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K-POP 댄스의 나라 대한민국은 국토 면적과 인구에 비해 상당히 많은 전통춤을 보유하고 있다. 궁중, 교방, 사찰, 민간, 팔도강산 전역에 전해 내려오는 춤들을 찾아가 보았다. 명인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연습에 참여하고, 공연도 함께하며, 20세기 이후 전통춤이 어떤 변화를 겪어 왔고 이토록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춤을 추는 여행을 마치고 이제 춤을 읽는 여행을 떠나 본다. |
봉산, 강령, 은율의 탈춤은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황해도의 탈춤이다. 한국전쟁 후 남한으로 피난 와서 정착한 황해도의 예인들이 복원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 차례대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이 중 봉산탈춤은 잘 알려져 있고, 강령탈춤도 더러 공연을 볼 수 있지만, 은율탈춤을 보거나 배운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아직 이 춤을 경험한 적이 없어 기회가 되면 꼭 보리라 생각했는데, 은율탈춤의 전장 공연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보존회에 연락을 드렸다.

은율탈춤탈고사
은율탈춤 보존회는 인천의 수봉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봉산과 강령처럼 서울이 아니라 왜 인천일까? 이 탈춤을 복원하고 첫 예능보유자가 된 은율 출신의 예인들이 인천에 정착해서 살고 계시기 때문이라 한다.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피난 온 분들 대다수는 임시로 짐을 풀었다가 전쟁이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제 부친께서도 황해도 출신 실향민이셨어요.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어 어렵게 살다보니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셨죠.”
그때 인천에 정착하게 된 놀이꾼 장용수, 장교헌, 김춘신, 김영택이 은율탈춤의 명맥을 이어나갔고 1968년 은율탈춤보존회를 결성했다. 1978년에는 무형문화재 6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까지도 예능보유자와 이수자 다수는 황해도 피난민 2,3세대로, 지역적 뿌리에 대한 정체성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은율탈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데에는 봉산탈춤 미얄과 무당의 예능보유자였던 故양소운 선생의 역할도 컸다. 선생은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여러 명인들에게 권번과 민속 계통의 악가무를 두루 사사하고 활발히 공연활동을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천으로 이주한 후 무용학원을 운영하며 황해도의 전통예술을 알리며 평생을 보냈다. 은율탈춤 보유자 차부회 선생은 양소운 선생의 차남이며, 보유자 박일흥 선생은 오랜 제자이다.

진오귀굿
보존회에서는 전수관과 야외공연마당에서 강습회와 상설무료공연을 꾸준히 운영해오고 있다. 매년 초파일에는 전과장 공연이 열리는데, 탈고사부터 모든 과장을 꼼꼼히 다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춤사위는 봉산, 강령 탈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탈춤들을 복원하던 당시 참여한 예인들이 두 가지 이상 종목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고, 과거 황해도에서도 이 춤들은 전문 탈놀이꾼의 연희였던 까닭에 내용이 겹쳐지고 전문화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양반과 천민의 계층갈등과 억압받는 자들의 저항이 연희 전반에 나오는 것은 각 지역 전통 탈춤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극 내용보다는 춤사위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동작이 크고 활달하며 수직상승이 두드러지고, 강렬하고 거친 표현이 많다. 우리 전통춤 중 이처럼 위로 높이 뛰고 다리도 많이 들어 올리며 사지를 크게 쓰는 춤은 없다. 무엇보다 노래가 많이 나와 서도소리 특유의 떨리고 장식적이며 고저 변화가 많은 창법과 선율을 음미하기 좋다. 공연 중간에 관객들과 고사떡을 나눠 먹으며 과거의 탈판 같은 따뜻하고 소탈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전과장 공연은 대략 두 시간 반 정도의 길이인데, 엉덩이가 꽤 아프긴 해도 한 번쯤 전체를 다 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인천 차이나타운
은율탈춤보존회는 인천역 가까이에 있다. 1899년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한 경인선의 종착역인 인천역. 개항 이후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살았던 조계지의 풍경과 근대 풍경이 훼손되지 않고 잘 남아있다. 인천에는 화교들의 삶이 있고, 지척에 고향 두고 바라만 보는 황해도민의 삶이 있다. 기대와 희망, 고통과 인내가 이 공간에 가득 차 있다. 떠나고, 만나고, 머물고, 시간은 분주하게 흘렀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나 많이 변했다. 흘러갔다 멈추고, 뒤돌아섰다가 다시 나가는, 이 복잡다단한 호흡이 한 편의 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사진 허유미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춤과 관련된 수업과 글쓰기를 함께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춤들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 『춤추는 세계』가 있다.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9
춤추는 세계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0
K-컬처, K-POP 댄스의 나라 대한민국은 국토 면적과 인구에 비해 상당히 많은 전통춤을 보유하고 있다.
궁중, 교방, 사찰, 민간, 팔도강산 전역에 전해 내려오는 춤들을 찾아가 보았다.
명인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연습에 참여하고, 공연도 함께하며,
20세기 이후 전통춤이 어떤 변화를 겪어 왔고 이토록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춤을 추는 여행을 마치고 이제 춤을 읽는 여행을 떠나 본다.
봉산, 강령, 은율의 탈춤은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황해도의 탈춤이다. 한국전쟁 후 남한으로 피난 와서 정착한 황해도의 예인들이 복원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 차례대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이 중 봉산탈춤은 잘 알려져 있고, 강령탈춤도 더러 공연을 볼 수 있지만, 은율탈춤을 보거나 배운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아직 이 춤을 경험한 적이 없어 기회가 되면 꼭 보리라 생각했는데, 은율탈춤의 전장 공연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보존회에 연락을 드렸다.
은율탈춤탈고사
은율탈춤 보존회는 인천의 수봉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봉산과 강령처럼 서울이 아니라 왜 인천일까? 이 탈춤을 복원하고 첫 예능보유자가 된 은율 출신의 예인들이 인천에 정착해서 살고 계시기 때문이라 한다.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피난 온 분들 대다수는 임시로 짐을 풀었다가 전쟁이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제 부친께서도 황해도 출신 실향민이셨어요.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어 어렵게 살다보니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셨죠.”
그때 인천에 정착하게 된 놀이꾼 장용수, 장교헌, 김춘신, 김영택이 은율탈춤의 명맥을 이어나갔고 1968년 은율탈춤보존회를 결성했다. 1978년에는 무형문화재 6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까지도 예능보유자와 이수자 다수는 황해도 피난민 2,3세대로, 지역적 뿌리에 대한 정체성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은율탈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데에는 봉산탈춤 미얄과 무당의 예능보유자였던 故양소운 선생의 역할도 컸다. 선생은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여러 명인들에게 권번과 민속 계통의 악가무를 두루 사사하고 활발히 공연활동을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천으로 이주한 후 무용학원을 운영하며 황해도의 전통예술을 알리며 평생을 보냈다. 은율탈춤 보유자 차부회 선생은 양소운 선생의 차남이며, 보유자 박일흥 선생은 오랜 제자이다.
진오귀굿
보존회에서는 전수관과 야외공연마당에서 강습회와 상설무료공연을 꾸준히 운영해오고 있다. 매년 초파일에는 전과장 공연이 열리는데, 탈고사부터 모든 과장을 꼼꼼히 다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춤사위는 봉산, 강령 탈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탈춤들을 복원하던 당시 참여한 예인들이 두 가지 이상 종목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고, 과거 황해도에서도 이 춤들은 전문 탈놀이꾼의 연희였던 까닭에 내용이 겹쳐지고 전문화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양반과 천민의 계층갈등과 억압받는 자들의 저항이 연희 전반에 나오는 것은 각 지역 전통 탈춤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극 내용보다는 춤사위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동작이 크고 활달하며 수직상승이 두드러지고, 강렬하고 거친 표현이 많다. 우리 전통춤 중 이처럼 위로 높이 뛰고 다리도 많이 들어 올리며 사지를 크게 쓰는 춤은 없다. 무엇보다 노래가 많이 나와 서도소리 특유의 떨리고 장식적이며 고저 변화가 많은 창법과 선율을 음미하기 좋다. 공연 중간에 관객들과 고사떡을 나눠 먹으며 과거의 탈판 같은 따뜻하고 소탈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전과장 공연은 대략 두 시간 반 정도의 길이인데, 엉덩이가 꽤 아프긴 해도 한 번쯤 전체를 다 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인천 차이나타운
은율탈춤보존회는 인천역 가까이에 있다. 1899년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한 경인선의 종착역인 인천역. 개항 이후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살았던 조계지의 풍경과 근대 풍경이 훼손되지 않고 잘 남아있다. 인천에는 화교들의 삶이 있고, 지척에 고향 두고 바라만 보는 황해도민의 삶이 있다. 기대와 희망, 고통과 인내가 이 공간에 가득 차 있다. 떠나고, 만나고, 머물고, 시간은 분주하게 흘렀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나 많이 변했다. 흘러갔다 멈추고, 뒤돌아섰다가 다시 나가는, 이 복잡다단한 호흡이 한 편의 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사진 허유미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춤과 관련된 수업과 글쓰기를 함께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춤들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 『춤추는 세계』가 있다.
춤의 재미 춤의 어려움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9
춤추는 세계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