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팔도강산][춤과 여행] 경기도 고양시, 경기시나위춤

2025-09-26


K-컬처, K-POP 댄스의 나라 대한민국은 국토 면적과 인구에 비해 상당히 많은 전통춤을 보유하고 있다. 
궁중, 교방, 사찰, 민간, 팔도강산 전역에 전해 내려오는 춤들을 찾아가 보았다. 
명인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연습에 참여하고, 공연도 함께하며, 
20세기 이후 전통춤이 어떤 변화를 겪어 왔고 이토록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춤을 추는 여행을 마치고 이제 춤을 읽는 여행을 떠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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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이정희 부정놀이


김수영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듯, 춤 역시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느낄 때가 많다. (故)매헌 김숙자(1927-1991) 선생은 화성재인청(華城才人廳) 소속 예인이었던 부친과 세습 무당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민속예능을 습득하며 자랐다. 재인청은 조선 후기 세습무 집안의 무당 남편이 주축이 되고 화랑, 재인, 광대 등이 모여 구성되었던 지역별 재인 자치 조직이다. 소속 예인들은 사신 영접을 위한 산대희뿐 아니라 왕실과 지방관아 행사, 마을굿 등에서 전문적인 연희를 펼쳤다. 


김숙자 선생은 무업을 이어받지는 않았지만, 부친에게 경기도당굿뿐 아니라 각종 악가무를 학습했다. 그는 무속과 민속의 핵심적 춤사위들을 아울러 새롭게 무대화하여 무속춤 장르를 정립한 춤꾼으로 알려져 있다. 김숙자 선생의 활동은 12가지 춤으로 남아 전승되고 있으며, 이 중 ‘경기시나위춤’ 일곱 거리(부정놀이, 터벌림, 제석, 진쇠, 올림채, 깨끔, 도살풀이)는 경기도 무형문화재에 등재되어 있다. 

  

매헌춤보존회 이사장이자 경기도시나위춤 보유자인 이정희 선생께 취재를 부탁드리고 경기도 고양시에 원장에 있는 보존회 연습실을 찾아갔다. 이정희 선생은 1978년 김숙자 선생 문하에 들어가 춤을 사사했다. 밀양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이정희 선생은 <한국의 재발견>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밀양백중놀이 촬영을 하러 온 정수웅 감독을 만나게 되었는데, ‘춤을 배우려면 김숙자 선생을 만나라’고 한 그의 조언을 듣고 상경했다고 한다. 이후 1991년 김숙자 선생이 돌아가실 때가지 스승의 옆을 지키며 그 춤 세계를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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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도살풀이


오랜만에 뵙게 된 선생께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정열적으로 강습과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계셨다. 마침 도살풀이 연습 시간이었는데, 나에게도 추어 보라며 살풀이 수건과 버선을 내주셨다. 흰 치마저고리와 긴 수건은 김숙자 선생이 경기도당굿을 양식화하면서 도살풀이춤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소품이다. 

  

선생께서 앞에서 춤을 추시고 뒤에서 따라했는데, 아니 이럴 수가, 동작이 전혀 내 몸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춤이었는데, 혼자 막돼먹은 리본체조를 하고 있는 꼴이라니. 몸으로 익힌 것도 잊고 산 시간이 길어지면 이렇게 말끔히 휘발되어버리는 것이다. 전통춤을 추려면 하루하루 지속적인 수련이 이어져야 하는 것 같다. 십여 년 전 함께 수업을 들었던 회원들이 지금도 여전히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꾸준함에 마음 깊은 존경과 찬사가 우러나온다. 


이정희 선생께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원 연희과에서 시나위춤을 16년째 전수하고 있으며, 여러 지역 문화원에서 오랜 세월 정기 강습을 해 오셨다. 그러니 전공자와 비전공자, 연령과 성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제자들이 선생의 계승하고 있다. 이러한 세습무는 신이 내려 굿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기쁘게 하는 다양한 예술로 굿을 하는 것이기에 기예능 학습과 수련이 중요하다. 


경기도당굿은 줄타기, 소리, 춤, 무속적 연극, 모두가 함께하는 난장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제의였다. 그중 도살풀이는 단독으로 많이 공연되고 있지만, 나머지 춤들은 주로 군무로 이루어져 대형 변화가 주는 의미와 역동성까지 느낄 수 있다. 의상과 무구에서 무속적 특징이 드러나지만, 무엇보다 춤의 호흡과 느낌이 독특하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고 삶을 회복하기 위한 의식무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직관적인 느낌이 강하고 반복 동작이 잦으며 호흡이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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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다 서오릉에 들렀다. 서오릉은 산 전체가 무덤이라 멋진 숲길을 따라 세 시간쯤 산책할 수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있어 그런지 오랜만에 소풍 온 기분도 들었다. 왕릉이 없었다면 이곳 역시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아파트 주거 타운이 되었을 것이다. 삭막한 도심에서 쉴 곳 없는 사람들에게 넉넉한 휴식공간을 내어주는 게 옛사람에게 제를 지내는 무덤이다. 옛사람의 무덤이라는 문화유산과 이정희 선생의 춤 보존회가 가까이 있다는 게 서로에게 참 적절해 보였다.




글/사진 허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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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춤과 관련된 수업과 글쓰기를 함께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춤들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 『춤추는 세계』가 있다.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9
춤추는 세계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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