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음주] 타이난의 밤을 즐기기 위한 바 호핑 리스트

2025-06-04

| Tainan |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미식의 도시 타이난. 한낮의 열기가 잠잠해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미로 같은 골목 곳곳에 조용히 숨어 있던 바들이 일제히 불을 밝힌다. 옛것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도시답게 오랜 건물을 개조한 타이난의 빈티지 바들은 고색창연한 도시의 색을 띠면서도, 톡톡 튀는 매력을 뽐내는 창의적인 칵테일을 선보이며 여행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새로움을 안긴다.


타이난이야말로 ‘바 호핑(bar hopping)’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도시가 아닐까. 깡충거리며 뛴다는 의미인 호핑. 바 호핑이란 여러 술집을 돌아다니며 서로 다른 술맛과 분위기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아쉬운 여행자라면 바 호핑으로 타이난의 밤을 최대한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 타이난의 바들은 대부분 도보로 이동가능한 구도심에 밀집되어 있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에 거뜬히 다 돌아볼 수 있는 매력적인 타이난 바 세 곳으로 지금 바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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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r TCRC ::


청나라 시대 타이난에서 가장 번화했던 신메이(新美) 거리는 백 년 된 찻집과 이국적인 도교 사원이 자리한, 오래된 골목이다. 허나 낮의 방문객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밤만 되면 거리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을. 저녁 8시, 신메이 거리의 낡은 2층짜리 건물 앞은 어디선가 구름떼처럼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바로 타이난의 바 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Bar TCRC의 오픈을 기다리는 손님들. 


Bar TCRC. 건너편에 사원이 보인다.


2007년 공연 공간으로 출발한 Bar TCRC는 2009년 바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만 최초의 아시아 50대 바에 올라 화제가 되었다. 지역 식재료를 이용한 독창적인 칵테일을 선보이는 오너 바텐더는 타이난의 칵테일 문화를 세련되게 이끈 선구자로, 그가 이끄는 바텐더 팀 또한 각종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실력자들이다. 현재 매장에는 총 7명의 바텐더가 있으며 2호점인 Bar Home, Bar TCRC 옆 건물을 확장한 3호점 Phowa 등 다수의 바를 운영하고 있다. 


칵테일을 만드는 중인 Bar TCRC의 바텐더들


차(茶)로 유명한 대만답게 티와 알코올이 절묘하게 만난 흥미로운 믹솔로지 칵테일이 눈여겨볼 만하다. 시그니처 칵테일인 ‘정글(叢林)’은 보드카 베이스에 해발 1,000m 이상 지역에서 재배한 대만 고산 우롱차를 조합한 티 칵테일. 달달한 파인애플이 보드카의 맛을 살짝 누그러뜨려줌과 동시에 상큼한 오이가 단맛을 중화해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마지막에 무심히 툭 치고 나오는 시소의 풍미가 킥이라면 킥이랄까. 열대의 정글을 상상하며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한 잔이 비어 있다. 타이난에서 손꼽히는 바이니만큼 예약은 필수다. 


Bar TCRC의 시그니처 칵테일 퍼플다이아몬드(좌)와 정글(우)


Bar TCRC
주소 : 700台南市中西區新美街117號
운영 시간 : 20:00–02:00 (일요일 휴무)
예약 사이트 : https://inline.app/booking/-MBhmifjhvmPrQTt8LoP:inline-live-1/-MBhmijlj6lQnZhdIksN?language=zh-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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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r INFU ::


마치 눈에 띄지 않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좁은 골목에 간판도 없이 운영하는 Bar INFU는 구글맵을 보고서도 한참을 헤맬 정도로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 오랜 숨바꼭질을 끝내고 간신히 문을 들어선 바의 내부는 허름한 건물 외관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나무로 된 꽤 높은 노출 천장, 오너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세련된 빈티지 가구, 초록색 벽, 따뜻한 노란 불빛의 조명이 비추는 백 바. 은은하게 멋을 낸 공간이 술맛을 돋운다.


Bar INFU 내부와 백 바


오너인 Ben은 칵테일의 풍미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기술이자 다양한 재료의 맛과 향을 추출하는 인퓨즈(Infuse) 기법에 능숙한 바텐더. 자신의 장점을 살려 바의 이름을 Bar INFU라 했다고. 이곳의 시그니처 칵테일 중 하나인 ‘금훤청차(金萱青茶)’는 라이트한 첫 잔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다. 찻잎 자체에 부드러운 오렌지 향을 머금은 금훤차와 시트러스 리큐어인 릴레 블랑의 절묘한 만남은 상큼함, 화사함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다. 바텐더의 치밀함이 느껴지는 한 잔이 아닐 수 없다. 


Bar INFU의 칵테일, 금훤청차


‘씨워터(海水)’는 Bar INFU의 오너가 적극 추천하는 시그니처 메뉴로 도전을 즐기는 사람에게 제격인 칵테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입안 가득 퍼지는 바다 내음에 놀라진 말자. 대만 동부 지역 이란의 바닷물로 만든 탓이다. 보드카를 베이스로 코코넛 슈가를 첨가하여 열대 바다의 느낌을 나타내었다. 미뢰를 강하게 터치하는 산초의 매운맛과 토핑으로 얹은 김의 짠맛까지.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한 잔이다.


김 한 장 올라가는 Bar INFU의 칵테일, 씨워터


칵테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오너 바텐더와 밤늦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키지도 않은 샷 잔이 하나씩 더해지는 위험한 곳. 그러니 조심하시길. 취기가 올라와 더 이상 맛보지 못한 시그니처 칵테일 리스트가 한동안 눈앞에 아른거리는 후유증에 시달릴지도 모르니까. 


Bar INFU
주소 : 700台南市中西區忠義路二段84巷63號
운영 시간 : 20:00–02: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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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r Lonely ::


Bat Lonely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다닌 흔적 같아 붙인 이름일까. 타이난 구도심의 달팽이 골목 한구석에 일본 레트로풍의 Bar Lonely가 있다. 중정을 중심으로 앞에 바텐더가 상주하는 주요 공간이 있으며, 오른편엔 다다미방이 있는데 커다란 나무 유리창을 통해 새어 나오는 불빛이 중정을 노랗게 물들여 나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두운 조도, 쇼와 시대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바 테이블에 앉아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거나 혼자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은 곳. 


Bar Lonely의 다다미방


타이난의 짧은 봄을 표현한 스페셜 티 칵테일 ‘춘향(春香)’은 1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타이난의 차 가게에서 직접 공수해 온 찻잎으로 만든 회심의 한 잔. 클래식 칵테일 스푸모니 또한 나무랄 데 없이 안정적인 맛이었다. 


Bar Lonely의 칵테일, 춘향(좌)과 스푸모니(우)


수많은 보틀이 진열된 백 바를 찬찬히 훑어보다 평소에 궁금했던 대만의 국영기업 TTL에서 출시한 위스키 브랜드 오마르의 캐스크 스트렝스 리치 리큐어 배럴 피니쉬(Omar Cask Strength Lychee Liqueur Barrel Finish)를 온더록스로 마셨다. 오마르 말고도 카발란 등 대만 위스키 라인업이 많은 편이니, 평소에 궁금했다면 바텐더에게 청해 마셔보자. 공간이 넓어 자리가 넉넉하니 예약 없이 들러도 헛걸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Bar Lonely의 백 바


Bar Lonely
주소 : 70048台南市中西區民生路一段157巷11號1樓
운영 시간 : 20:00–02:00 (토요일은 저녁 6시부터 운영)




글·사진 최보옥

대학 졸업 후, 한국을 떠나 대만에 살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 10년차 한국어 강사, 채식주의자, 결혼 이민자. 대만 생활에서 길어 올린 글들을 블로그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이 취미다. <타이베이 산친구>를 썼다.
https://blog.naver.com/choibo_ok


편집 신태진 에디터