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플루토]욕망 없이, 두려움 없이 #1

굿바이 플루토 #4



그것은 명백하게 비극이었으나, 점진적인 비극이었기에 참아내고 극복할 시간이 충분할 거라 착각했다. 나는 그 비극이 줄곧 두려웠다. 두려움이 아니라 커다란 욕망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부질없는 욕망이었기에 욕망이 차오르지 못한 빈자리에 두려움이 들어앉았다. 비극은 비극대로 전개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젊지 않다. 어떤 기준, 어떤 장소에선 그 사실이 확연하게 부각되었다. 예컨대 게스트하우스 같은 장소에선.


젊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부터 젊음을 욕망하게 되었다. 잇달아 명백한 전조가 나타났다. 비극은 예정돼 있으나 점진적이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만 찾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런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욕망하지 않으면 두려움도 사라질지 몰라. 


지금껏 게스트하우스를 꺼려 왔던 건, 관계에서 빚어질 욕망 때문이었다. 줄곧 모르고 살다가 금세 모르게 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담아 인사를 나눠야 하는지, 나를 어디까지 소개해야 하며, 그들이 열어 놓는 공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진실일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들에게마저. 가까이에서 남이 자고 있다, 그의 잠버릇, 집에서는 통용돼 왔으나 밖에서의 검증은 희박한 나의 버릇, 정말 있다면 어쩐다. 합리성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는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과연 그렇지 않나, 화장실, 욕실, 잠버릇, 다 어떻게 할 건가.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멈추지 못하고, 하루 8시간, 정해둔 걷기를 이어갔다. 10분에 한 번 합리적 회의가 시뮬레이션을 들고 찾아왔다. 호텔을 예약할 테니, 제발 다물어주길. 


그렇게 재잘거림이 멈춘 줄 알았다. 공격 방향이 달라졌다. 입금날짜, 내 판단과는 전혀 다른 똑바름으로 나를 몰아세우는 사람들, 갖가지 요구. 돌아가서의 일들이 거듭 발목을 챘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상황에 나를 지레 무릎 꿇게 만들려는 상황의 조합, 분리, 재조합, 언어의 순차적 구성. 안 되겠다, 언어를 끊어내지 않으면, 제주도건 바다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언어를 끊어 정신을 한 차원 높은 상태로 올려놓거나, 생각의 길에 전혀 다른 물꼬를 터주는 방법은, 어쩔 수 없게도, 다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대마초나 마약이 즉효겠지만 깨어난 뒤의 법적 조치, 무방비로 비난에 시달리며 더 큰 자책으로 무너져 내릴 정신을 생각하면 오래 전부터 전수돼 오던, 비밀도 아닌 주문을 외우는 수밖에 없다. 옴 마니 반 메훔, 슈퍼칼리프라질리스틱익스피알리도셔스, 카르 페 디엠, 뜰 앞에 잣나무, 오! 주여, 아멘, 나무 관세음보살. 언어가 가진 자체의 의미는 완전히 증발시켜 버리고, 건조한 소리, 소음으로 언어의 진격을 멈춰 세우는 중얼중얼의 만트라. 집중하자, 애월 바다, 파도, 얼굴을 직격하는 4월의 볕.


오전 네 시간, 오후 네 시간, 업무 같은 정규 걷기를 마치면 저녁을 먹으며 숙소를 구했다. 그러니까, 그 걱정과 불안의 와중에도 호텔 예약 같은 건 결국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밥을 파는 곳이면 숙도도 겸하는 곳이 많았다. 첫날부터 오른쪽 무릎 통증과 새끼발가락 전체를 뒤덮은 물집, 일교차에 목감기가 들었다. 다행인 건, 어디서 어느 길로 들지 그때그때 바뀌는 변덕이 저녁쯤이면 어디가 됐든 빨리 눕자고 속 편한 상황을 마련했다.


첫 번째 게스트하우스는 손님이 나까지 셋이었는데, 모두가 한 방에 있었고, 간발의 차로 나만 2층 침대를 쓰게 되었다. 독방을 쓰겠다는 말을 할 여지도 없이, 주인은 그냥 2만 원만 내라며 현금을 주머니에 넣고 우다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유의 사항 하나 없이 퇴근을 해 버린 만큼 앞으로의 불상사는 전부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편의점에서 맥주와 오징어를 사 왔다. 눈을 뜨고 있기가 어려울 지경이 된 밤 10시에 방으로 들어가 침대 계단을 기어올랐다. 맥주 네 캔을 마셨으니 예정된 다음은 숙면이 아니라 화장실을 가려고 침대 난간에 매달려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었다. 바닥에 무사히 안착할 때마다 잠든 사람을 일부러 흔들어 깨우듯 침대 전체가 흔들렸다. 이제 막 제대한 듯한 어린 친구들에게 중년의 민폐란 이런 거라는 걸 치가 떨리도록 각인시켜 주듯 그 일을 세 번이나 더 치렀다. 그러고도 뱃속에선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얼마 안 가 깊은 잠에 들긴 했으나 그 동안에도 핸드폰 불빛으로 자기 얼굴만 비치며 새벽을 지나는 아래쪽 사람들에게 소화기관을 따라 꼬르륵꼬르륵 흐르는 맥주 소리가 들렸을지 모른다. 


*   *   *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대강 얼굴만 씻고 고무줄로 머리를 댕강 묶으며 모래 해변을 밟았다. 애월에서 협재까지는 고정된 일정, 이후는 협재에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구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곽지 해변에서 괜한 충동을 흘려 넘기지 못하고 내륙으로 발길을 틀었다. 남읍리 마을을 한 바퀴 구경하고, 산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라는 금산공원 난대림을 굽이굽이. 공원 입구에서 만난 올레 길을 따라가다 갓길이 매우 좁은 국도에서 생명의 위협만 느끼고선 다시 바다 쪽으로. 바닷길에서 벗어나 3시간의 외유, 다시 해변으로 돌아오자, 믿을 수 없게도, 떠나왔던 곽지 해수욕장이었다. 


남읍리 석유 취급소


걷기란 목표 삼은 장소에 닿는 수단이 아니라 쉼 없이 발을 내딛는 과정의 지속이다. 생각은 그랬으나 세 시간이 눈앞에서 산화해 허공이 되었다. 종교 기능을 상실한 교회의 폐허엔 골격만 남은 예배당이 풀과 나무로 풍족하게 감싸여 있었다. 어쩌면 저 시멘트 십자가의 쓸쓸한 침묵 안에서야 올곧은 영성이 간직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불연 공허가 영혼의 광채로 변하는 장면을 목격하기에 참 좋은 시점이었다. “나의 영혼을 구하소서.” ‘구하소서’의 주어 자리에 ‘주여’를 넣지 못한 공허한 기도였다. 나의 육체는 공허와 믿음 사이의 갈등을 조절할 힘이 없었다. 몸은 수십 년 공허에 붙박여 있으나, 육체의 객관적 수치가 젊음을 잃어갈수록 마음은 우주의 ‘주어’이었으면 하는 믿음의 대상을 갈구하는 쪽으로 쓸려 내려갔다.


곽지 해변의 영성


두 시간 뒤 협재 해변에 닿았다.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 협재 바다는 이대로 멈춰야 좋을 장소였다. 위스키 한 잔을 몸 안에 툭 던져 넣는다면 숙소를 구할 만큼의 힘을 비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로하라는 작은 바에는 코나 맥주 몇 종류와 와인뿐이었으나, 마당을 건너가면 혼자 잠들 방이 있다 하여 스파클링 와인 한 병과 독방을 주문했다. 몽롱한 정신으로 1인 독방에 갇힐 여건이 갖춰졌다. 그러나 게스트하우스라는 곳들은 공용 거실을 가운데 두고 있기에 방을 혼자 쓰든 여럿이 쓰든 정숙하고 해 맑아야 했다.


일찍 자리에 누운 탓에 새벽에 깼다. 문소리를 내기가 꺼려져 독방 침대를 구석구석 뒤적이며 『침묵을 위한 시간』이라는 수도원 기행 책을 읽었다. 집필을 마무리하러 수도원을 찾아간 작가는 고립된 성채에서 침묵과 금욕, 희생, 전적인 믿음을 지켜가는 수사들의 삶과 섞이게 된다. 침묵과 희생은 어느 간 불편한 시간을 거쳐 그에게도 안식을 주었으나, 끝내 전적인 믿음만은 실현할 수 없었다. 애석하게도 침묵과 희생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의지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믿음은 종교와 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삶, 태도, 의지의 문제가 되는 건가.


창을 열자 멀리 비양도 위로 유난한 광채 하나가 떠 있었다. “나의 영혼을 구하소서.” 당신이 오래 전 죽은 별의 최후 발광이라면 더욱이 내 생명의 허전한 부분을 보듬으시고, 내가 사라지고 난 직후의 허망을 그대로 비워두지 마소서. 당신의 잔상처럼, 나의 가치는 나를 기억하는 이들 모두가 사라질 때 그들과 함께 천천히 사라지게 하소서. “사라져 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바다에 오면 늘 떠올리는 노랫말이지만, 이어폰 없이 노래를 들을 수는 없었다. 정숙, 해맑음, 민폐 사절.


협재 해변의 숙소



#2에 계속.




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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