이 문제가 되는 장면을 못 봐서일 지도 모르겠지만, 목가적인 풍경과 그들의 온화한 심성이 여행자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베라트


물론 알바니아는 실제로 아픈 역사를 겪었고 지금도 상처가 남아있는 나라이다. 알바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들을 보면, 이 비극의 역사는 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구나 싶다. 알바니아는 계속 이런 저런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중세 때 한번 공국이 되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500년간 받고, 20세기 초 잠깐 왕정을 했다가 공화국이 됐다가 나치즘과 파시즘에 저항하다가 공산주의가 됐고, 민족주의가 공산주의 시기에 더 강화되는 등 뭔가 변화의 순서가 직선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게다가 발칸반도 전체 판도가 19세기 말부터 얼마나 복잡했던가. 지배세력이 계속 달라지고 사람들은 살 곳을 찾아 계속 이동하고 다른 언어와 다른 종교를 가진 이웃들과 적응하거나 싸우면서 살아야 했다. 이런 변화의 시점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한 카다레의 작품들을 보면 어떤 체제로 바뀔지 몰라 불안하게 미래를 지켜봐야 했던 알바니아인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했을까 싶다. 호자의 독재가 얼마나 가혹했을지는 『꿈의 궁전』이라는 작품을 통해 충분히 상상이 된다. 사람들의 꿈을 분류하고 해석하여 문제가 되는 꿈을 꾼 사람을 처벌하는 정부 기관 ‘꿈의 궁전’을 배경으로, 거기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기괴한 직장생활 스토리가 펼쳐진다. 조지오웰의 『1984』나 카프카의 『성』이 연상되기도 하는 이 작품에서 사람들의 꿈, 즉 무의식까지 관리하려는 통제 국가는 단순한 허구로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독재 당시의 알바니아는 이런 픽션을 기꺼이 창작하게 하는 악몽 속이었을 것이다. 결국 카다레는 호자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호자는 세계 최초로 무신론 국가를 선포한 것,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엄청난 수의 피난 벙커를 전국에 만들어 놓은 것, 스탈린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수정주의라고 비난하면서 국교를 끊는 바람에 그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과 나중에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는 것 등으로 유명하다. 물론 그런 카리스마 통치로 문맹을 완전히 퇴치한 점은 업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수도 티라나에는 피라미드가 있는데 한 때 ‘호자 기념관’이었으나 지금은 흉물이 되어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어찌나 이상한지, 이 건물을 보기만 해도 이래서 ‘유럽의 김일성’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구나 바로 이해가 된다.


더러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건축물이나 동상을 볼 수는 있지만 티라나는 이제 평범한 대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 각종 편의시설, 음식점, 까페가 모여 있는 중심부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활보하고, 도심 공원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는 시민들을 볼 수 있다. 와이파이 사정도 괜찮고, 물가가 싸니 뭘 해도 부담이 없어서 장기체류를 하기에도 좋은 도시가 아닐까 싶다.



티라나에서 국립오페라하우스 근처에 숙소를 잡았던지라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클래식 발레, 컨템퍼러리 댄스, 연극, 음악 등 공연 종류가 많았는데 마침 알바니아 민속춤 공연이 있길래 예매를 했다. 공연 제목은 ‘FESTA', 민속음악과 춤을 공연하는 민속앙상블의 정기공연인 듯 했다. 70~80년대의 느낌이 드는 무대시설과 낡은 객석에도 불구하고 꽉 들어찬 관객의 뜨거운 호응과 신나는 춤, 음악 때문에 조금도 초라해 보이지 않는 공연이었다. 자신들의 민속 레퍼토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치를 관객과 충분히 나누기 원한다는 것이 바로 전달될 만큼 즐거움과 힘이 넘치는 무대였다. 박수를 치면서 공연을 즐기는 동안 묘한 감동이 일었다. 그 힘든 역사를 딛고 살아온 저들을 이처럼 춤추게 하는 힘은 무얼까?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한 저 몸짓들의 원동력을 무엇일까? 어떤 불행한 상황이 와도 결코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 인간의 고유한 힘이 존재한다는 걸 본 것 같았고, 그것은 마치 앞으로 펼쳐질 나의 결혼생활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 같았다.


알바니아에서 춤은 ‘Valle(발레)’ 혹은 ‘Vallja(발랴)’라고 불리는데, 대부분의 춤 이름은 ‘발레, 발랴+지역이름’으로 되어 있다. 북부와 남부의 지역적 차이가 있다고 하며 주로 열린 원무 형태, 커플댄스 등의 형태로 진행된다. 전문적 기술이 필요한 춤이라기보다는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췄던 대중적인 춤이라고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알바니아 남성춤


5000여개에 달하는 발칸반도 지역의 민속춤들 가운데, 알바니아 춤을 구분 짓는 가시적인 특징들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별로 구분되지 않는다. 공연에서 봤던 춤들은 발칸반도 다른 지역에서도 볼 법한 몸짓들이었다. 가령 의상은 그리스의상과 거의 같았고, 손수건을 흔들거나 돌리면서 추는 춤은 그리스, 마케도니아, 다른 발칸 국가들의 민속춤에도 등장하는 것이며, 남성들이 손수건을 잡고 상대의 몸을 타고 넘거나 쭈그리고 앉아 한 바퀴 도는 동작 등도 공유되는 테크닉이다. 이뿐이랴, 음악도 그리스, 터키, 중동, 집시 등 여러 느낌이 섞여 있어서 과연 정확히 알바니아적인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지역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당연한 양상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여러 민족들이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한 경우도 있지만 이주, 여러 나라의 지배, 전쟁 등으로 서로의 문화가 혼재될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알바니아 춤에 대한 자료가 워낙 부족해서 이웃 나라였던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글을 찾아봤다. 예술인류학자 린 디 매너스(Lynn D. Maners)는 ‘유토피아, 에우토피아, EU-토피아(Utopia, Eotopia, and E.U.-topia- Performance and Memory in Former Yugoslavia)'에서 유고연방시절 공산당이 민속춤음악앙상블을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활용했으며 유고 해체 이후 민속공연의 양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그려낸다. 다민족국가연방인 유고슬라비아는 특히 다양성과 통합이라는 전제 하에 사회주의이념에 무해한 민속공연들을 장려하였고, 이 과정에서 무대화, 양식화가 이루어지다 보니 마을에 남아있는 진짜 전통춤보다는, 많은 민속들춤이 서로 혼재되고 무대화된 앙상블공연 형태가 더욱 일반적이게 되었다. 아마도 알바니아 역시 민속앙상블이 공산정권하에 중요한 문화적 도구였을 것이며, 주변지역 민속춤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역사 뿐 아니라 무대화되는 과정에서 균일하게 양식화된 결과로 뚜렷한 민족적 특징은 사라진 게 아닐까 싶다.


옛 유고연방의 여러 나라들은 이런 전통에 따라 세계민속춤페스티벌을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알바니아의 지로카스터에서도 이런 페스티벌이 열린다. 기회가 되면 이런 페스티벌에 가서 모든 춤들을 다 보고 싶다. 발칸반도의 역사는 아무리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복잡한 것처럼, 이 모든 춤을 다 봐도 어느 민족이 어떤 스타일을 지녔는지 구분이 안 될지 모른다. 어쩌면 그런 구분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가혹한 역사를 지나 지금까지 그들은 춤추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세상에서 가장 밉상인 남편이라는 존재와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어린이민속앙상블의 민속춤메들리 공연 : https://www.youtube.com/watch?v=uI7mFHLVWDs&feature=player_embedded




글/사진 허유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춤과 관련된 수업과 글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춤들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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