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플루토]주식회사 군산 행

굿바이 플루토 #3



특별한 이유 없이 남의 동네를 걸어 다니는, 약간의 기분 전환, 약간의 애틋한 심사. 누런 대기가 두텁게 깔린 날이었다. 미세한 공기를 섬세하게 들이마시다가, 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칼칼한 목이 누그러지려나, 커다란 쌀 창고를 개조했다는 카페를 찾아가 뜨거운 커피를 한 잔 샀다.


경암동 철길마을, 복원된 옛 군산역에 앉으니 커피가 반쯤 남았다. 안내원 한 분. 역 안을 둘러보고 나가는 시간이 한 사람 평균 1분을 넘지 않았다. 용산 가는 열차 시각은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군. 종이컵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서 철길 가운데 섰다. 좁은 철길 양 편으로 추억의 교복 대여점 아니면 쫄쫄이, 아폴로. 철길 옆 작고 조밀한 집들 안에서의 생활은 명쾌하게 뻗은 선로나 아폴로와 다르게 굴절과 굴곡으로 애가 탔겠지.



안내를 바라는 사람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안내 창구 앞에 섰다. 따로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서로 2초 간 바라보고, 창구 밖으로 나온 해설사를 따라 다시 철길 가운데 섰다. 서울서 오셨어요? 네. 놀러 오신 거지요? 정확한 나의 처지였다. 철길에서 두세 걸음 남짓 떨어져 앉은 판잣집에는 종이 공장이나, 그 공장에 원료를 대던 나무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았어요. 고물을 줍는 노인들도 있었지요. 군산에서 제일 가난하고 힘든 동네였어요. 지금은 걸음마다 쫀득이, 아폴로, 교복대여, 화물철도 시대의 추억을 파는 일도 경쟁이 빡빡한데.


매일 아침 8시 10분, 10시 10분 기차가 지나갔어요. 종이를 잔뜩 실은 기차가 마을에 들어서면 열차 맨 앞에 두 명의 철도 직원이 매달려서 기차 지나가요, 물건 치워요, 소리를 질렀어요. 철길에 고추, 나물 같은 걸 내다 놓고 말리기도 하고, 집안이 좁았잖아요, 집집마다 기찻길에 다라, 들통 같은 온갖 잡동사니를 내놓고 살았거든요. 기차가 지날 시간에 잠깐 나와서 세간을 문 앞으로 바투 당겨 두었다가, 지나가고 나면 도로 제자리에 돌려놨던 거예요. 기차가 시속 10km도 안 되다 보니 겨우 2.4km를 가는 데 20분도 걸리고 30분도 걸리고 그랬지요. 도착한 종이 뭉치들은 군산역에서 전국 각지로 흩어졌어요. 뭐 대부분은 서울로 갔겠지요. 당시는 신문이 가장 빠른 매체니까, 호외도 많고, 대부분 신문이 되지 않았을까요?


ⓒMr.Kototo @ Flickr.com


뜬다리 부두를 지나 조선은행, 나가사키 은행, 군산세관. 이성당 빵집 앞도 잠시 서성대 보았다. 주중이라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게 커다란 득이라도 본 것 같아 단팥빵 하나를 샀다. 따뜻할 때 먹어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찌그러지고. 일본인들이 만든 도시, 일본인들이 떠난 거리는 그들이 살던 대로 방치되었다. 새마을 바람이 불 때 슬레이트 지붕과 벽돌담에 가려지기도 했고, 새로운 시대, 아메리칸 아미 기지촌 스타일이 덧입혀지기도 했다. 근대 관공서 외양의 나이트클럽, 일본식 온천 여관을 닮은 편의점. 시대 보편의 꾸밈새와 먹고 사는 일은 데면데면할 사이가 아니었던 거다.


그러나 다행히도 단장은 매번 겉치장을 넘어서지 않았다. 도로에 면한 좁다란 얼굴에 타일을 바르거나 나무 패널을 대고 반듯하게 미장을 하거나 페인트를 칠하거나. 그래서 또 한 세대가 지나고 겉에 들러붙은 지난 시대의 치장을 걷어내자 두 세대 전의 곰삭은 골격이 드러났다. 때마침 그게 멋이 되는 시절이었다. 시절을 타고 영화동 일대의 적산 가옥들이 한 집 한 집 원형을 찾아 갔다. 유곽의 흔적이 있다는 명산시장에서 유곽의 분위기는 못 느꼈지만, 뚱보식당 백반으로 하루치로도 과분한 열량을 채웠다.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초원 사진관에 앉아 정원과 다림의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정원이 버스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나오던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도 떠올리다가, 더는 의욕이 없어 예약해 둔 항도호텔로 들어갔다. 호텔 사우나에서 먼지를 씻어내고 이제 역부족이라는 듯 침대에 누웠다. 맥주 한 캔을 따고, 김이 나는 손으로 TV 리모컨을 열심히 눌러 찾은 영화는 <다즐링 주식회사>. 군산으로 내려오는 새마을호 열차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 인터뷰집을 읽고 있었다.  

“기차가 길을 잃었다네요.”

“뭐라고? 선로에서 길을 잃는 게 가능해?”

“그렇다네요.”

다즐링으로 가는 기차가 선로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다. 며칠을 곧장 달려온 단선 선로에서 길을 잃는 게 말이 돼?



밤 10시. 호텔 밖으로 나오자 문을 연 맥주 집이 한 군데 뿐이었다. 곧게 뻗은 선로처럼 명쾌해서 좋았다. 30대로 보이는 두 남자가 바 안쪽에 서 있는 맥주 집에서 맥주 서너 병, 위스키 한 잔, 그리고 다시 맥주 서너 병을 마셨다. 군산은 처음이시지요? 네. 이 근처에 정말 맛있는 콩나물국밥 집이 있는데, 저희가 밥 한 끼 대접해도 될까요? 그리하여 콩나물국밥을 앞에 두고 두 남자와 마주 앉았다. 여기는 군산. 황금사자기 야구를 본 적은 없지만, 72년 황금사자기 우승은 더더욱 볼 수 없었지만, 여기는 확실히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도시였다.


오늘, 내일, 그리고.
분명해 보이는 날짜의 연속 말고 더 있을 것도 없는 인생인데, 계산할 것 없는 연속된 숫자에서도 곧잘, 그리고 심각하게 길을 잃는다. 애초에 가려던 길을 잊고 내맡겨진 길만 한참 걷다 보면 때로는 다즐링 행, 때로는 군산 행. 선로에서 기차가 길을 잃는다고 그게 여정의 끝은 아니었듯, 달력 날짜 몇 개 잃는다고 내 삶이 영영 절벽이거나 절망은 아니겠지. 시대는 또 어떤 식으로든 먹고 사는 방식을 발굴해 줄 거고, 아무렴, 나는 처음 본 손님에게 국밥을 먹여 보내주는 역전의 명수, 어떤 확고한 믿음도 뒤집어질 수 있는 군산에 와 있었다.




글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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