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플루토]욕망 없이, 두려움 없이 #2

굿바이 플루토 #5



침묵을 위한 시간은 더디 갔다. 해가 뜰 때쯤에야 눈 뜨고 있을 힘이 없어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다른 방의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시리얼을 잔뜩 말아 먹었다. 월령리 해안을 지나 차귀포 포구까지 닿는 예상 시간 네 시간 반. 방전됐던 몸이라 기력을 잃는 데 가속이 붙었다. 네 시간도 벅찼다.


용수리 포구에 닿기까지는 그저 그런 풍경을 견디느라 힘들었고, 차가 많은 국도변을 걷느라 편도가 껄끄러워졌다. 김대건 신부의 표류 기념 성당이 있는 용수리부터는 걸음마다 절절히 제주가 새겨졌다. 차귀도가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에선 자주 멈춰서 물이라도 마셨다. 차귀도 포구로 내려와 새 읽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고산리의 무명 서점으로 갔다. 지도에 표시된 자리에 무명 서점은 없고, 언어 놀이로 괴팍스런 도보를 조롱하듯 유명 제과만 있었다. 주변을 배회하며 점차 약이 오르려던 순간, 찻길 건너 어딘가에서 뛰쳐나온, 말라뮤트 종이 아닐까 싶은 개 한 마리가 성큼 달려와 때려눕힐 듯 두발을 치켜들었다. 차에 치인 듯한 아득하고 묵직한 충돌이었다.


김대건 신부 표류를 기념하는 용수리 성당


육지의 고래 같은 생명체를 거리에 풀어 놓은 사람은 누구인가,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은 차에 부딪쳐 어딘가 툭 부러지는 고통보다 크겠지. 개에 뜯기는 결말을 위한 침묵의 밤들이었나. 양쪽 허벅지 앞 뒤, 허리, 배에 커다란 발도장이 찍혔다. 넘어지지 않으려 버티면서 두 손으로 커다란 개의 턱과 아마를 목숨을 다해 쓰다듬었다. 얼굴 가득 반가움과 친근함뿐인 이 기쁜 짐승, 오직 같이 있는 행복 한 가지로 충족되는 기특한 애교덩이의 칭얼거림을 외면하며 유명 제과 앞으로 몸을 피했다. 서점은 제과점 2층이었다.  


무명서점에서 책을 사고 나서


소파에 내려놓고 싶은 건 내 등짝이었지만, 가방만 풀썩 주저앉히고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을 골랐다. 오래 전 같은 작가의 『섬』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내용은 기억에 없었다. 섬에 특화되신 분이구나 싶어 제주에서 읽기에 그만인 책이라 생각했다. 차귀도 포구의 숙소는 해물라면 집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였는데, 4인실을 혼자 썼다. 시간에 쫓겨 해물라면을 급하게 먹고 일몰 명소인 수월봉으로 뛰어 올랐다. 해가 지는 30분, 절벽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몸을 차갑게 식히자 기침이 시작되었다. 정박한 배와 멀리 섬 사이를 일렁이는 바람엔 인적이 배어 있지 않았다. 침대에 누우니 나란히 놓인 침대 위 빈 공간들이 적막했다. 침대 사이는 손을 맞잡고도 편히 잘 수 있는 간격이어서 누군가 있었다면 콧바람을 섞으며 끔찍한 밤을 보낼 뻔했다. 늦은 밤, 먼저 마음을 연 옆 침대 사람이 손이라도 내민다면 어떻게 거절의 몸짓을 취해야 할까, 난감하고 아찔했다. 공허란 참으로 아늑한 것이다.


수월봉 낙조


마지막 게스트하우스는 산방산 탄산온천이었다. 차귀도 포구를 떠나며 사라진 경치는 모슬포 항을 지나 일제가 만든 알뜨르 비행장에 이르기까지 다섯 시간가량 이어졌다. 벌판에 드문드문 남아 있는 비행기 격납고는 세월 그대로 커다란 무덤의 형상이 되었고, 사라진 활주로는 무밭에 덮여 아득하도록 새파랬다. 비행장을 떨쳐내는 길 끝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공산주의에 협력할 거라 의심되는 이들을 색출한다며 천여 명을 학살한 구덩이와 추모비를 지나야했다. 죽인 자도 죽은 자도 사라진 벌판에는 참상과 기억과 망각, 이 전부가 허허로워서 하늘은 시리게 맑았다. 


알뜨르 비행장


산을 넘어 제법 관광객이 몰린 송악산 해안 도로에 이르자 안개 낀 바람이 세차졌다. 여기서 산방산까지 한 시간, 산 주변을 대강 돌아 온천에 도착하도록 온탕 생각만 간절했다. 8인실 방에 네 명이 들었지만, 목욕탕에 딸린 숙소의 위용 그대로 난방이 밤새 열렬했고, 다음 날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무릎과 발바닥은 몸의 무게를 지탱하라기엔 너무나 쉽게 짜증을 냈고, 목 염증에 좋을까 싶어 월령리 해변에 자란 선인장의 백년초를 꺾으려다 엄지와 검지에 박힌 가시가 문득문득 소스라치게 했다. 


마지막 날엔 버스를 타고 제주시내로 가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공항으로 가려 했다. 지도 앱이 알려 준 대로 5분 뒤 떠나는 버스 시간에 맞춰 머리도 말리지 않고 목욕탕에서 뛰쳐나와 올라 탄 버스는 서귀포 행이었다. 이런 날인가 보다 싶어 인덕 계곡에서 내려 추사의 유배 길을 따라 두 시간을 걸었다. 마지막 걸음까지 잡념 없이 순전한 걷는 짐승이 되어 보는 데엔 실패했고, 무릎의 통증이 심해질 때에야 겨우 통증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아프면 낫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육체에 고통을 가해 육욕을 중단하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고행은 정말로 신과 만나러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계단이 3만 개쯤 된다면 그건 분명 천국의 계단일 거다. 


추사 유배길


5일간 비어 있던 자리에 그대로 돌아오자 잠시 지연되었던 문제들이 책상 위에 누워 정색한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두 건의 계약이 내 인간성의 바닥을 향해 멈췄던 삽질을 재개하며 인내심을 퍼 날랐고, 무리한 부탁을 해 오던 사람은 돌연 마음을 고쳐먹고 터무니없이 무리한 부탁을 해 왔다. 제주 게스트하우스 네 곳을 겪고 왔지만, 그 공간이 가진 연령의 편견, 어울림의 편견을 깨지 못했고, 심지어 불편할 만한 일이 생겨나지 않았는데도 그 정도의 경험이면 됐다고 유연함마저 잃었다.


푹푹한 쿠션 두께와 목욕 뒤의 샤워 가운, 은은한 조식에 여행의 3분의 1을 내맡기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순서란 대개 비극인가, 어느 때면 나는 이 정도의 안락함에도 힘이 부쳐 휴양지에 누워 오래전 일을 되뇌는 것으로 모험을 대신할 테고, 또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VR 여행으로도 맥박의 임계점에 달하게 될 것이다. 장 그르니에가 말한 대로 한 낮에 촛불 하나 밝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인생의 절차는 영원 앞에 10년이든 100년이든 속수무책으로 의미를 빼앗길 것이다. 나는 그 순차적 비극을 차례로 겪으며 비양도의 별처럼 지구 생명의 마지막 역사와 함께 어느 별 입구에서 반짝 닿는 발광으로 끝날 것이다. 우주의 ‘주어’시여, 나의 영혼을 구하소서. 기도가 간절해질수록 육체의 애착이 강해진다. 믿음은 대상을 잃고 표류한다. 상해에서 표류해온 김대건 신부처럼, 표류의 끝이 스물다섯 나이에 목이 잘리는 일이라고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순서란 난데없고, 순차적이도 않다. 희생 그리고 영원한 침묵. 믿음의 대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지만 예정된 비극이라면 그 순서를 따르는 것을 비극이라 해선 안 될 것이다. 자, 그럼 비극의 여로가 주는 두려움은 사라진 건가? 아니다, 거기 그 자리 그대로 만져진다. 어쩌나, 나는 끝끝내 욕망 없이, 두려움 없이 걷는 짐승이 되어 볼 수는 없는 걸까?




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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