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가 사는 집]63장 위무위爲無爲 사무사事無事 미무미味無味

고양이 노자가 사는 집 #1



63장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무위를 행하고, 일이 없는 것으로 일을 삼고, 맛이 없는 것으로 참맛을 삼는다.


그리스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박찬호, 김병현 선수가 등판하는 날에는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말도 공식적인 합의에 이를 만큼 쓸데없이 민주적인 가정이었다. 아침 일찍 헬스장에서 근육을 만들고, 두어 시간 농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비디오 대여점으로 가서 대여섯 편 영화를 빌렸다. 밤늦게까지 영화를 보다, 그래도 내일은 학교에 가 봐야지 생각이 들면, 다음 날 학교에 갔다. 하지만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생각한 학교가 여기는 아닌 것 같다는 확신에 차서 뒤돌아섰다. 서울극장이나 시네코아에서 영화를 보고, YBM어학원, 영풍문고 지하에 있는 레코드 매장에서 음악을 들었다. 그 시절은 운동권도, 운동을 해야 할 목적도 뚜렷하지 않은 시대였지만, ‘운동’의 경험이 있는 완전히 비민주적인 사람들이 학교생활을 주도했다. 나는 아침마다 실제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매우 민주적인 합의로 일과를 보내는 사람으로서, 스무 살 시절을 단체 생활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민주의 발상지 그리스에 가야 했다. 그곳은 심지어 운동회의 발상지, 올림픽 성화가 오르는 곳, 민주 가정은 일제히 내가 처음부터 그리스 국적자여야 했다고 결의했다. 

 

갑작스레 학교 출석률을 높이며 철학과 수업을 들었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과 에세이,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에 관한 책들을 사 모았다. 아직 읽을 수 있는 때는 아니었다. 스물넷 1월. 그리스 대사관에 가서 아테네 유학 상담을 받고, 그들이 알려준 대로 구비서류를 챙겨 공증을 받은 뒤 국립 아테네 대학으로 DHL을 보냈다. 그리고 곧장 아파트 공사장, 결혼식 뷔페, 호프집, 초중등 보습학원으로 진격하며 돈을 모았다. 유학자금이라 할 만한 돈은 비행기 값 정도만 모였다. 20대를 너무 즐겼던 것이다. 즐겼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기 표를 사고, 친구들을 불러 이제 내게 필요 없게 되리라 장담한 음반, 겨울옷, 책들을 미련 없이 방출했다.


아테네에 도착한 건 합격자 발표가 난다는 9월 초. 합격자 명단을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어디서 확인해야 하는지 몰랐다. 합격을 했다면 개별적으로 메일을 받았을 거라는 매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실을 무시한 건 아니지만, 나는 아침마다 아테네의 중심 신타그마 광장을 산책하고 아테네 대학 입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동상 앞에서 서성이고, 리어카에서 파는 프레츨을 씹으며 플라카 지구 상점가를 산책했다. 한인 민박 주인아저씨가 그해에는 외국인 학생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봐 주었고, 나는 어쩐지 안심이 되어 아테네를 벗어나 그리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신약 성서에 나오는 테살로니키, 절벽 위에 수도원이 있는 메테오라, 포세이돈이 바다를 굽어보는 수니온,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런저런 도시들, 한국 기업이 실내 장식을 했다는 크루즈를 타고 낙소스, 미코노스, 산토리니 같은 섬에도 가 보았다. 생애 처음 와인을 마셨고, 지중해에서 수영을 하고, 백인 할머니들과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으며 귀여움을 받았다. 동네 남자들이 완벽하게 민주적인 합의 끝에 한국에서 온 ‘브루스 리’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테네 대학교 앞 니코스 카잔차키스


아테네 시내를 제외하고 가장 오랜 머문 곳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신탁을 받았다는 델피였다. 너무 작은 마을이라 할 만한 일은 도착하고 두 시간도 안 돼 다 끝내 버렸지만, 혹시나 벼락같은 계시가 오지나 않을까, 길가에 나온 달팽이나 구조하며 사명감에 찬 며칠을 보냈다. 세계의 배꼽, 옴파로스 돌이 있는 고고학 박물관은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곳이지만 하도 사람이 없어 박물과 직원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생각할수록 권태로운 날들이었다. 


도로 위 달팽이를 나뭇잎에 올려 두고서


고고학박물관의 옴파로스


*   *   *


전쟁에 나가고, 밤새워 먹고 마시고, 남자아이를 귀여워하고, 두 집 살림에다 거리 여인까지 갈구하는 분주한 중에도 소크라테스는 세간의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당신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인가? 그럼 알려 달라, 영혼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명예란, 덕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졌고 그들은 대답했고, 또 대답했고, 자신의 대답 안에서 모순에 빠졌다. 소크라테스가 떠난 자리엔 덩그러니 무지만 남았다. 그가 이런 공격적인 대화에 나서게 된 건 자신의 제자인 카레이폰을 비롯한 몇 사람이 델피의 무녀에게 들었다는 신의 말씀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진실인지, 그는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무지의 징검다리를 건너 그는 신탁이 있었다는 델피에 도착했다. 아테네에서 120km 정도 떨어진 파르나소스산 정상 부근. 내가 세 시간 넘게 버스를 탔으니, 그는 일주일 넘게 걸었을 것이다. 델피의 아폴로 신전은 여러 도시국가 사람들이 신의 조언을 들으려 찾아오는 곳이었다. 신전에 사는 ‘피티아’라고 불리는 여자 무당이 신의 말을 대신 전해주었는데, 이들에게 한마디라도 들으려면 제사상을 차리든 현금을 주든 할 도리를 해야 했다. 원체 주지도 받지도 않는 사람 소크라테스라 돈까지 줘 가며 남의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그게 정말 아폴로 신의 말이었다 해도.


신전 기둥과 벽에는 점괘에 감화된 사람들이 새겨 넣은 감동 명언들이 여럿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그것도 다 신의 말일 테니 거기서 좋은 말씀을 찾기로 했다. 너 자신을 알라? 오, 좋다. 집에 가자. 그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아테네로 돌아오는 동안 소크라테스는 계시를 인간의 말로 바꾸어 버렸다.


‘나는 아는 게 없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말고는.’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은 그걸 직감적으로 흡수했겠지만, 그의 말이 나에게 닿기까지는 서술어 ‘알다’가 ‘알아 간다’, ‘알아야 한다’로 바뀌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어느 정도로 몰랐냐 하면, 그 문구가 어디에 새겨졌는지는커녕 어느 것이 아폴로 신전이고 어느 것이 아테네 신전인지도 몰랐다. 구별이 되는 폐허는 야외극장뿐이었다. 극장이 아니라 운동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아폴로 신전일지도 모르는 신전


소크라테스는 그 유명한 독배를 마시고 기원전 399년 죽었다. 그가 직접 남긴 기록이 없는 바람에 그의 죽음을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책이 세기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가 그리스의 신을 믿지 않았다거나 젊은이를 선동했다는 죄목을 반박하는 것부터,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사상이 달랐다는 철학논쟁, 다수의 찬성으로 ‘진실’이 결정될 수 있겠냐는 보편적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 ‘악법도 법이다’라는 실제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내어 전제정권의 악법을 옹호하려던 정치적 시도까지. 민주의 가치와 소크라테스의 유산이 얼마나 크든 나는 배운 것 하나 없이 배를 타고 그리스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탈리아에 가고 싶어져서가 아니라 로마에서 일하고 있던 누나를 만나야 돈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에게 받은 용돈을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민주 가정은 나의 귀가를 마치 3박 4일 동해바다 다녀온 듯 받아들였다. 나의 20대는 그렇게 진전 없고 맥락 없이 가버렸다. 연관성 없는 일들로 생활을 이어갔고, 학교는 데면데면했고, 미래 타개책 삼아 잡지, 단행본 같은 거대한 출사표를 던져보기도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잘되지 않으리라 미리 단정하고 있었기에 절망을 내보이지 않으려, 조급해 보이지 않으려, 여유로운 표정과 다정한 말투를 가장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약간은 그런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오로지 ‘유유자적’이란 주제만으로 책 한 권을 써 볼 만큼 여유를 갈구하고 살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3층에 멈춰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18층 입주민이다.

 

내가 노자 <도덕경>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토록 진척 없고, 이해력 낮은 육체를 끌고 무덤까지 가려면 무위無爲의 마음이라도 구현해 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였다. 아직 엘리베이터는 5층이고, 나는 조급하지 않은 척 무위를 ‘하려고’ 한다. 위무위爲無爲. 앞에 있는 ‘위’에는 위선, 가짜, 거짓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이 표현에서는 무위를 가장한 행동, 무위인 척 속이는 행위라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구현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그렇더라도 이 무위에는 ‘하다’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억지로, 일부러, 그래서 어쩌면 위선적인. 노자를 아무리 읽어도 여유로운 척, 화 안 난 척, 안 취한 척, 무엇 하나 자연스럽지가 않다. 무미의 맛은 고사하고 맛집이 삶의 이유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지무지’, 나의 무지를 자인하는 것이다. 나의 무지가 노출될 때면 여지없이 무언가를 안다고 우기고, 내 뜻대로 조정하고 바꾸려 한다. 그리고선 실망하고 화를 낸다. 침울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생각한다. 델피의 달팽이 구조대로 보내던 스물넷의 가을과 복채도 없이 무당에게 점을 보겠다고 일주일을 걸어온 소크라테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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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작가의 『노자가 사는 집』이 출간되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이 고양이를 통해 어떻게 변해갔는지 이야기하는

유익하고 유쾌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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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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