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걷는 건축가][인문] 완벽할 수 없는 건축, 워키토키

런던을 걷는 건축가 #3



런던이라는 도시의 가장 큰 매력 중 한 가지는 고집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옛 산업도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곳곳에 현대적이고도 실험적인 건축물이 들어서 대도시의 활기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특히 초고층건물 개발과 시공이 한창인 동런던의 금융가는 새로운 개발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5년, 10년 후를 예측하는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무척 다이나믹하게 변화한다.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강을 가운데 두고 남쪽으로는 독보적인 샤드Shard가 있고, 북쪽으로는 치즈그레이터Cheesegrater와 거킨Gherkin을 필두로 한 마천루 군집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듯 보이는 38층, 160미터 높이의 워키토키Walkie-Talkie 빌딩이 있다.


London 2025 © Foster + Partners


고층건물은 태생적으로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외관에 따라 별명이 붙여지곤 한다. 건물은 구조적인 안정성을 위해 상부로 갈수록 가용면적이 줄어들거나 최소한 유지되는 형태를 갖는 것이 일반적인데, 워키토키는 좋은 전망이 확보되어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높고, 수익성이 좋은 상층부의 가용면적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지극히 경제적 논리에 의해 설계된 결과물이다. 그 결과 위로 갈수록 부피가 커지는 가분수의 형태가 되었다. 그 모습이 마치 워키토키를 닮았다고 하여 별명도 그렇게 붙었다.


별명이 있다는 것은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뜻이다. 한껏 호감을 표현한 애칭이든, 그 반대로 풍자를 담은 악칭이든, 건물의 외관과 형태는 그 건물의 별명을 결정할 만큼 대중들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과거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런던 한복판의 고층건물들도 준공 초반의 이물감과 거부감이 가시는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워키토키는 건축허가 승인이 발표되어 조감도가 공개된 직후부터 대중들이 두 팔 벌려 반기는 건물은 아니었다. 결국 영국의 매거진 <빌딩 디자인>이 매년 최악의 건물에 수여하는 카벙클 컵Carbuncle Cup에서 2015년 ‘올해 최악의 건물’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워키토키의 슬픈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건물의 준공을 앞둔 어느 날 건물이 들어선 블록의 전면 도로에 멀쩡히 주차되어 있던 재규어 차체의 상판과 사이드 미러 배면이 녹아내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다름 아닌 워키토키 빌딩. 드물게 청명한 10월의 어느 날, 최적의 입사각으로 쏟아지는 자연광의 강도에 그대로 노출된 워키토키의 남측 입면 유리가 거대한 오목렌즈 역할을 하면서 전면도로의 한 지점으로 한껏 데워진 광선을 집중 발사한 것이다. 재규어는 하필 정확히 그 날, 그 시간, 그 지점에 주차되어 있었을 뿐. 어렸을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신문지를 태우거나 죄 없는 땅개미를 괴롭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장난 같은 일이 런던의 중심가에서 꽤나 거대한 스케일로 일어나버렸다.


워키토키가 탐탁지 않았던 대중들은 이 사건으로 동요했다. 급기야 너도 나도 팬과 날달걀을 들고 거리로 나서기에 이르렀다. 취재열기까지 더해져 여기저기 계란 프라이와 온도계 측정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반사광의 열기로 팬 위에서 서서히 익어 가는 계란 프라이를 둘러싼 사람들은 마치 단상에 죄인을 세워놓고 심판하려는 모습 같았다. 과연 워키토키는 이 도시에서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 Getty Images


건축물을 괴짜스럽게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어거스틴 콜 Augustine Coll의 만평도 인상 깊었다. 개인적인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후 워키토키는 새로운 별명을 갖게 된다. 모든 걸 다 태워버릴 듯이 덥다는 뜻의 스코칭Scorching이라는 단어를 쓴 워키 스코치Walkie Scorchie라는 별명이다.

 

The Walkie Scorchie © Augustine Coll


하지만 건물이 대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건축가인 라파엘 비뇰리Rafael Viñoly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 누구도 아마 초기 설계단계에서 이러한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가 과거에 설계하여 준공된 다른 건물들까지 수면으로 떠오르며 건축가의 자질과 책임에 대한 여러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해당 건축가는 실수를 인정했고, 개발사는 준공시까지 문제를 발생시켰던 입면의 위치에 더 이상 자연광이 반사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물망을 설치하게 된다. 워키 스코치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개발사에서 건물의 입면 전체에 영구적으로 수평 루버를 설치하면서 어느 정도 종식되었다.



워키토키의 최상부 3개 층은 업무시설의 임대 목적이 아닌 공공에 무료로 공개되는 스카이 가든Sky Garden으로 계획되었다. 런던에 새로운 고층건물이 들어선다는 것은 도시의 새로운 뷰를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워키토키는 그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게 개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워키토키가 보기 싫으면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지 않게 되잖아.”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줄줄이 스카이 가든을 방문했다. 2015년 초에 오픈한 이후 약 2년간 120만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니, 우려와는 달리 어느새 런던 시민들과 관광객 모두가 즐겨 찾는 공간이 된 것은 아닐까? 

 


스카이 가든에는 ‘가든’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다양한 테마의 식재 공간이 설치되어 있다. 이른 아침 이곳을 방문하면 도심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식물원의 촉촉한 대기와 향긋한 풀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 있으니, 런던을 방문하는 누구에게든 소개시켜주고 싶은 공간이다.


35~37층이라는 그다지 높지도 않고 그렇게 낮지도 않은 높이에 선다. 손에 닿을 듯한 뷰가 런던 구석구석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 주변의 고층건물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재미가 있고, 키가 작은 건물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평소에 눈높이에서만 보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읽어내는 즐거움도 있다.


남쪽으로 들이치는 햇살에는 템스 강변을 따라 타워브리지와 런던브리지, 샤드의 풍경이 담기고, 동쪽으로는 멀리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의 또 다른 마천루 군집이, 서쪽으로는 웅장한 세인트 폴 성당과 테이트 모던 미술관,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밀레니엄 브리지와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깨알같이 보인다.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 강물을 가르며 지나가는 보트들, 도로를 바삐 달리는 차들, 어디론가 열심히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 장난감처럼 보이다가도 결국 자연과 사람들로부터 이 도시의 활기를 다시 느낀다. 


무엇보다도 안전장비를 장착하고 건물 안팎을 구석구석 보듬는 숨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도시와 건물을 일궈나가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할 수만은 없지만, 곤돌라를 타고 건물입면을 따라 하강준비를 하는 도반 같은 사람들도 이 도시 풍경의 일부이자, 이 도시와 건물이 계속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숨은 힘이라고 믿는다.





글/사진(2, 5, 6-10) 현소영

도시와 건축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크고 작은 해프닝을 탐닉하는 삼인칭 관찰자. 한껏 게으른 몸뚱이를 간발의 차이로 이긴 호기심으로 매일 아침 겨우 눈을 뜰 기력을 유지하고 있는 최소주의. 좀머 씨처럼 등속도를 유지하며 런던을 골똘히 누비고 다니는 뚜벅이 외국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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